정부가 대규모 세수 펑크를 공식화했다. 2년 연속이다. 대기업·부자 감세 여파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글로벌 위기 탓이라고 주장한다. 올해도 대책은 마땅치 않다. 고유의 목적이 정해진 기금을 헐어 쓰고, 지방정부에 주기로 한 돈을 보내지 않겠다는 게 골자다.
기획재정부는 26일 ‘2024년 세수 재추계 결과 및 대응 방향’에서 올해 국세 수입이 예산 367조 3천억원 대비 29조 6천억원(8.1%) 부족한 337조 7천억원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도 56조 4천억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2년간 세수 펑크 규모는 86조원에 달하는 셈이다.
올해 세수 결손을 세목별로 보면, 법인세 결손이 14조 5천억원으로 규모가 가장 크다. 소득세는 예산보다 8조 4천억원 덜 걷힐 것으로 추산됐다. 소득세는 예산보다 8조 4천억원 덜 걷힐 것으로 추산됐다. 교통·에너지·환경세는 4조 1천억원, 개별소비세는 1조 2천억원 세수 결손이 예상된다. 상속증여세와 증권거래세도 각각 5천억원, 4천억원 부족할 것으로 추계됐다.
주요 세목 중에서는 부가세가 유일하게 예산보다 더 걷힐 전망이다. 초과 세수 규모는 2조 3천억원이다.
정부는 올해 세수 결손 원인을 외부로 돌렸다. 기재부는 “국세 수입 부족은 글로벌 복합 위기 여파로 인한 지난해 기업 영업이익 하락,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자산시장 부진 등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글로벌 교역 위축과 반도체 업황 침체에 따른 법인세 세수 감소 폭이 당초 예상보다 크다는 것이다. 부동산 거래 둔화로 양도소득세가 부진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들었다.
대기업 감세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해명을 내놨다. 기재부는 보도자료의 Q&A에서 ‘2년 연속 세수 부족 원인이 부자 감세 때문 아니냐’는 질문에 “지난해와 올해 세수 부족은 감세 정책이 아닌 2022년 이후 급격한 대외 여건 악화에 따른 영향이 당초 예측보다 큰 데 기인한다”면서 “세제개편 효과는 세입예산안에 이미 반영돼 있기 때문에 세수 부족 원인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법인세율 인하와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등 감세를 강행했다.
감세 효과를 예산안에 반영했다는 정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감세 효과를 과소 추계했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2년 세법개정안에 따른 향후 5년간의 감세 효과를 73조 7천억원으로 추정했으나, 정부는 이보다 10조원 이상 적은 60조 2천억원으로 추정했다. 2023년 세법개정안의 감세 효과 경우 예정처는 4조 2천억원, 기재부는 3조 1천억원으로 추정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정부가 감세를 하면서 그 효과를 과소평가했다면 정부 감세가 세수 결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2022년 이후 정부는 감세에 따른 세수 효과를 예정처의 세수 효과보다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전망했다”고 지적했다.
세수 결손이 경기 악화 여파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된다. 통상 경상성장률(실질성장률+물가상승률)이 높으면 세수도 늘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에서는 역의 관계를 보였다.
경상성장률은 2022년 4.6%, 2023년 3.3%, 2024년 5.5%(예측치)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정부가 말한 ‘글로벌 복합 위기’ 상황에서도, 물가상승률이 높게 유지된 영향이다. 반면, 국세 수입은 같은 기간 395조 9천억원, 344조 1천억원, 337조 7천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경상성장률이 4% 내외임에도 세수가 급감한 건 정부의 감세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는 방증”이라며 “이러한 감세 효과를 예산 세수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으면 그만큼 세수 결손이 발생한다”고 짚었다.
정부는 법인세 결손이 기업 실적 부진 탓이라며, 지난해 상장사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7조 1천억원(44.2%) 감소했다는 지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눈속임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법인세는 영업이익에 대해서만 부과되지 않는다. 영업이익에 영업외수익을 반영한 법인세차감전순이익에 법인세가 부과된다. 영업이익이 줄더라도, 영업외수익이 늘어 법인세차감전순이익이 증가하면 법인세 규모도 커진다.
가령 삼성전자는 지난해 영업적자를 냈지만, 법인세차감전순이익은 17조 5조원을 기록했다. 법인세는 내지 않았다. 오히려 법인세 수익이 발생했다. 정부가 세액공제를 확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세액공제 규모가 세액을 초과하면 남은 세액공제분은 이월된다. 이월된 세액공제만큼 향후 법인세가 차감된다. 삼성전자는 법인세 비용을 내는 게 아니라, 법인세 수익을 남기게 된 것이다.
재정 운용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정부가 주장하는 감세의 낙수효과는 나타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재정 여력이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는 “저출생·고령화·불평등·양극화·기후위기로 재정 여력은 계속해서 요구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부자 감세 기조를 철회하고 실효성 있는 세입 확충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추경 없다” 고집…위헌 논란 부른 ‘교부세 삭감’ 카드 내놔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없다고 못 박았다. 세수 결손이 발생하면 추경을 통해 세입을 줄이거나 지출을 줄이는 게 정석이다. 세입 감액 추경을 하면 국채 발행 한도액을 높여 국채를 추가 발행하게 된다.
정부는 기금 여유 재원을 활용해 세수 결손을 충당하겠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외국환평형기금이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빌린 돈을 조기상환하고, 공자기금으로 들어온 돈을 일반회계로 돌렸다. 외평기금 자금이 공자기금을 거쳐 일반회계로 들어간 구조다. 환율 관리 차원에서 달러 등 외화를 사기 위해 조성한 외평기금을 헐어 쓴 것이다. 정부는 올해 외평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기금에서 얼마를 끌어오겠다는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세수 재추계 현안보고’에서 “국세수입 부족분에 대해서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며 국회가 승인한 예산을 차질 없이 집행하기 위해 가용 재원을 최대한 활용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세출 측면에서는 지방교부세를 삭감하는 방안을 내놨다. 중앙정부는 내국세의 19.24%와 종합부동산세의 전액을 지방정부에 내려보내야 한다. 세금이 예산보다 덜 걷혔으니, 교부세를 깎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당초 예산액에서 교부세를 16% 삭감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들어오기로 한 돈을 받지 못하면서 지출 구조조정에 나서는 등 혼란을 겪어야 했다. 정부는 교부세를 깎으면서도 추경을 하지 않았다. 예산대로 교부세를 교부하지 않으려면 국회에서 추경 심의를 거쳐야 한다. 막무가내식 교부세 삭감은 위헌 논란으로 번졌다. 일부 지자체장과 국회의원들이 모여 헌법재판소에 권한 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정부가 올해도 추경 없이 교부세를 감액하면 지방정부와 국회 반발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참여연대는 “추경 편성도 없이 대규모 세수 결손을 대응하겠다는 정부 무책임이 개탄스럽다”며 “이러한 무책임은 교부세 미지급, 각종 예산 불용 처리를 초래해 지방재정과 내수를 열악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