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40년 전 ‘임대차등기 의무화’했다면 전세사기 지금처럼 안 됐다”

김천일 강남대 부동산건설학부 교수 “현행 주임법 깜깜이 공시”

2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신촌유플렉스 앞에서 열린 ‘신촌·구로·병점 100억대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구로구에 거주 중 1억 2천여 만원의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스무 살 청년이 발언 도중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에 따르면 서울 신촌과 구로, 경기 병점에서 대학생·사회초년생 등 97명의 세입자가 임대인 최씨 일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를 당했으며 총 피해액은 100억원 대 규모다. 2024.6.23. ⓒ뉴스1

최근 몇 년 새 전세사기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면서 관련 재발방지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전세사기 특별법 재정으로 부족하나마 피해구제 대책들은 조금씩 마련되고 있지만 전세사기 발생 자체를 막을 예방책 마련은 사실상 전무해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이 전세사기 예방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이달 11일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대한법무사협회가 토론회를 열고 ‘주택임대차 등기 의무화’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임차권과 관련된 내용을 부동산등기부에 공시함으로써 임차인이 손쉽게 정보를 열람해 전세사기 위험을 사전에 파악하고, 임대인의 이중계약 등으로 발생하는 전세사기를 예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김천일 강남대 부동산건설학부 교수는 공시 내용을 외부에서 파악하기 힘든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주임법)에 의한 임대차 공시방법을 “깜깜이 공시”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라도 주택임대차 등기를 의무화해야 세입자의 권리를 강화할 수 있고, 임대차 권리와 관련된 제3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천일 강남대 부동산건설학부 교수가 23일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9.23 ⓒ민중의소리

40년 전 쉽고 편한 방식 선택한 정부가 전세사기 키웠다


지난 23일 <민중의소리>와 만난 김천일 강남대 부동산건설학부 교수는 “43년 전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생길 때 주택임대차 등기를 의무화했다면 지금과 같은 대규모 전세사기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주임법)은 사회적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1981년 제정됐다. 주임법에 따르면 임대차는 등기가 없는 경우에도 세입자가 주택의 점유와 주민등록을 마치면 그 다음날(익일 0시)부터 대항력을 가진다.

주임법 제정 이전에도 민법에서는 세입자가 대항할 수 있도록 임차권 혹은 전세권을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입자가 임차권 혹은 전세권을 취득하기 위해선 임대인의 동의가 필수였다. 때문에 당시 집주인들이 집을 다른 사람에게 팔고 야반도주해 세입자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일이 속출했다.

김 교수는 주임법 도입 때부터 임차권 공시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현행 주임법하에서는 외부 이해관계자들이 임차 관련 정보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세입자들이 임차 관련 정보를 알기 어려울뿐더러, 확인하려고 하더라도 관련 정보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어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며 “이런 점에서 현행 공시방법은 불완전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현재 임차권과 관련된 정보원은 ▲부동산등기부 ▲실 소재지 ▲주민등록지 ▲확정일자부로 흩어져 있다. 세입자가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들 전부를 확인해야 한다. 게다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집주인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김 교수는 “전세사기가 터지니까 정부가 그제야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임시방편으로 임대인이 동의하면 한정적인 상황에서 주민등록을 열람할 수 있게 하고 있는데,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김천일 강남대 부동산건설학부 교수가 23일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9.23 ⓒ민중의소리

대항력 발생시점이 전입신고일 다음날로 정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주택에 대한 점유 및 주민등록을 마친 때와 제3자 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나 저당권설정등기가 마쳐진 때 사이의 선후를 증명할 수 없거나, 같은 순위인 경우의 어려움 피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면서 “문제는 대항력이 전입신고 다음 날 발생하는 점을 악용해 주택 점유 당일 집주인이 세입자 모르게 대출을 받거나 저당권을 설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경우 세입자의 임차권은 후순위로 밀린다. 이에 따라 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후순위인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도 커진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주택임대차등기를 의무화해야 하는 근거로는 임대차 권리관계의 변동이 제3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임법에 따르면 주택 점유와 주민등록을 마쳐 확정일자를 갖춘 세입자는 민사집행법에 의해 경매 또는 공매시 해당 주택의 낙찰 대금에서 후순위권리자 및 기타 채권자보다 우선해 변제받을 ‘우선변제권’이 있다. 또 세입자가 주임법에서 규정하는 ‘소액임차인’인 경우 대항력 요건을 갖추면 주택가액의 1/2 범위 내에서 보증금 중 일정 금액을 선·후순위에 관계없이 가장 먼저 변제받을 수 있는 최우선변제권도 갖는다.

김 교수는 “세입자에게는 우선변제권이 주어지는 만큼 임대차의 권리관계 변동이 제3자에게 영향을 미친다”며 “따라서 다른 이해관계자들에게 공시해야 하는 게 맞다. 등기의 원칙에 따라 공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세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원인으로는 쉽고, 편한 방식을 선택한 결과라고도 했다. 세입자에게 우선변제권이 주어지는 임대차의 권리관계 변동은 제3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공시의 원칙이 적용돼야 하지만, 주임법 제정 당시 ‘등기’ 대신 ‘거주’를 임차권 공시 방식으로 하는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주임법의 임차권 공시 방식이 법 논리적 모순과 사기 문제에 취약한 모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쉽고 편한 방식으로 흘러가 하나의 제도로 굳어져 버렸다”며 “그런 제도가 잘못돼 있다는 것을 알리고 수정해야 한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정부는 지금이라도 등기부에 부동산에 대한 권리관계를 명확히 공시해 일반인들의 거래안전을 도모해야 한다”며 “그래야 세입자들이 등기를 통해 전세사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예측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주택임대차등기 의무화’의 필요성이 제기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4년 지원림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 교수가 법무부 용역 과제를 통해서 주택임대차등기 의무화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 이전에도 대한법무사협회와 일부 학자들이 주택임대차등기 의무화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다만 정치권에서 관련 법안을 발의한 사례는 없었다.

김천일 강남대 부동산건설학부 교수가 23일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09.23 ⓒ민중의소리

복잡해지는 절차·비싼 비용 문제? “해법 있다” 


주택임대차등기 의무화의 한계로 지적되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대안을 제시했다.

그동안 부동산 업계에서는 주택임대차등기 의무화와 관련해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했다. 그중 하나가 주택 시세를 알기 어려운 신축 빌라나 다가구주택 등의 경우 주택임대차등기를 의무화하더라도 전세사기를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시스템 연계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법무 시스템 ▲중개 시스템 ▲대출 시스템 ▲보증 시스템 ▲감정평가 시스템 등을 연계한 체계 구축을 통해 확보한 데이터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법무·중개·대출·보증·감정평가 등을 하나로 연계한 시스템 구축을 통해 보다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빌라나 다가구 할 것 없이 보다 정확한 보증금 정보가 공시를 통해 쌓이는 것”이라며 “등기 의무화 도입 초기엔 시세를 파악하기 어렵더라도 3년 정도만 데이터를 쌓으면 인근의 전세 보증금 시세를 파악해 어떤 주택이든 그 가치를 손쉽게 역산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주택임대차등기 의무화로 인해 복잡해질 절차와 비용 소모 우려에 대해서는 전자등기 도입을 해결책으로 내놨다. 다만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은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전입할 때나 확정일자를 받을 때 주민센터에 신분증을 제시하는 과정은 현재와 동일하게 유지하되, 나머지 등기절차를 전자등기방식으로 간소화하는 식이다.

김 교수는 “등기 의무화가 적용된다면 당연히 관련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될 것”이라며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전자등기를 도입해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등기 비용 우려에 대해선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전입신고와 달리 임차권 등기는 비용이 드는 건 맞다”면서도 “임차권 등기는 전세권 설정과 달리 비용 발생 비용이 적다. 우려하는 수준의 비용이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현재 전세권설정등기의 경우 보증금의 0.24%에 해당하는 등록면허세 및 지방교육세의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주택임차권설정등기는 차임(주택 임대에 따른 월 사용료)의 0.24%다. 하지만 전세처럼 차임이 없는 경우에는 7,200원이다.

주택임대차등기를 의무화하더라도 집주인의 체납 정보를 알 수 없다는 한계에 대해선 인정했다. 오히려 등기 의무화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등기부에 체납 정보를 포함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집주인의 체납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조세채권은 물건에서 돈을 빼가는 데 있어 가장 우선하는 채권”이라며 “국가가 세금을 매기는 건 언제든 가능한 만큼 주기적으로 등기부에 체납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조세채권은 세입자의 보증금 채권보다 선순위가 된다. 예컨대 전세사기 주택에 대한 경매가 진행되면 해당 부동산에 부과된 재산세, 상속세, 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의 당해세는 전세보증금에 선순위 권리를 갖는다. 문제는 현재 주임법에서는 압류등기를 하기 전까지 체납 사실을 알 수 없다.

김 교수는 “임차권을 등기부에 공시하게 되면, 국가에도 체납 정보 공시를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임차권을 완전히 공시하는 만큼 국가도 체납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고 요청할 명분이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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