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에서 느닷없이 발표한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 신설을 두고 의료계와 정치권에서 냉담한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에 위원회를 새로 만들어 의사 증원 규모 등에 대한 의료계의 입장을 듣겠다는 계획인데, 이는 정부의 '2천 명' 증원 고집에 등 돌린 의료계가 일찌감치 불참 의사를 밝힌 기구다.
30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고령화에 따라 급증할 의료 수요에 대응하고 필수·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필요한 적정 의료인력 규모를 분석하기 위해 의료인력 수급 체계와 조정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제도화한다"고 밝혔다. 전날 대통령실이 공론화한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 설치를 뒷받침하는 발표다.
정부는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를 연내 출범하고, 추계 대상 직종인 의사·간호사 등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참여 위원도 해당 직종 단체에서 추천받기로 했다.
하지만 의사 단체의 입장은 부정적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 "정부의 잘못된 정책 철회·사과 없이는 의사인력 추계기구에 참여 불가"라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의협은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 등 잘못된 의료정책을 강행해 현재의 의료대란을 초래한 것에 대해 먼저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의협은 앞서 지난 6월 의료개혁특위가 의대 정원을 포함해 의료인력 추계와 관련한 회의체를 조직하겠다고 예고했을 때도, 2025학년도 의대 정원부터 논의하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의협은 이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를 출범하더라도,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은 이미 대학 입시 절차를 밟고 있어 재논의가 불가능하다는 방침이라 견해차는 팽팽하다.
정치권에서도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나왔다.
특히 국민의힘에서는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을 촉구해 온 친한(친한동훈)계를 중심으로 정부의 별도 기구 신설이 당정 간 의료 정책 '엇박자'를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가 출범하면 한동훈 대표가 요구해 온 여야의정 협의체는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한 대표의 목소리 또한 정부의 '논의 불가' 방침에 묻힐 수 있다.
국민의힘 김종혁 최고위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발표한 건 아닌 것 같다"며 "여야의정 협의체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이쪽(대통령실)에서 다른 추계기구를 만들겠다고 얘기하면 이걸(협의체를) 무력화시키고 정부가 따로 그냥 하던 대로 하겠다는 거구나, 이런 오해를 살 수가 있다"고 비판했다.
정광재 대변인은 MBC 라디오에서 "당정 관계가 굉장히 원활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비춰졌다면 정부에서 만든다고 한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와 여야의정 협의체가 긴밀히 협의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정부의 노력'으로 평가됐을 텐데, 그렇지 않은 모습으로 비친다"며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 과정에서 여야의정 협의체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협의체가 빨리 출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를 겨냥한 듯 "국민만 생각하고, 보다 유연하고 포용적인 입장으로 출범에 나서주실 것을 부탁한다"며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국민이 바라는 여야의정 협의체 출범을 위해서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반응도 비판적이다. 민주당 의료대란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박주민)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부는 의료계는 물론 국민적 신뢰도 잃었다. 윤석열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 산하에서 나온 결과는 그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는 '2025년 증원 2천 명'이 과학적이고, 결정 과정도 합리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왜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가 이제서야 필요한가"라며 정책 혼선에 대한 사과를 촉구했다.
민주당 특위는 "정부 마음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기구가 아니라 법적 근거를 갖춘 추계기구가 필요하다"며 보건의료인력법 개정안을 발의해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 설치를 법제화하고, 구성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