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고 수사외압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검법이 또다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안) 행사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30일 국무회의에서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했고, 윤 대통령 재가를 앞두고 있다. 벌써 같은 법안에 대한 세 번째 거부권이다. 이는 헌정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박정훈 대령이 주도했던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수사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사망 사고의 책임자로 지목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와 국방부 윗선의 압력,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수사를 거쳐 경찰의 ‘임성근 불기소’ 처분으로 뒤집혔다. 심지어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수사 결과를 보고받은 해병대 사령관과 국방부 이종섭 당시 장관 등은 모두 수긍했고, 보고 자리에 배석했던 참모들은 일제히 ‘잘 된 수사’라고 칭찬했었다. 그러나 대통령실 보고를 거친 직후에 돌연 임 전 사단장을 혐의 대상에 포함시킨 데 대한 국방부 고위 간부들의 질책과 해병대 사령관의 고민이 시작됐고, 초동수사 결과를 뒤집기 위한 상황 전개가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결국 임 전 사단장을 과실치사 혐의자로 지목한 초동수사 책임자이자 윤 대통령발 외압 의혹을 폭로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도리어 항명죄로 내몰렸다. 주요 수사 국면에서 윤 대통령과 이시원 전 법률비서관,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 등이 사건 관계인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이 공개되는 등 수많은 정황 근거들이 윤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을 가리키고 있지만, 경찰과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기존 수사기관에서의 진상규명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아울러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 이종호 씨의 ‘VIP 로비’ 관련 통화녹음까지 공개됐지만, 어떤 규명 절차도 없이 단순한 ‘허세’로 치부되는 기괴한 상황을 우리는 목도했다.
박 대령의 항명 사건을 심리하는 군사법원은 윤 대통령의 ‘격노’ 및 이종섭 전 장관과의 통화 경위에 관한 사실조회 신청을 받아들여 윤 대통령을 상대로 서면조사를 시도했지만, 대통령실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으로 응할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이처럼 윤 대통령은 물론이고 대통령실은 이번 사안의 진상규명 과정에 비협조적으로 일관하고 있다. 작년 7월 채상병이 사망했을 때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한 사람이 바로 윤 대통령이었다. 분명한 현실은 진상규명을 지시한 사람이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덧 채상병이 순직한지 1년이 훌쩍 지났고, 가장 최근엔 채상병의 전역 예정일이었다.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에도 유족들은 여전히 채상병이 누구의 어떤 잘못된 작전 지시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답답함과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채상병의 어머니는 아들의 전역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있던 지난 25일 “내일이면 전역인데 돌아올 수 없는 아들이 되어 가슴이 아린다.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 너무 속상하다”며 “왜 구명조끼 미착용 상태로 투입 지시를 했는지, 육군은 위험을 감지하고 철수를 했는데 왜 해병대는 (수색을) 강행해 아들이 돌아올 수 없게 되었는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하며 가슴을 쳤다.
윤 대통령의 이번 거부권 행사로 인해 재표결이 부결되면,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또다시 특검법을 재발의해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과의 만찬 자리에서 한마디도 뻥긋하지 못했던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장 어떤 유의미한 리더십을 발휘해 재표결 가결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상황에서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의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 청구안 발의는 꽤 의미가 있다. 박 의원은 이날 청구안을 발의하며 “채해병 특검법에 대한 세 번의 거부권 행사는 정당한 입법적 재량 범위에서 의결한 법안을 무력화하는 적극적인 성격의 재의요구권 행사로서, 권력분립 원리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했다”며 “오늘 행사한 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그 취지인 국회의 경솔한, 혹은 하자 있는 입법을 절차적으로 통제하는 기능과 국회를 견제해 국정 균형을 도모하는 기능을 넘어서 헌법 내재적 한계를 벗어나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채상병 특검법이 궁극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것은 윤 대통령의 외압 행사 여부다. 채상병 사건이 곧 윤 대통령과 관계된 사건이라는 이야기다. 헌법은 대통령의 거부권을 보장하지만, 박 의원의 언급처럼 ‘입법적 재량 범위에서 의결한 법안을 무력화하는’ 일종의 방탄 거부권까지 보장하진 않는다. 헌법 자체가 워낙 추상적이고 포괄적이기에, 헌법 재판이 형식 논리에 사로잡힐 때 사안의 특수성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의 반복되는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는 본질적으로 자기 사건에 대한 방어권 행사이자 그로 인한 적극적인 입법권 침해 행위에 해당할 소지가 다분하다. 같은 사안을 두고 세 차례나 거부권이 행사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 만큼 윤 대통령의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가 이번에 박 의원의 발의를 거쳐 권한쟁의 심판 대상이 된다면, 헌재가 반드시 적극적인 심리로 ‘내재적 한계 일탈’에 관한 유의미한 해석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