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하는 유럽 경제, R&D 늘려야

유럽 경제 ⓒ그림=뉴시스

편집자주


유럽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본격화된 계기는 작년 7월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ECIPE)가 발표한 ‘EU가 미국의 주였다면’이라는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유럽 경제가 전체적으로 쇠퇴하고 있으며, 2000년에는 프랑스, 독일의 GDP를 미국의 50개 주와 비교했을 때 각각 36번째, 31번째 주와 비슷했는데 작년에는 48번째, 38번째 주와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성장한 지난 20여 년 동안 유럽은 정체됐다는 얘기다.
이후에도 쇠락한 유럽 경제에 대한 보고서가 이어졌다.   올해 7월에는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이 2010~2023년 미국의 누적 경제성장률은 34%였는데 유럽은 이 기간 21% 성장하는 데 그쳤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특히 유로존 경제성장률은 2022년 3.4%였는데 작년엔 0.5%로 급락했다. 미국의 성장률이 이 기간 1.9%에서 2.5%로 높아진 것과 대조적이다. 그 해결책을 살펴본 포린폴리시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Why Europe Is Losing the Tech Race

미국은 세계 금융과 첨단기술 분야에서 지배적인 강국이다. 중국은 글로벌 제조업의 패권을 쥐고 있다. 그렇다면 유럽의 경제적 경쟁력과 영향력은 어디에 있는가?

유럽중앙은행 전 총재 마리오 드라기의 최근 보고서가 던지는 질문이다. 요약하자면, 드라기는 유럽연합(EU)이 곧 세계 경제 무대에서 의미를 잃을 위험에 직면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과장된 경고일까? 그렇지 않다. 미국, 중국, 유럽의 경제 데이터를 깊이 살펴보면 이 분석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U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압박받는 상황을 피하려면 혁신 자금 조달 방식부터 시작해서 경제 모델을 전면 개혁해야 한다.

유럽 경제난의 원인은 구조적이다. 한 지역의 장기적인 경제 전망을 결정하는 것은 인구 통계와 생산성 성장인데 EU는 이 두 지표 모두에서 부진하다. 인구 통계를 보자. 낮은 출산율 때문에 EU의 노동력은 2040년까지 매년 약 200만 명씩 감소할 수 있다. 이러한 열악한 인구 전망은 중요한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특히 고령화 때문에 증가하는 공공 의료 및 연금 비용을 재정 지원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생산성 면에서도 상황은 좋지 않다. 2015년 이후 EU는 연평균 0.7%의 완만한 성장에 그쳤다. 이는 미국의 절반 이하이고 중국의 9분의 1에 불과하다. 이 하나의 지표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1995년에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생산성이 대체로 비슷했다. 오늘날 유럽의 생산성은 미국보다 약 20% 낮다.

경제학자들은 유럽의 저조한 생산성에 대해 오랫동안 논의해 왔는데 낮은 노동 이동성, 과도한 관료주의, 교육 시스템의 결함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낮은 연구 개발(R&D) 지출이다. 이는 미국과 유럽의 생산성 격차를 확대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데이터는 놀랍다. 2022년 미국 R&D 지출은 8,860억 달러로 GDP의 3.4%에 달한다. 이는 EU의 3,820억 달러(GDP의 2.3%)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중국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의 공공 R&D 지출국으로 민간 지출에서도 빠르게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이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은 첨단 기술과 디지털 경제로의 글로벌 전환에서 성공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고 있다. 반면 EU는 크게 뒤처지고 있다.

EU가 인구 전망을 개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미래에도 대규모 이민을 지속하는 것이 주요 해결책이겠지만, 극우 정당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럴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생산성에 대해서는 EU가 행동할 여지가 있다.

그래서 드라기 보고서는 R&D 지출을 늘리기 위해 재정 충격을 주장한다. 그의 경제학자 팀은 EU가 미국과의 격차를 줄이고 경쟁국에 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매년 추가로 7,500억~8,000억 유로를 지출해야 한다고 추정한다. 이런 투자는 거대할 것이다. 매년 EU GDP의 약 5%에 해당하는데, 이는 어떤 기준으로도 엄청난 금액이다.

민간 부문만으로는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따라서 드라기의 투자 촉구의 성패는 유럽이 공공 R&D 지출을 대폭 증대할지에 달려 있다.

이론적으로는 이러한 규모의 자금 조달이 EU 공동 차입을 통해 가능하다. 이는 2020년에 처음 사용됐는데, 당시 EU 회원국은 유럽위원회에 최대 7,500억 유로의 채권을 발행해 코로나 이후 경제 회복을 지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동 차입이 고려 대상에 없는 것 같다. 드라기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독일 재무장관 크리스티안 린드너는 ‘공동 차입은 EU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독일이 반대함으로써 드라기의 EU 채권 제안은 당분간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드라기의 대규모 투자 촉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EU는 혁신 지출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 여전히 있다. 이 분야에서 유럽은 스타트업이 직면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것은 회원국 및 부문 간의 분산된 공공 자금 지원과 상대적으로 부족한 민간 벤처 캐피털이다.

공공 지원의 분산에 관해 드라기 보고서는 간단히 얘기한다. 27개 EU 회원국 모두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부 기술 부문에 각기 다른 형태의 재정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그 금액은 적지 않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우선 부문을 식별하기 위한 EU 차원의 협력이 부족해 여러 산업이 적은 자금을 받고 있어 유럽 기술 챔피언의 등장을 방해한다.

이러한 상황에는 대담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EU 회원국은 몇 개의 핵심 부문을 식별하고 이 분야에서 공동으로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 이는 승자 선택을 시도해 특정 기업을 선호하고 경쟁을 왜곡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각 회원국이 우선순위를 정해서 EU에 그 개발을 보조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물론 연합은 납세자의 자금 없이는 수익을 내지 못하는 좀비 기업을 유지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대신 EU는 우선 부문을 식별하고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EU 차원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어떤 부문이 공공 R&D 자금을 받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하는 책임을 EU 기관에 이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팅과 같은 첨단 기술은 EU가 전력을 다해야 할 분명한 부문이다. 데이터는 냉혹하다. 글로벌 AI 자금의 80% 이상이 미국이나 중국 기업으로 향하고 EU 기업에는 7%만 간다.

양자 컴퓨팅에서도 격차는 마찬가지다. 이 분야의 글로벌 상위 10개 기업 중 7개가 미국 기반이다. 2개는 중국, 1개는 일본 기업이며, 유럽 기업은 없다. 이 두 분야에서 회원국 간의 자원 결집은 유럽과 경쟁국 간의 격차를 메우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EU 기술 챔피언의 등장은 추가적인 이점을 가져올 것이다. 이는 유럽의 위치를 글로벌 벤처 캐피털 펀드의 레이더에 올려놓을 것이다. 2013년 이후 미국 스타트업에 투자된 벤처 캐피털은 유럽 스타트업보다 약 5배 많다. 유럽에서 이러한 자금 부족은 스타트업에 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2008년 이후 EU에서 탄생한 147개의 유니콘 중 약 3분의 1이 결국 해외로, 주로 미국으로 이전했는데, 이는 유럽에서 사업을 확장할 충분한 자금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EU와 각국의 규제 난맥을 정비하는 것도 유럽의 벤처 캐피털 펀드에 대한 매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EU가 드라기의 대규모 투자 촉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거대한 자금 지원이 없더라도 EU가 세계 경제 무대에서 유의미하게 남기 위해 생산성을 높일 방법이 있다. 물론 그런 조치로는 유럽과 경쟁국 간의 격차를 메우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은 EU의 경제적 쇠퇴를 늦출 수는 있다.

위험은 크다. EU의 혁신 자금 조달을 개혁하지 않으면 경제력, 기술 역량, 지정학적 중요성을 위한 글로벌 경쟁에서 EU가 미국과 중국에 계속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유럽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없이는 관대한 사회 모델을 재정 지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유럽의 생산성 격차를 해결하는 것은 새로운 유럽위원회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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