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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태원 참사 용산구청장 무죄, 어느 국민이 납득하나

이태원 참사에 대한 부실대응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59명의 시민이 희생당한 참사에서 해당 지역 지자체장에게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누가 이 나라의 행정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박 구청장은 참사 당일 대규모 인파로 인한 사고 발생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안전관리계획을 세우지 않고, 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적정하게 운영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또 부실 대응을 은폐하기 위해 사고 현장 도착 시간과 재난 대응 내용 등을 허위로 작성해 배포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박 구청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는 30일 판결에서 용산구의 재난 당시 대응에 대해 “업무상 주의 의무는 자치구의 추상적인 주의의무에 해당할 뿐 피고인들의 구체적 주의의무를 규정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재난안전법에 다중 운집으로 인한 압사 사고가 재난의 유형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았고,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서도 별도의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마련하고 있지 않아 피고인들에게 어떤 업무상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판결대로면 법으로 명시돼 있지 않으면 어떤 위험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지자체장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법에 명시된 업무상 주의 의무조차도 추상적 규정이라면, 행정기관의 장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나서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재난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 행정기관의 장은 법에 명시된 재난인지, 문제가 발생한 행사에 주최자가 있는지부터 확인해보라는 말인가. 이 판결을 국민에게 납득하라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박 구청장은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사고 현장 도착 시간과 재난 대응 내용을 허위로 작성해 배포한 바 있다. 공적발표를 조작해 시민들을 속이는 행위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티끌만큼의 죄도 인정하지 않았다.

1심 판결에서 사법적 책임이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과 별개로 박 구청장은 지금껏 용산구청장 자리를 지키며 그 어떤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대통령도 행정안전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시민 159명이 숨지는 대형 사고가 터졌는데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와 행정을 어느 국민이 믿을 수 있겠는가. 이태원 참사가 또다른 국가적 참사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 보루라 여겼던 사법부에서도 그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된다면, 국민은 이 국가를 믿을 수 있겠는가.

이제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가 더욱 중요해졌다. 용산구 뿐만 아니라 서울시와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의 대응의 문제점까지 제대로 조사해 진상과 책임을 밝혀야 한다. 항소심을 통해 박 구청장에 대한 책임을 다시 물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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