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세수 펑크를 낸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주기로 한 지방교부세를 깎겠다고 하자, 지방 행정 일선이 혼란에 휩싸였다. 지자체는 당장 이번 달에 교부세가 안 들어오는지, 깎인다면 얼마나 깎이는지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정부의 막무가내식 재정 운용이 지자체 재정 운용의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29조 6천억원의 세수 결손에 대응해 교부세를 감액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매년 지방정부에 내국세의 19.24%와 종합부동산세를 교부세로 내려보낸다. 올해 교부세 예산 규모는 66조 7,593억원이다. 정부는 예상보다 세수가 덜 걷히자, 결손을 충당하기 위해 교부세를 깎으려 하는 것이다. 기재부는 최근 세수 재추계를 발표해 세수 결손을 공식화했다.
나라살림연구소 분석 결과, 올해 교부세 감액 규모는 4조 2천억원으로 추정된다. 교부세 예산에 세수 결손을 반영한 값이다. 광역시도 평균 감소 추정액은 762억 3,200만원이다. 제주(1,232억원), 경남(1,224억원), 부산(1,100억원)은 감액 추정액이 1천억원을 넘었다. 시군 평균 감소 추정액은 각각 210억원, 158억원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해 세수 재추계 결과를 발표하면서 교부세 감액 규모를 제시했으나, 올해는 교부세 감액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을 내놓지 않았다. 교부세 감액 여부와 감액 규모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행정안전부·국회와 협의를 통해 10월 중 확정한다는 게 기재부 공식 입장이다.
지자체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 도청의 예산 담당자는 “세수 재추계 발표 직후 행안부 쪽에 문의해 봤는데, 아직 구체적인 대책이 없고 협의를 통해 대책을 세우겠다는 방향만 나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만일 교부세가 안 온다고 하더라도, 전부를 다 안 주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해당 도는 올해 받기로 한 교부세 가운데 10~12월분 약 2,500억원을 아직 받지 못했다. 세수 결손분 전액을 교부세 반영하면 900억원 이상이 감액될 것으로 추산된다.
한 광역시청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교부세 감액이 시 예산에 미치는 영향을 예상하기 어렵다”며 “감액 규모가 미미하면 큰 영향이 없겠지만, 상당 규모 감액할 경우 세출 구조조정 등이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광역시는 올해 잔여 교부세 약 2,100억원 중 최대 700억원 이상이 감액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관계자는 “20억~30억원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라, 최대치가 감액될 경우 타격이 크다”며 “지자체 주요 세입원이 지방세와 교부세인데, 교부세를 이렇게 감액하는 게 맞나 싶다”고 하소연했다.
기초단체도 세입의 상당 부분을 교부세에 의존하고 있어, 교부세가 깎일 경우 타격이 크다. 수도권의 한 기초단체 관계자는 “지방 입장에서는 지방세나 세외 수입은 거의 고정돼 있어 더 거둬들일 수 있는 여지가 없고, 결국에는 교부세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이라고 했다. 해당 지자체의 올해 세입 예산 가운데 교부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3.1%에 이른다.
정부가 지자체 재정 운용의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보수 시장주의 진영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예측 가능성”이라며 “여야가 합의하고 정부가 예산서를 작성해 1천억원의 교부세를 주겠다고 했는데, 1천억원을 줄지, 900억원을 줄지, 800억원을 줄지 아무도 모르는 황당한 일이 시장주의를 역설하는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교부세 감액 사태에 여력 소진…‘돈 남겨’ 왜곡된 신호로 읽힐 우려
지자체들은 지난해의 악몽을 떠올린다. 정부는 지난해 56조원의 세수 결손을 내고서 교부세 8조원을 불용 처리했다. 지난해 9월 세수 재추계를 발표하면서 교부세 11조원을 감액한다고 했다가, 12월에 3조원을 추가 교부했다. 각 지자체 자체 재원을 활용하면 된다며 교부세 감액을 강행한 것이다.
당시 지자체들은 전격적인 교부세 감액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진행이 어려운 사업 예산을 불용 처리하는 수준을 넘어, 경상경비와 업무추진비를 삭감하는 등 구강도 세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체납액 징수를 강화하기도 했다. 정리 추경(당해연도 마지막 추경)에서 예산을 감액하는 한편 체납액 등 세외수입을 쥐어짜 지출과 수입을 짜맞췄다.
비상금을 헐어 쓴 지자체들도 있다. 지자체는 매년 집행되지 않은 돈을 재정안정화기금에 적립하는데, 지난해 교부세 감소로 재원이 부족해지자 재정안정화기금을 끌어다 썼다.
지난해 여파로 기금 등 여유 재원을 활용할 여력이 없는 지자체는 올해 교부세 부족분을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남도의 재정안정화기금은 2022년 결산 기준 809억원에서 지난해 결산 기준 102억원으로 707억원 감소했다. 900억원이 넘는 올해 교부세 감소 추정액을 메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교부세가 가장 많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 제주도의 재정안정화기금은 1년 새 3,336억원에서 1,350억원으로 1,986억원 줄었다.
한 도청 관계자는 “올해 중앙정부가 주기로 한 교부세를 바탕으로 도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에 갑자기 이 돈을 안 주면 어려움이 있다”며 “안 그래도 여유 재원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복되는 교부세 감액은 지자체에 여유 재원 쌓으라는 왜곡된 신호로 읽힐 우려가 있다. 약속한 돈이 계속 안 들어오면 지자체로서는 지출을 최소화해 향후 있을지 모를 교부세 감액에 대비하려는 요인이 생긴다. 지자체가 예산을 소극적으로 운영하면 여유 재원이 늘어나는 반면,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축소된다. 지자체가 수입을 최대한 활용해 예산 사업을 펼쳐, 지역 경제 마중물 역할을 하기 어려워진다.
실제 일부 지자체는 올해 정부 예산안에 따른 교부세를 80%만 반영했다. 교부세가 덜 들어올 것으로 가정해 예산을 짠 것이다. 교부세 감액 사태에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으나, 근본적으로는 지자체 재정 역할이 위축됐다는 부작용을 낳았다.
중앙정부 세수가 덜 걷히더라도 교부세를 예산대로 지급하는 게 지방자치 원칙에 부합한다. 법적 근거도 마련돼 있다. 지방교부세법에 따르면, 중앙정부 세수 결손 시 교부세를 당해연도에 바로 감액하지 않고 2년 뒤까지 미룰 수 있다. 1~2년 뒤 경기가 개선돼 국세와 지방세가 늘어나는 시기에 교부세를 감액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방정부 재정이 중앙정부 세수에 따라 급변하는 것을 막기 위한 충격 완화 장치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국세 결손에 따른 교부세 감액분을 2년에 걸쳐 조정할 것을 정부에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정부가 국채 발행 등을 통해 세수 결손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소를 해야 하는데, 교부세 감액으로 세수 결손을 충당하다 보니 그 여파가 지방정부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고 결국 그 피해는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지자체들 바람대로 정부가 교부세 감액분을 사후 정산할지는 미지수다. 윤석열 정부가 교부세 감액분 사후 정산을 거부하는 이유는 재정건전성이라는 철칙과 닿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부세를 예산에 맞게 지급하려면 국채를 추가 발행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국채 발행해 부채를 늘리는 건 미래 세대에 부담을 준다며, 긴축 예산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국채 발행을 거부하며 긴축 예산을 짜고, 세금이 덜 걷히자 그나마 약속한 교부세도 안 주겠다는 행태다. 정부는 올해 1분기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을 역대 처음으로 45%를 넘기면서, 재정건전성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교부세를 감액하려면, 예산 감액 추경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회 심의를 거치게 된다. 정부는 지난해 감액 추경 없이 교부세를 깎았다.
교부세 감액은 위헌 소지가 있다. 지난해 일부 지자체장은 교부세 감액이 지방의 자치권과 재정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국회의원들도 예산심의권 침해를 지적하며 동참했다.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기재부는 국회 심의를 거쳐 정해진 교부세를 강제로 불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부가 또다시 헌법을 위반하면서 교부세를 감액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