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매거진 두번째 책을 만들며 찾아간 홍천 밤볼라까사. 청년창업이라는 맵고 진한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필자 제공
얼마 전 홍천읍 외곽에 새로운 어린이 도서관이 개관했다. 아이들과 다녀온 엄마, 아빠들은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탁 트인 계단식 책 보는 공간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아기자기한 자료실을 보고 “도서관이 정말 너무너무 좋아! 홍천 같지가 않아!”라고 입을 모았다. 재미있게도 홍천에서 조금 좋은 시설이 생기면 젊은 사람들은 ‘홍천 같지 않게’ 좋다는 말을 종종 한다. 마치 자연스럽게 생긴 관용어구가 된 느낌이랄까.
‘홍천 같은 건’ 뭐고 ‘홍천 같지 않은 건’ 뭘까? 물어보면 딱히 답을 못하지만 그동안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눈에는 새로울 게 없는 고만고만한 건물과 시설물이 아니라 더 아름답고 세련되어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내가 더 나아진 사람이 되는 느낌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동안 좋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채워지는 충족감이 부족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공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관계다. 사람은 거울을 보듯 다른 사람들에 나를 비춰 보며 자신을 조율하고 방향을 찾아나간다. 홍천은 인구 7만의 작은 지역이라 이곳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산 사람들은 ‘내가 웬만한 이 지역 사람들은 다 아는데..’ 하는 자신감이 있다. 신기하게 어느 집의 부부, 아들, 딸, 며느리, 손주들의 삶의 궤적들은 켜켜이 몇십 년의 역사를 만들고 수많은 관계들로 중첩되어 지역 고유의 성질 같은 것을 만들어 낸다. 너무 잘 알아서, 새로울 것 없이 시시해져 버린 공간과 관계에 어떤 이야깃거리로 활력을 찾아야 할까?
홍천상상 로컬 매거진을 준비하면서 흔히 다른 지역의 매거진처럼 담고 싶은 것이 많았다. 혼자서 취재하고 사진 찍고 글 쓰고 편집까지 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사람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담아내자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살아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공간과 장소,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지역의 역사, 문화 등을 찾아가 보자. 막상 첫 시작을 못해서 머뭇거리다가 일단 한 분이라도 만나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내고 그 시작점으로 연결 연결해서 완결해 보자는 마음으로 약속부터 잡았다.
홍천 상상 첫 번째 인터뷰이는 같은 학부모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교육청에서 아동복지를 담당하는 분이었다. 몇 번 같이 일해 본 적도 있지만 깊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 쑥스럽지만 마주 앉아서 진지하게 살아온 이야기,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묻고 들으며 기록해 갔다. 홍천지역의 돌봄과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을 관리하고 이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도움을 주고 싶은 곳 사이에 적절한 지원을 조율하고 고민하는 일을 찬찬히 설명해 주셨다. 아동복지 지원의 방법도 몇 년 사이 굉장히 세분화되어 한 달에 한 번 함께 밥 먹으면서 이야기 나누기, 집 정리정돈, 수학여행 경비 지원 등 다양했다. 오직 아이만 생각하며 안 되는 일도 어떻게 하면 되게 만들까 고심하며 일한다는 말씀에 이런 이야기를 안 들었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곳곳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그런다고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더 기여하고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첫 번째 인터뷰를 시작으로 연결 연결해서 다섯 명의 인터뷰를 다 마치고 난 다음 홍천 사람들 인터뷰 섹션 이름을 ‘상상하는 홍천사람’으로 지었다. 내가 만난 홍천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치열하게 상상하고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 같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렇게 다양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홍천상상 로컬 매거진이 나왔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홍천 같지 않은 느낌의 책이네’(위에서 말했듯이 이건 칭찬이다!), ‘홍천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어?’라는 감탄사다.
홍천상상의 첫번째 인터뷰이. 첫 인터뷰의 감동으로 로컬 매거진을 밀고 나가는 힘을 주셨다. 사람에게서 받는 에너지는 많은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 ⓒ필자 제공
“네! 맞아요! 홍천엔 이런 꿈을 가지고 이런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이제 당신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책이 몇 권 더 나오면 홍천 이곳저곳 사람이 모이는 곳에 작은 수레에 가판대를 만들어 끌고 나가 좌판을 벌여보는 것이 꿈이다. 로컬 매거진도 쌓아놓고 팔고 궁금해서 다가오는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도 사는 사람이 되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