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쓍응....” 얼마 전 광화문 근처를 걷는데 국군의 날 행사 훈련을 하는 전투기가 서울 상공을 저공 비행하며 나는 소리가 너무나 시끄럽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모두 귀를 막고 얼굴을 찌푸렸다.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소음이다. 순간 나는 팔레스타인에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대한민국 땅에 있는 우리에게 전투기의 비행이 시끄러운 소음에 그친다면, 팔레스타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장 목숨을 앗아가는 죽음의 무기다.
10월 7일이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학살한 지 1년이 된다. 사망자만 4만 명이 넘고 부상자가 9만 명이 넘는다. 숫자로 드러낼 수 없는 희생자와 가족들의 삶, 고통과 비극들….
전국 214개 단체가 참여하는 연대체인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하 팔레스타인 긴급행동)은 10월 5일 2시 보신각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1년을 규탄하는 전국집중행동의 날 집회를 연다. 팔레스타인긴급행동에 참여하는 문화예술인들이 학살의 참극을 표현하고자 희생자들의 이름을 함께 새기는 퍼포먼스를 준비한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이 9월에 공개한 올해 8월 말까지 이스라엘에 집단학살당한 주민 중 신원이 파악된 34,344명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희생자 전체는 너무 많아 1년도 살지 못한 아기들의 이름을 넣기로 했는데, 그 인원이 710명이라니!. 미리 몇 개는 준비하려고 나도 펜을 들었다. 가슴이 저며온다. 그 아기들은 올리브나무 사이로 걸어보지도 못한 채 죽어야 했구나.
펜을 드니 지난 3월 이스라엘이 라파 난민촌을 공습해 민간인이 죽었을 때 5개월 되지 않은 아기를 잃은 여성이 울부짖음이 맴돈다.
“우리는 자고 있었고 총을 들지도 않았고, 싸우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우리가, 이 아이들이 무엇을 잘못했나요?”
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없다. 죽음의 이유라면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일 뿐! 1948년에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의 땅을 무단 점령해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을 세워 벌어진 비극이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의 존재와 존엄성에 신경을 쓰지 않고 유대인의 국가를 세웠다. 그리고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구제국주의의 동조로 현재까지 이어왔다. 그리고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의 저항 정치세력인 하마스의 공격을 빌미로 이스라엘은 1년째 집단 학살을 벌이고 있다. 2007년부터 만들어진 가자지구 분리장벽을 통과하던 의약품과 식량조차 차단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미사일만이 아니라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마치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모두 없애면 그 땅이 이스라엘의 것이 될 것이라는 듯, 폭격을 멈추지 않는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단하라는 결의안을 채택했고,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스라엘에 점령 중단을 권고했고,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를 전쟁범죄로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등 국제기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연대는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길
밤에 자다가,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이유 없이 죽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거대한 학살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한다. 막강한 군수자본과 무기를 앞세운 이스라엘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겠느냐는 뻔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무기력함에 빠진 당신에게, 아니 우리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침묵이 팔레스타인인들은 더욱 절망에 빠뜨릴 뿐 아니라 학살자들이 원하는 것이 우리가 무기력함에 빠지는 것이라고. 미국 뉴욕 집회에서 참여자가 쓴 피켓 문구처럼 “침묵하는 것은 공모하는 것”이다. k-pop을 사랑해 한국에 유학 온 이집트인 아스라는 k-pop 스타들이 지난 1년간 이스라엘의 학살에 침묵하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며, 한국에서 열리는 팔레스타인 긴급행동 집회에서 아랍어 통역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의 연대는 팔레스타인 저항의 밑거름이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전 세계 민중이 일군 것들을 되돌아보면 좋겠다. 전 세계에서 어느 때보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대규모로 일어나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격을 지원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도 팔레스타인 학살을 멈추라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콜럼비아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이스라엘과의 교류를 중단하라고 시위하고 있다. 많은 대학생들이 연행되기는 했지만, 워싱턴주 에버그린대학은 이스라엘 관련 기업들과 거래·투자 중단을 약속했고, 포틀랜드주립대는 보잉사와 거래·투자 중단을 약속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심지어 유엔 인권기구가 아니라 국가 간의 연합체인 유엔 총회에서도 9월 18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은 불법이니 1년 안에 철수하라는 결의안이 143대 9의 찬성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1967년부터 팔레스타인 땅에 주둔한 병력을 철수하고 이스라엘 정착촌 주민을 이주시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할 뿐 아니라 이란과 레바논을 공격하며 중동지역으로 전쟁을 확대하고 있다.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 시민들의 반대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중동 내에서의 군사적 정치적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 지상전까지 치르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전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것을 막는 것은 팔레스타인 해방에 기꺼이 연루되려는 것뿐이다. 우리의 연대운동에는 자국 정부에 유엔총회의 결의를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도 포함된다. 지난 유엔 총회의 결의는 유엔 회원국은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생산된 물품을 수입하지 말 것, 탄약과 무기, 군수장비의 거래를 하지 말 것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유엔총회 결의안 투표 당시 기권을 했을 뿐 아니라 유엔 회원국에게 권고한 내용을 하나도 이행하고 있지 않다. 한국의 군수 자본은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해 돈을 벌고 있다. 2023년 10월 이후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에 최소 128만 달러(약 17억 6천만 원)의 무기(총기, 탄약, 부품)을 수출했다. HD현대와 HD현대건설기계의 굴착기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내 주택 파괴에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한국정부와 한국 기업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공급을 중단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존재가 저항”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스라엘을 건국한 시온주의자들의 최종 목적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절멸, 즉 인종청소이기 때문이다. 살아남는 것이 이스라엘의 목적을 방해하는 일이자 식민 지배를 폭로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가자지구 봉쇄로 일상적인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2024년 현재 가자지구에선 ‘사는 것 자체가 투쟁’인 비참한 현실이다.
팔레스타인을 살아남도록 하는 힘은 전 세계 민중들의 연대밖에 없다. 연대는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를 알고 있는 수 많은 민중이 있다는 증거다. 연대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모조리 죽인다고 그 진실을 숨길 수 없다는 정의의 외침이고 메아리다. 그 외침을 듣고 이스라엘은 흠칫할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연대하는 것은 중동 확전을 멈추는 일이다. 우리의 평화와 연결되어 있다. 팔레스타인에게 ‘존재가 저항’인 것처럼, 그들을 저항을 뒷받침하는 국제연대는 거대한 제국주의 세력을 제어하는 해방운동일 수밖에 없다.
‘해방의 연대자’ 얼마나 멋진 말인가! 10월 5일 집회의 제목처럼, 팔레스타인 해방의 연대자가 되기 위해 많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