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정훈의 학교 밖 세상] 고교 무상교육 예산 99.4% 삭감한 겁 없는 대통령

지난 9월 16일 정부가 2025년도 예산안을 제출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황당한 일들이 하도 많이 발생해서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데, 올해 9,438억이었던 고등학교 무상교육 예산을 내년에 99.4% 삭감하여 52억 원으로 편성했다는 뉴스를 보면서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0%, 20%도 아니고 거의 전액을 삭감했다니 임기 5년짜리 대통령이 정말 겁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무상교육 예산 전면 삭감은 지난 10여 년간 우리 국민이 이뤄온 사회적 합의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2011년 우리 사회는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큰 갈등을 겪었습니다. 2010년 12월 민주당이 다수파였던 서울시의회가 2011년부터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조례를 통과시키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좌파 포퓰리즘’이라 비난하며 2011년 8월 24일 서울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강행했지요. 그 결과 오세훈 시장은 임기 시작 1년 만에 사퇴했습니다. 이후 무상급식, 무상교육 등 교육 영역에서 보편적 복지는 보수진영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사회적 합의가 되었습니다.

2011년 8월 24일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되자 자신의 직을 걸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 입장을 밝히기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2011년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무상급식은 중학교, 고등학교 순으로 진행되어 2021년에 완성됩니다. 무상급식과 함께 당연히 논의된 것이 무상교육입니다. 우리 헌법은 제31조 ③항에서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의무교육이지만 고등학교는 의무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입학금, 수업료, 교과서비 등을 내야 했습니다. 1년에 200만 원 가까이 됩니다. 고등학교 무상교육은 2019년 2학기에 고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해서, 2020년 2학년, 2021년 1학년 순으로 진행되어 2021년에 완료되었습니다.

2011년 무상급식 파동 이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2019년 고등학교 무상교육의 도입은 갈등 없이 원만하게 시작되었습니다. 문제는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추진하면서 그 재원을 중앙정부 47.5%, 시도교육청 47.5%, 지방자치단체 5%가 분담하기로 한 것인데, 이 시한을 2024년 말까지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2024년이 끝나가니 정부는 이 정책이 계속 시행되도록 법을 개정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중앙정부가 지출해야 할 예산을 아예 없애버린 것입니다.

정부의 2025년 예산안이 제출되자 야당과 시민사회는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주호 장관은 말이 없고, 국민의힘의 답변은 가관입니다. 김혜란 국민의힘 대변인은 지난 10월 4일 논평에서 내년도 고등학교 무상교육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는 야권의 주장에 대해 ‘가짜뉴스’라고 공격하며, 필요한 재원은 전액 지방재정교부금으로 할 테니 학부모들의 학비 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뻔뻔하기 짝이 없습니다. 중앙정부가 고등학교 무상교육 예산을 분담하지 않으면 시도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시도교육청이 써야 할 다른 분야의 예산들을 대폭 삭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지속하기 위해 다른 교육 예산을 삭감한다면 이게 무상교육의 취지에 맞는 것입니까?

고등학교 무상교육 예산 없애버린 윤석열 정부
부자감세로 국고가 비었고
교육예산을 허튼 데 쓰기 때문


윤석열 정부는 왜 고등학교 무상교육 예산을 없애버렸을까요?

첫째, 부자들 세금 깎아주느라 국고가 비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1월 3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3년 국세 수입 실적’을 보면, 작년 국세 수입은 344조로 세입예산 400조에 비해 56조가 부족했습니다. 재벌 기업들 법인세를 23조나 깎아줬고, 종부세도 2조5천억 원이나 깎아줬습니다. 올해도 30조의 세수가 펑크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부자들 세금 깎아주느라 우리 아이들 무상교육 예산은 팽개친 것이죠.

둘째, 그나마 있는 교육부 예산도 허튼 데 쓰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내년부터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합니다. 종이 교과서 대신 태블릿피시를 주겠다는 것인데, 여기에 편성된 예산이 1조 3천억입니다. 초중고 교사 대부분이 반대하고, 그 효과가 입증된 바도 없는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정부가 목숨 거는 이유를 아무도 모릅니다. 디지털 교과서 도입으로 천문학적 이익을 얻게 될 어느 기업체가 있을 거라는 흉흉한 소문들이 돌아다니죠.

필리핀·싱가포르 국빈방문 및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순방에 나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탑승하며 인사하고 있다. 2024.10.06. ⓒ뉴시스

2019년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시작될 당시 OECD 35개 국가 중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하지 않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었습니다. OECD 국가 중 대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하는 나라도 16개에 이릅니다.

중학교 졸업생의 99.7%가 고등학교에 진학합니다.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화를 논의해야 할 시대에 고등학교 무상교육비를 거의 전액 삭감했다니 기가 막힙니다. 도대체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을 어디까지 망가뜨리려는 것일까요?

이를 바로잡을 곳은 국회밖에 없습니다. 고등학교 무상교육 관련 재정을 한시적으로 만들어놓은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서 윤석열 정부가 이런 행패를 부리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일단 급한 불부터 꺼놓고, 우리 사회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화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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