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여의도 광고탑 ‘하늘 감옥’ 아래서

건설노동자들이 고공농성 중인 여의2교 옆 광고탑 위로 해가 뜬다. ⓒ민중의소리

8일 이른 아침 여의도 초입 정류장에 내려 샛강을 따라 걸었다. 얼마 전까지 늦은 폭염을 투덜댔는데 벌써 서늘한 기운이 파고든다. 천변이라 이곳은 늘 바람도 세차다.

국회의사당 담과 마주한 여의2교 옆의 광고탑, 건설노동자 2명이 올라가 2일부터 농성 중이다. 아래서 올려보니 까마득하다. 30미터면 아파트 10층이 훌쩍 넘는 높이다.

탑 상단의 광고판은 국회의사당과 양평동 방면을 향해 전면이 있고, 광고판의 후면과 후면을 잇는 가운데 부분은 고정을 위한 철제 시설물이 있다. 농성 노동자들은 양쪽 광고판에 “살인적 일당 2만원 삭감안 철회하라, 현장갑질 근절하라” “내국인 우선고용 보장하라, 건설노동자 고용입법안 제정하라”라고 쓰인 커다란 현수막을 내걸었다. 현수막 아래는 1.8리터 물병을 매달아 고정했다.

이들은 광고탑 아랫부분의 철망 위에 초소형 농성장 겸 숙소를 꾸렸다. 나뭇가지 위의 새집과 비슷하다. 바닥은 가로세로 2미터, 1.6미터 정도라고 한다. 여기서 성인 남성 둘이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며 많은 시간 함께 보낸다. 합판과 깔개, 침낭, 그리고 비닐이 난방의 전부다. 농성 중인 김선정 경기도건설지부 부지부장의 페이스북을 보니 밤마다 자동차 굉음이 크게 울리고, 끝물 모기떼가 극성이다. 공중 높은 곳에 비좁고 추운 자리를 잡았으니 ‘하늘 감옥’이 비유만은 아니다.

하루 식사는 처음 세 끼에서 두 끼로 줄였다. 운동량이 적어 살이 찐다는 이유도 있지만, 농성장 아래에서 매끼 식사를 준비하는 동료들의 부담도 덜려는 노력이다. 일과 중엔 숙소(?)에서 광고탑 상단으로 올라가 운동도 하고, 바깥을 내다보며 찾아온 이들과 눈인사도 한다. 청테이프로 ‘살고 싶다’ 등의 구호를 만들어 투쟁도 알리고, 영광 재선거 응원하는 영상도 찍고, 농성일지도 작성한다. 외부와 교신하기 위한 생존필수품인 휴대폰은 태양광으로 충전한다고 한다. 지난해 건폭몰이 취재중에도 만났던 농성 노동자에게 보러왔다고 문자를 하니 한참 뒤 광고탑 상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광고탑 바로 아래에는 에어매트가 두 개 설치돼 있고 경찰이 몇 명 배치돼 있다. 주변에는 동료들이 타고 온 노조 차량이 여러 대 있는데, 눈에 띄는 건 건설노조울산협의회가 래핑된 버스다. 울산 건설노동자들이 천막 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소리를 듣고 숙소로 이용하라고 버스를 몰고왔다고 한다.

30미터 높이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광고탑 내부의 하단 철망 위에 새집처럼 농성장을 만들었다. ⓒ민중의소리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건설노조 악마화와 탄압의 광풍이 몰아쳤다. 노조의 모든 활동을 불법으로 몰던 정부당국과 보수언론은 민주노총이 아닌 노조의 범법행위도 ‘건설노조’라며 악선전을 했다. 신난 사측은 곳곳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고용을 거부했다. 조합원들은 살기 위해 민주노총 소속을 숨기고 일하기도 했고, 지방의 소규모 열악한 현장까지 일거리를 찾아 떠돌기도 했다. 조합원의 빈자리는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 위험한 작업도 마다않는 비조합원이나 이주노동자에 돌아갔다. 비 오날 시멘트 타설작업을 하고, 체불과 중간착취도 폭증했다. 현장은 점점 노조 설립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건설노조와 임단협을 하는 철근콘크리트 사용자들은 임금안으로 2만원을 삭감을 제시했다. 사측은 자재값이 올라 채산성이 악화됐고, 시중노임단가도 내려가고 있다고 한다. 숙련공 일당 25만원, 비숙련공 17만원 등을 두고 고임금이니 꿀 빤다니 하는 일부 반응을 보며 사측은 웃음 지을 것이다. 농성 중인 문승진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사무국장은 말했다. “매일 일이 있나. 한 달에 대개 15일정도 일하고 계절도 타는데”라고 항변했다. 숙련공 수입이 연차 쌓인 직장인과 비슷하다. 산재 제일 많은 업종, 사망사고 제일 많은 업종 노동자가 이 정도 받는다고 그걸 빼앗는 게 맞나. 출근하는 여의도의 직장인을 보며, 지금 받는 급여가 좀 많은 것 같으니 줄이자고 하면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궁금했다.

농성 광고탑과 바로 붙은 국회에서는 국감이 시작됐다. 핫이슈는 단연 김건희다. 국민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섰고, 야당의 포화는 불을 뿜는다. 윤석열, 김건희가 사라진 세상이 오긴 와야 한다. 그리고 그 세상이 더는 노동자들이 하늘 감옥에 오르지 않고, 농민들이 나락을 길거리에 뿌리지 않는 세상이길 빈다. 모쪼록 노동자들의 건강과 승리, 그리고 빠른 농성 종결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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