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애화 칼럼] 신분제 사회를 위한 교육 사다리


부모가 만드는 자녀의 미래

최근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 모임에 낀 적이 있다. 이들과의 인연은 아이들 영어에 도움을 주고자 영어 모임을 하고 싶다는 젊은 엄마들의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나도 그림동화에 관심이 있던 터라 그 모임에서 영어그림동화책 읽기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그 이후 참가자 중 몇 명이 출산과 취업으로 이어지면서 모임은 지속되지 못했다. 그래도 종종 서로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회원 중에는 학부모가 된 이들도 있다. 이들은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3학년생을 둔 회원은 대학 입시 관련 강연을 다녀왔다고 한다. 아마도 초등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연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공부를 부탁해 티처스]를 꼭 보라고 다른 엄마들에게 권했다. 자녀들의 공부법을 알려준다고 했다. 모임의 다른 회원이 “애들이 건강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키우는 거지. 억지로 시킬 필요가 있냐”고 반응했다. 그 반응이 모임 분위기를 싸하게 했지만 잠시뿐이었다. 그 반응에 “너는 아직 애가 어려서 그래”라는 대꾸가 돌아왔다. 애들이 아직 3살이니 곧 학교에 들어가면 자신들과 동일한 처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4일 서울 여의도여자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들이 1교시 국어 영역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24.06.04. ⓒ뉴시스

주의 깊게 본 적은 없지만, 나도 그 프로그램을 알고 있다. 채널 돌리다 보게 되었는데, 난 긍정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사실 나는 티처스를 보면서, 한때 논란이 되었던 [렛미인]이란 성형 예능이 떠올랐다.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고, 성형에 대해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이 높았다. 그럼에도 이 방송은 시즌 5까지 방송되었다. 물론 제작팀은 사연의 주인공들이 외모로 얼마나 큰 고통을 받으며, 외모의 변화를 통해 당당함과 자존감을 찾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성형 받은 사실에 대해서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쉬쉬했다는 것이 긍정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제는 성형이 더 이상 숨겨야 될 문제가 아니고, 비용의 문제만 해결되면 누구나 시도해보는 것이 되었다. 지금처럼 외모도 능력이고 실력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그런 태도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렛미인이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지만, 사회 분위기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 분위기 형성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사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사교육을 받는 것이 비밀로 해야 할 것은 아니지만, 사교육이 권장되어야 할 성질은 아니다. 한동안 공교육 외의 보충교육으로 EBS 방송이 충분하지 않나 싶었다. 물론 이런 교육방식이 개별 특성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개별 특성, 수준을 고려한 학습은 공교육도 하지 못하고 있다. 공교육이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 성적 관리, 즉 등급 관리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교육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설사 공교육의 질이 좋다고 해도, 한국과 같이 입학 대학이 미래를 결정하는 현실에서 사교육 경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티처스는 학생 한 명에 대한 일대일 상담과 지도로 진행된다. 그 담당 티처도 평범한 수준이 아니라 각각 사교육계에서는 전문가로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공부법을 가르쳐준다니 누구나 따라해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학부모 간에는 인기가 있나 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2019년에 MBC에서 방영되었던 [공부가 머니?]였다. 그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는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OECD 국가 중 교육비 지출 1위! 연간 ‘19조’가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 자녀 교육비로 지출되고 있는 나라” “성적은 쑥쑥 올리고! 교육비는 반으로 확~ 줄이는! 지금껏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1급 비밀 교육 노하우가 공개된다! 당신의 자녀만을 위한 1대1 맞춤형 솔루션!” 지금의 티쳐스와 전체적인 기조가 달라진 것은 없다. 사교육 안녕을 외치던 방송이 조기 종영된 것은 오히려 사교육 조장이라는 비판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런 비판적 분위기조차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이다. 비판이 있어도 아마도 종편이라 견디는지 모르겠다.

이런 종류의 교육 상담 프로그램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학생만이 아니라 부모가 함께 출연한다. 공부는 교육환경이 중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라면 동의할 수 있다. 그런데 방송에 나온 부모들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 높았고, 엘리트들이었다. 마음만이 아니라 열정만큼 실제로 노력을 하고 있는 부모였다. 자녀의 교육 성취 정도 여부는 부모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다는 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평범한 부모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자신들이 자녀에게 소홀하다는 점,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자책하고, 불안을 가증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교육 공간은 자녀뿐 아니라 부모간의 경쟁 장이 된다.

두 번째는 자기주도학습의 강조이다. 즉 스스로 원리를 이해하고 사고하고 정리, 암기하는 공부법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자기주도학습이 강조되고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여전히 사교육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관건은 전문가를 통한 학생의 변화이다. 일단은 티쳐스가 상담하여, 학생의 학습방법과 실력이 보여주는 문제를 찾아낸다. 오랜 경험이 만들어낸 전문성이 빛을 발한다. 따라서 자기주도학습도 학생의 단점과 그 접근법을 찾아내는 전문가의 접근이 우선한다. 즉 어디서 출발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학생 특성을 족집게처럼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족집게 공부법을 일반화시킬 수 없다. 부모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정보가 자신의 자녀에게 맞는 방법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것이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또 다른 사교육을 부추기게 된다.

자유로울 수 없는 사교육 고리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그 모임에서 말하지 못했다. 자녀의 미래를 고민하는 부모로서, 극심한 경쟁 사회를 몸소 경험하는 어른들에게 내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국의 교육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를 아는 것만으로 개인의 삶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또한 나 자신도 그 위치에 있다면 자신 있게 그런 매체와 사교육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국은행의 조사에 의하면, 사교육비 총액이 27조 규모(2023년 기준)를 넘었다. 또한 서울의 고등학생 사교육비가 100만원이 넘는 학생의 비율이 전체 학생의 40%에 육박했다. 소득·거주지, 대입에 큰 영향을 주고, 소득 상위 20% 고소득층 자녀, 상위권대 진학률 저소득층의 5배이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조사 결과이다. 결국 부모의 소득과 거주지가 자녀의 대학 진학과 연관성이 높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 그 연관성은 더 강고해질 것이라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특히나 의과대학 정원 2000명 확대가 확정되면서 의대를 가기 위한 사교육 시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초등학생을 위한 초등의대반도 대치동 학원가에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2025학년도 대입 수시 원서접수를 하루 앞둔 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의대 입시 관련 학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저소득층 자녀와 수도권이 아닌 지역의 학생들이 빨리 학업을 포기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들이라고 자신의 환경, 미래가 보이지 않겠는가. 내가 사는 강원도 지역에서도 경제력이 있는 학부모는 자녀를 방학마다 주말마다 서울 학원으로 이동시키는 일을 한다. 서울로 거주지를 옮기지 않는 이유는 농어촌특별전형이나 지역 우선 선발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방학에 기숙사형 학원에 보내는 데 1천만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누구의 능력이고 경쟁력인가. 부모, 소득, 지역이 일차 능력으로 내장된 학생들이 또 다른 능력 싸움, 좋은 대학 경쟁을 하고 있다. 이것이 신분제 사회이다. 교육이 신분제 사회의 상층으로 가는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앞선 한국은행의 조사가 그 환상을 깨뜨리고 있다. 그럼에도 순진한 부모들은 그 교육 사다리를 믿고 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몇 년 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자녀의 대학이 부모의 실제적 훈장이 되는 지나치게 솔직한 천박한 사회가 된 지 오래다. 다만 이제는 ‘나는 서울대 부모입니다’에서 ‘나는 의대 부모입니다’가 되지 않을지. 너는 그렇게 살아라, 나는 다르게 산다고 호기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교육의 사다리를 차버리는 부모를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 다만 자녀의 대학이 부모의 능력이니 ‘나는 서울대 부모가 아닙니다’, ‘나는 의대 부모가 아닙니다’라는 낙인을 스스로 새기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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