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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시간이 함께 만들어낸 브로콜리너마저의 새 음반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브로콜리너마저 ⓒ스튜디오브로콜리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은 귀로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들의 음악은 눈으로 읽어야 한다.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라고 노래했던 ‘앵콜요청금지’부터 그랬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라고 노래한 ‘졸업’은 한 시대의 노래가 되지 않았던가.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라고 쓴 ‘보편적인 노래’,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라고 했던 ‘유자차’ 같은 노래 또한 브로콜리너마저의 특징과 강점을 잘 보여준다.

밴드의 형태로 노래하지만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는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노래만큼 인상적인 노랫말을 선보이곤 한다. 이들의 노래에는 당대의 청춘이 느끼는 감각이 예민하게 담겨있다. 브로콜리너마저는 꿈을 이루기 어려운 세상의 고단함, 내 마음 같지 않은 타인과 관계 맺는 일의 껄끄러움, 드러내 말하기 힘든 마음의 부유를 포착해내면서 공감을 얻었다. 예전 같으면 드러내지 않았을 감정과 감각들이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를 통해 노래가 되면서 변화하는 시대 새로운 세대와 개인의 자의식을 더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브로콜리너마저 4집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2번 트랙 '요즘 애들' Music Video

그런데 브로콜리너마저의 활동이 길어지면서 이들의 음악에는 차츰 시간이 깃들었다. 밴드를 시작했을 때는 청춘이었던 멤버들은 어느새 청춘과 멀어져가는 나이가 되었다. 밴드의 멤버가 바뀌었고, 멤버들의 상황도 달라졌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에는 이렇게 쌓인 시간의 그림자가 묻어난다. 이들은 지나간 청춘을 그리워하거나 옛사랑을 호출하지는 않는다. 이 부분이 브로콜리너마저와 비슷한 스타일과 스탠스의 음악을 들려주었던 밴드 동물원과의 차이일 텐데, 브로콜리너마저는 현재의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브로콜리너마저는 시간을 끌어안고 오늘을 살아간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새 음반 정규 4집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지난 시간이 현재로 이어지며 만들어낸 2024년의 결과물이다. 그 시간은 지금의 청춘을 “요즘 애들”이라고 부르게 만들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시간들 / 돌아보면 아른거리는 / 그리운 여름날의 꿈”이라는 노랫말도 노래하게 했다. 애쓰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애쓰면서 살아가겠지만 항상 희망과 기대로 불타오르지는 않게 이끌었다.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라는 제목을 정하게 만든 것도 시간이고, “그럼에도 아직은 그래도 해야 해요”라고 말하게 조련한 것도 시간이다.

MV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아요 - 브로콜리너마저

시간은 브로콜리너마저를 나이 들게 만들었고,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시간을 이길 수 없죠”라고 노래할 만큼 냉담해지게 만들었으나 “나는 다 큰 아이가 되었네”라고 인정하게도 만들었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를 들으면 시간 속에서, 세상 속에서 분투하는 한 사람이 보인다. 빌어먹을 세상 때문에 좌절하고 낙담하지만 자신의 상처가 가장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른 이들의 신음을 들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희망과 온기를 믿고”, “약간의 승리와 그만큼의 패배를 반복하며” “그만큼 더 지친 몸을 오래 / 조금 더 오래 공중에” 둔 채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사람은 결코 자신만을 위해 살지 못한다. “눈을 마주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니”라고 단호하게 말하지만, “수많은 눈물 속에서도 / 반짝이던 하나의 순간”을 떠올리는 사람은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실패할 것을 알고 있어요 / 그게 언제인지 아무도 모를 뿐이지 / 언젠가 모두 끝나는 것을 알고 있어요 /다만 소리 내어 울지 않을 뿐이지“라는 가사가 가슴 먹먹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곧잘 느끼는 좌절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정직하게 대면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삶의 본질임을 간파하고 인정할 만큼 브로콜리너마저와 우리가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는 자신에게 솔직하되 성심을 다해 살아가려는 사람의 노래이고, 고통과 슬픔을 통해 깊어지고 성장하는 사람의 노래다. 그의 일기이며 연대기다.

브로콜리너마저는 그 이야기를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송라이팅으로 담아냈다. 이들의 노래에는 가창력을 뽐내거나 연주력을 과시하려는 욕심이 없다. 따라 부르기 쉽고 따라 부르고 싶어지는 노래는 친근하고 다정하다. 2024년의 노래에서 1990년대 이후 희미해진 싱얼롱의 전통을 느끼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리고 오래도록 성실하게 이어온 음악활동은 이들의 노래가 저마다의 빛깔로 채워지게 만들었다. ‘요즘 애들’의 산뜻한 건반 연주나 ‘되고 싶었어요’에서 새 멤버 동혁의 안정적인 일렉트릭 기타 연주, ‘풍등’에서 빚어낸 아련한 질감, ‘매일 새롭게’ 말미의 매력적인 건반 연주는 그 증거다. 이번 음반의 보석 같은 곡 중 하나인 ‘윙’에서 브로콜리너마저가 선보이는 편곡은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눈부신 순간이다. 어떤 노래는 공감하게 하고 위로할 뿐 아니라 견디게 하고 버티게 하면서 잃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잃지 않게 돕는다. 끝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임을 잊지 않게 한다. “이 미친 세상에” 노래가 삶을 지킨다면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는 지금 맨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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