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의원 12명이 방문하고 여러 지역에서 경쟁하듯 찾는 ‘핫한’ 농촌마을이 있다.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에 위치한 구양리(九陽里)다.
이곳은 전국 최초로 ‘마을공동체 햇빛발전소’를 짓고 그 수익을 마을 공용버스 운행, 마을 공용 무료식당 운영 등 마을주민 복지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 마을의 햇빛발전 모델은 소멸하는 농촌을 되살릴 “농촌기본소득”의 가능성까지 보여주고 있다. 외부인이 아닌 마을주민들이 주도해 세운 햇빛발전소인데다, 그 수익을 마을 전체가 나누기 위해 애쓰고 있기에 다른 농촌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양광 결사반대 현수막’도 찾아보기 힘들다.
비슷한 사례를 더 만들 수 있다면, 대표적인 ‘정의로운 에너지전환’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직 원전 일변도의 윤석열 정부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도 없다. 늦더라도 다시 시기가 왔을 때,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구양리 사례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9월 10일 구양리에서 만난 전주영 새마을지도자는 “준비가 안 되면 바퀴가 헛돈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면서, 최재관 더불어민주당 여주양평 지역위원장과 함께 어떻게 구양리에 마을공동체 햇빛발전소를 세울 수 있었는지 설명했다.
공용 창고·주차장 등 마을자산 활용한 햇빛발전
“결국에는 농촌을 활용해야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는데, 마냥 규제를 풀어서 진행하면, 있는 사람들이 밀고 들어와서 이익을 가져가겠더라. 그럼 농민은 밀려나는 나고, 피해자로 전락하거나 구경꾼이 된다. ... 그래서 농촌주민이 재생에너지의 주인이 되는 과정을 고민하게 됐다.” - 전주영 지도자
처음에는 집 지붕에 햇빛발전소를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마을을 다니면서 알아보니 무허가 지붕이 많았다. 전 지도자는 “등기가 없으면 태양광을 설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햇빛발전소의 수명을 보통 20년으로 보는데, 집주인인 마을주민의 나이가 70대·80대인 경우가 많았다. 마을 어르신들 입에서 “내가 20년을 살겠어?”라는 말이 나왔다. 전 지도자는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장담할 수 없다. 한번 설치하면 20년을 해야 하는데, 자손이 산다는 보장도 없고”라며 “결국 지붕에 올리는 건 불가능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대신, 마을자산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마침 구양리에는 마을 공동의 자산이 꽤 있었다. 구양리는 ‘강 하류지역 주민들이 상수원지역에서 규제를 받고 있는 강 상류지역 주민들에게 보상하는 수계관리기금’으로 마을 공용 주차장과 창고 등을 확보하고 있었다. 구양리는 이곳을 활용하여 햇빛발전소를 세울 수 있었다.
이렇게 설치된 햇빛발전소는 ▲ 마을정미소 뒤편 마을창고 지붕에 2호(36kW) ▲ 구양리 건강관리실 앞 주차장에 4호(72kW) ▲ 마을 풋살구장 옆 창고에 1호(76kW) ▲ 공터로 변한 옛 마을축구장에 3호(131kW) ▲ 마을 안쪽 농지 옆 일반부지 두 곳에 5호(204kW)와 6호(480kW) 등 총 6개다.
“이격거리, 무작정 풀어버리면 안 돼” 농촌 보호하면서 햇빛발전 하는 방법
다만, 마을자산이 있다고 햇빛발전소를 바로 설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226곳 중 절반가량의 지자체는 ‘태양광 이격거리 조례’를 두고 있다. 여주시도 조례로 주거 밀집지역 300미터 안에는 햇빛발전소를 짓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었다. 당초 농업용으로만 사용해야 하는 농촌진흥구역 농지에는 햇빛발전소를 설치할 수 없는데, 이 같은 제한까지 적용하면 햇빛발전소를 지을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격거리 규제를 무작정 풀어버리면, 땅 주인이나 외부 사업자가 농촌을 마음대로 태양광으로 덮어버릴 위험도 컸다.
전주영 지도자는 “그냥 열어주면 외부사람들이 들어오게 돼 있다. 그럼 우리는 농지에서 쫓겨나는 것”이라며 “우리 농민들이 농사짓는 땅 대부분 남의 땅이지 내 땅이겠나”라고 말했다. 최재관 위원장 역시 “적당한 규제는 필요하다면서 ”그래서 민주당에서 이격거리 없애는 법안 발의할 때, 저는 반대했다“고 말했다.
규제를 풀어버리면 농민이 밀려나고, 그렇다고 규제만 하면 농민도 햇빛발전소를 활용할 수 없었던 셈이다.
이 문제는 한 여주시 공무원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최 위원장은 “당시 여주시 담당자가 보기 드문 공무원이었어다”면서 “그분이 많이 애써 줬다. 좋은 방법 없을까 고민해서,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것은 예외로 하자는 조례를 시의원들을 설득해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게 다른 지자체와 여주시의 차이점”이라고 강조했다.
여주시의회는 마을 주민이 주도하는 햇빛발전의 경우 예외로 하는 ‘여주시 에너지 기본 조례’를 2021년 9월에 심의·의결했다. 이때 개정된 조례에 따르면 여주시장은 ‘마을공동체가 소유하거나 부지를 임대하는 태양광 발전사업’, ‘시민이 출자하여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태양광 발전사업’, ‘주민이 참여하는 태양광 발전사업’ 등의 경우 태양광 복지마을 구축 사업을 권장하고 필요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
“농어촌공사 공공비축농지 등 활용하면 다른 마을에서도 가능”
마을 자산을 활용한 구양리 사례는 모든 농촌마을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사례는 아닐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일부 보완하고 환경에 맞게 변형하면 적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전주영 지도자도 “우리 마을은 햇빛발전소를 지을 자산이 있었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몇 가지를 개선하거나 보완하면 꼭 우리 마을의 형태가 아니어도 비슷한 사례를 만들 방법이 있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최재관 위원장은 공공비축농지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최 위원장은 지난 8월 28일 구양리를 방문한 12명의 국회의원에게 구양리 사례를 다른 마을에도 적용하기 위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농어촌공사에 공공비축농지가 있다. 국가가 갖고 있는 농지다. 1만5천 헥타르가량 된다. 이 마을에도 4~5천 평이 공공비축농지다. 이렇게 마을마다 있는 농어촌공사 땅을 마을주민에게 임대해 준다면, 전국의 모든 마을이 가능하다. 1만5천 헥타르는 우리 농지의 1% 수준인데, 만약 이곳에 (햇빛발전소를) 한다면 7.5GW 생산이 가능하고, 7500개 마을이 가능하다.”
또 최 위원장은 농업진흥구역에 ‘마을공동 영농형태양광’이 가능하도록 농지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농촌에는 (농업)진흥구역이 많다. 농지법 시행령에 ‘농업인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사용하는 목욕장·화장실·구판장·운동시설·주차장 등으로 사용 가능하다’고 돼 있는데, 시행령에 ‘마을공동 에너지 자립시설’ 한 구절만 넣으면 구양리 모델이 전국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어떻게 나눌 것인가...“이 볕만큼은 힘없는 사람이 가져야”
물론, 구양리 역시 완성 단계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여전히 마을은 수익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나눌 것이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전주영 지도자는 “일부 마을에서는 법적소송까지 발생하는 일이 있다. 자산이 많고, 특히 뭔가를 나눠야 할 때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서 조심스러워했다.
그래서 우선은 약자를 위한 복지를 늘리고 있었다.
전 지도자는 “가급적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게 좋지 않나”라며 “그 이후 나머지를 어떻게 나눌지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을 주민이 결정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구양리의 마을공동체 햇빛발전의 시작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외부 사업자와 땅 주인의 태양광발전 사업으로 농민이 밀려나는 사례를 지켜보던 최재관 위원장이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나온 방안이었다. 그리고 이 고민에 공감한 전주영 지도자와 여러 마을사람이 마음을 모은 결과였다.
전 지도자는 말했다.
“볕은 많은 사람들이 누려야지 있는 사람들이 독점하면 안 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볕은, 가장 힘없는 주민들이 가질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몇몇 사람의 점유물이 되지 않도록 국가가 자기 역할만 해준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