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스웨덴 한림원이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한강을 선정했다. 국내 유수의 출판사들이 중국이나 서방의 여성 작가들을 열거하며 누가 수상을 하게 될지 경쟁적으로 점쳤지만 한강 작가가 수상자로 낙점될지는 예상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만큼 놀랍고 굉장한 뉴스였다. 한림원은 수상의 이유로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이라는 설명을 붙였고, 또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1993년 시인으로 먼저 등단한 뒤 이듬해부터 소설가의 길로 본격적으로 나섰다. 한림원은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회복하지 않는 인간' 등 그가 쓴 일곱 편의 주요 소설을 소개하며 작품세계를 분석했는데, 이 가운데 '채식주의자'는 앞서 2016년에 노벨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품들 가운데 특히 '작별하지 않는다'는 4.3항쟁을, '소년이 온다'는 5.18민중항쟁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지금껏 이 사건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적지 않게 나왔지만 대개는 몇몇 주인공들의 서사를 바탕으로 사건의 역사적 실체를 파헤치는, 선 굵은 이야기들이 주였다면 한 작가의 접근법은 결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쿠바의 관영지 '그란마'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하며 그의 작품이 인간이란 무엇이며 왜 폭력이 자리잡았는지에 대한 실존적 질문에서 비롯된다고 했고, 한강을 읽는다는 것은 성찰의 길로 뛰어드는 것이며 인간과 자아에 대해 되돌아보는 것이라는 평도 남겼다.

'소년이 온다'를 보자. 주인공인 '동호'는 5.18 당시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숨진 고등학생 문재학 열사를 모티브로 한 인물이다. 그는 거리에서 숨진 친구의 죽음을 외면하지 못해 피 냄새가 진동하는 상무관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목숨을 구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도청에서 물러나지 않고 차마 어린 나까지 죽이겠냐며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키나 끝내 무자비한 운명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그토록 아프게 죽어간 영혼과 차마 이별하지 못하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 같은 작품이다. 참혹한 역사는 단순한 기록물에 가둘 수 없고 인간 근원의 실존적 고통은 여전하다는 것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수상 소식이 알려진 이후 작가의 책이 전국적으로 수십 만 권이나 팔려나가고 다른 도서의 판매량도 덩달아 늘면서 침체됐던 출판업계가 행복한 비명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보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따로 있다. 분초를 다투어 변화하는 테크놀로지 시대에 이제 과거의 이야기는 그만 묻을 때가 되었다며 미래로 가자는 이야기가 얼마나 반문명적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자아와 실존을 잊는 인간사가 얼마나 허약하기 짝이 없는지를 고발하는 한강의 작품이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드러난 진실인 셈이다.

수상과 동시에 지난 정권에서 한 작가가 겪은 고초들도 새삼 화제다. 박근혜 정권은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괴롭혔다. 또 그 리스트를 작성한 인물이 지금 문체부 제1차관으로 승진해 있다는 점도 참 징글맞다.

이처럼 우리는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이질적인 요소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도 희망을 느끼는 것은 우리 문학이 이런 부조리를 깨는 영혼의 울림이기 위해 분투하는 작가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황석영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축하 인사에서 어려운 살림을 헤쳐오며 가난한 살림이나마 살뜰하게 꾸려오던 한국문단의 사라져 간 여러 얼굴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한 작가의 수상이 개인적 영광을 넘어 한국문단의 쾌거이기도 한 까닭이다. 다시 한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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