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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2024년 한국 록의 간판, 소음발광 [불과 빛]

소음발광 ⓒ소음발광 인스타그램

매주 그 전 주에 나온 싱글과 EP, 정규 음반 가운데 좋은 곡들을 골라 플레이리스트를 만든다. 그 플레이리스트를 소셜미디어에 올려 공유하는데, 아직 공유하지 않은 이번 주 플레이리스트에는 소음발광의 새 음반 [불과 빛] 수록곡이 여섯 곡이나 들어있다. 한 음악가의 음반 중에서 여섯 곡을 플레이리스트에 포함시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만큼 이번 음반은 강렬하다. 거칠고 맹렬한 절규의 매혹적인 연속이다. 사실 이전 음반들 역시 밴드의 이름처럼 소음을 만들고 발광하듯 연주했는데, 이번 음반에서 소음발광의 음악은 더 절규에 가까워졌다. 록은 원래 그런 장르였지만 요즘에는 이렇게 강렬한 사운드를 음반 내내 줄기차게 발산하는 팀이 마냥 흔하지는 않다. 첫 곡 ‘한낮’에서부터 터지는 보컬은 스크리모 밴드에 가까울 정도다.

이번 음반에 담은 노래 대부분은 절망에 휩싸인 이의 한탄과 분노다. 소음발광은 그 감정을 노래하고 읊조리며 터트린다. “이루지 못할 열망은 /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 나는 달궈진 열망을 / 견디지 못했다”(‘노랑‘) 같은 노랫말은 이 비관적인 상황에 대한 절망이다. 낙담이다. 이번 음반에서 “모든 밤은 부서졌다 / 꿈 같은 건 믿지 않는다” 같은 진술을 찾아보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을 정도다. 사실 대중음악뿐만 아니라 예술에서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분개하는 경우는 흔하다. 체제는 거대하고 시스템은 강고한데 개인은 미약할 때 예술은 그 개인의 한숨과 눈물을 대신한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위로 받고 공감하는 일은 예술의 효능 가운데 하나다.

소음발광 (Soumbalgwang) - 쇠망치 (Hammer) Official Music Video

그런데 좋은 예술은 그 상황과 감정과 태도를 확인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창작자나 개인이 경험한 상황과 감정과 태도를 풍부하게 재현하고 복구해서 근접하게 하는 일. 그 같은 상황과 감정과 태도를 체험한 대상이 작품 안에 살아 있게 만들어 보여주는 일이 예술의 첫 번째 과제다. 그렇게 해야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미장센을 만들어내고 의도한 사운드를 뽑아내려 애쓰는 이유는 단지 그 순간의 미학과 쾌감 때문만이 아니다. 그래야 이미 수많은 예술가들이 했던 이야기,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야기를 새롭고 생생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음발광의 음반은 “울어버렸다 소리 질러버렸다”라고 외치는 노래가 뜨악하게 다가오지 않게 하고, 자신의 이야기로 다가와 가슴이 차오르게 만들기 위한 치밀한 발광이다.

이 같은 절망이 연약한 인간 본연의 모습인지, 아니면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필연적인 소외인지를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비겁한 나를 위해 노래를 / 도망친 나를 위해 춤을 / 캄캄한 낮에 / 우리는 춤을 췄다 / 캄캄한 낮에 /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 노랗게 질린 채 / 노랗게 질린 채로”라는 타이틀곡 ‘노랑’의 노랫말을 들을 때, 이 모습이 어떻게든 자존을 지키려는 안간힘을 알아차리지 못할 사람은 없다. 소음발광의 새 음반 [불과 빛]은 그 쟁투의 기록이다. 자신까지 태워버릴 듯한 불이 덮쳐오는 세상, 낮에도 캄캄한 세상에서 빛조차 거짓이 되었다는 노래 ‘쇠망치’는 처절한 증언이다. 이런 세상에서는 물조차 검게 변하는 게 당연하다. 소음발광은 미래의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가 된 오늘을 충실하게 노래한다. 이처럼 절망을 노래하는 이는 내심 간절하다. 절망으로 고꾸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지키고 싶기 때문에 노래한다. 되찾고 싶기 때문에 노래한다. 이미 포기하고 단념한 사람은 침묵을 택한다. 하지만 소음발광의 노래는 바닥까지 내몰린 간절함의 편에 선다. 간절함을 토로하며 퇴로를 차단한 노래는 오로지 정직하다.

소음발광 (Soumbalgwang) - 불과 빛 (Fire & Light)

어떤 노래는 맹렬하고 어떤 노래는 장엄하다. 노래마다의 열기와 속도와 깊이와 차이는 현재의 록음악신에서 포스트펑크, 포스트메탈코어 같은 장르를 아우르면서 나아가는 소음발광의 진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지글지글 끓어오르면서 끈적거리고, 내달리며 사이키델릭한데 수시로 몸을 바꾼다. 기세로 밀어붙이던 밴드는 이제 능숙한 연출까지 해내는 여유로운 밴드가 되었다. ‘노랑’에서 ‘쇠망치’로 이어지는 두 곡을 듣기만 해도 소음발광이 스스로를 넘어섰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숨과 쉼’에서 들려주는 영적인 질감은 또 어떤가. ‘눈동자’를 뒷받침하는 사운드 스케이프는 도저한 절망이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방’의 드라마한 파도를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만끽하고 싶다는 열망이 엄습한다. “바라는 건 아침의 빛”이라고 노래하는 곡의 마무리는 심지어 아름답다. 강동수, 김성빈, 박성규, 마재현, 최아연만의 힘으로 해낸 작업은 아니다. 프로듀서를 맡은 최태현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냈을지 현재의 록 마니아라면 능히 짐작할 테다. 음악의 완성도는 지명도와 무관하고, 당대의 최고작은 예고 없이 출몰한다. 한국 록의 간판이 이렇게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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