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을 만세] 의대생이 마을로 들어간다면

2024년 찾아가는청진기 위도 의료봉사 : 2023년 부터 1년에 한 번 부안 위도로 의료봉사를 간다 ⓒ필자 제공

의대 정원 문제로 시작된 의료대란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반면에 학원가는 정원 확대 소식이 들리기가 무섭게 의대입시반을 늘렸다. 심지어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초등 의대입시반도 생겼다. 대한민국에서 의과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미래가 보장되는 최고의 직업을 갖기 위한 관문을 통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의사의 역할은 무엇인지, 의사가 왜 되려고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다.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하면서 의대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 1년에 한 번씩 지역사회 의학실습을 선택한 학생들이 의료협동조합으로 실습을 온다. 그런데, 이런 지역사회 의료에 관심을 가지는 의대생은 극소수다. 극소수의 의대생이지만 지역에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마을에서 하는 진료,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방문진료 현장을 경험하게 해준다. 의사가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지 생각할 수 있는 작은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2016년부터는 부천지역 복지관과 연계하여 의대생들이 주민을 만나 건강문진을 하는 ‘찾아가는 청진기’ 사업을 하고 있다. 찾아가는 청진기는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교 학생들이 만든 의료봉사 동아리다. 매월 부천의 영구임대 아파트에 40여 명의 학생들이 집집마다 방문해 건강문진을 한다. 건강 문제가 있는 분을 발굴하면 복지관에 알린다. 현재는 가천대학교와 부천대학교 간호대학 의료봉사 동아리까지 확대됐다. 우리 부천의료협동조합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의대생들이 마을에서 주민을 직접 만나 건강을 묻는 것은 어떤 경험이 될까? 찾아가는 청진기 회원으로 의료봉사를 하다가 현재는 부천시민의원에서 일하고 있는 김세령 원장은 “기존의 병원실습은 질병과 치료법으로 접근한다. 그런데 찾아가는 청진기는 다양한 방면으로 접근하게 된다. 어르신의 삶 이야기를 듣고, 그분이 앞으로 조금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사회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고민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의대에 오는 학생들은 대개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 학생들이 어려운 환경의 주민을 만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찾아가는 청진기 학생대표 박규민씨가 전했다. 어려운 환경에 사는 주민들 대개가 질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생활습관 관리가 안 되고, 가진 질병도 여러 가지다. 그분의 병을 이해하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응용해 소통을 하다보면 보람을 느끼고, 왜 의사가 되고자 했는지 되새기게 됐다는 말을 덧붙였다.

2016년 순천향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찾아가는 청진기 학생들을 지도한 조규석 부천시민의원 원장과 의대생들. 그당시 순천향대학교 의대 인간사랑 수업으로 진행한 찾아가는 청진기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필자 제공


찾아가는 청진기를 하고 8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좋은 의사의 롤모델을 만나고 싶어서 왔다는 의대생이 오기 시작했다. 찾아가는 청진기 출신 부천의료사협 의사 1호 하정은 원장은 마을에서 주민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고 환자를 대하는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고, 앞으로도 주민들과 같이 건강과 행복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는 공공의료원에서 일하며 다시 부천의료사협 주치의로 돌아와 마을 의사로 살아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의사가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갈지 롤모델을 찾고, 보람 있는 삶을 고민하는 의대생을 보면서 기성세대의 문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됐다. 의대 입시경쟁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의대에 들어왔을 때, 그리고 의사로 살아가는 의료환경은 무엇을 경험하게 하는가. 더 많은 의대생이 마을로 들어와서 지역주민을 만나고, 그들의 감각을 다르게 가꿀 수 있도록 사회가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가 공공성을 지향하고 사람의 얼굴을 가질 수 있는 사회로 전환될 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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