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가고 가을에는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에 간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었다. 물론 두 곳에만 갔을 리 없다. 다른 음악페스티벌에도 부지런히 기웃거렸다. 음악페스티벌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열리지 않는 음악 페스티벌이 무수하다. 쌈지사운드페스티벌과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은 중단되었고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음악 페스티벌이 소중하다. 그 곳에 가면 오래전 그곳에서 음악에 빠져 들었던 나를 만날 수 있다. 그 곳에서 함께 음악을 듣고 술잔을 부딪쳤던 이들을 그리워할 수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음악이 솟고 추억이 묻어난다. 어떤 공연들은 시간이 흘러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기억은 한 시절의 나와 오늘의 나를 단숨에 연결한다. 해마다 계절이 바뀌면 같은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확인하고, 차편을 예약하고, 일정을 고민하는 이유다.
자라섬에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올해 라인업으로 오는 누군가의 공연을 보는 일은 중요하지만 언젠가부터 라인업은 큰 의미가 없어졌다. 자라섬의 무대 수와 위치가 바뀌고, 페스티벌을 위해 기획한 무대가 등장하는 등의 변화를 주목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누가 나오든 자라섬에 갔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그곳에 자라섬이 있고 재즈가 있고 가을이 있기 때문이다. 와인 잔을 부딪치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다가 공연이 펼쳐지면 입을 닫는 관객들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물들어 총총히 돌아가는 이들의 그림자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 거장 재즈 음악인이 공연을 펼쳐도 소란스러워 도무지 음악에 집중할 수 없는 대형 재즈페스티벌과 자라섬을 절대 바꿀 수 없는 이유다.
제21회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올해의 자라섬은 다시 기간을 뒤로 늦췄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날씨가 너무 더워졌고, 다른 페스티벌과 겹치곤 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덕분에 10월 19일 토요일 자라섬에는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재즈를 듣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재즈 아일랜드, 재즈 라운지, 재즈 스트리트, 재즈 스테이션을 비롯한 크고 작은 무대에서 연달아 공연이 펼쳐졌다. 풀내음이 풍기는 재즈 라운지는 다듬어지지 않은 공간이어서 더 편안했다. 유라x만동의 공연이 실내공연장에서 보다 와닿았던 이유다.
올해의 발견은 레셰크 모주제르였다. 폴란드에서 날아온 그는 혼자 무대에 올라 메트로놈을 틀어놓고 연주했다. 그 흔한 한국어 멘트조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연주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적인 연주에 단숨에 사로잡혔다. 명징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는 가을처럼 밀려들었다. 해가 기울어가는 시간 자라섬을 채운 연주는 안식이자 평화였다. 키스 자렛과 프레드 허쉬에 이어 들을 재즈 피아니스트가 한 사람 늘었다.
이에 반해 임마누엘 윌킨스의 연주는 지금 가장 텐션 넘치는 재즈 연주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 충만한 시간이었다. 함께 연주한 젊은 연주자 누구도 기세등등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자신감 넘치는 연주로 밀어붙인 솔로와 협연은 재즈의 신화를 이뤄낸 거장 연주자들의 젊은 날을 보여주는 듯 생생했다. 재기와 활기를 모두 갖춘 연주 앞에서 이들이 재즈의 미래가 될 거라는 예감은 당연했다.
제21회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자라섬재즈페스티벌
더 이상 라이브 무대를 볼 수 없을 거라 믿었던 노마 윈스턴의 무대는 존재만으로 충분했다. 80살이 넘는 음악가가 먼 나라까지 날아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도 꿈만 같았다. 바람이 자꾸 불어 애먹다가 웃으며 노래하는 노마 윈스턴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울컥거렸다. 심연을 위무하는 목소리, 영원으로 스미는 목소리가 한 시간 가량 흐른 뒤 관객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기립박수가 터졌다. 어느 하나 부족함 없는 공연이었다. 관객은 지난해보다 늘었고 박수는 더 커졌다. 열 번 이상 찾아온 자라섬의 기억이 이렇게 늘어났다. 다시 일 년을 기다릴 이유가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