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초인공지능이 통제하는 디스토피아 세상, 연극 ‘모든’

연극 '모든'공연 사진 ⓒ국립극단

ChatGPT가 처음 등장을 했을 때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ChatGPT 사용에 도전했다. 단순 정보를 묻는 질문에는 AI가 정확한 답을 내놓을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감정을 묻는 질문에는 어떤 답을 내놓을지 궁금했다. ‘나 요즘 우울해’라는 첫 질문에 ChatGPT의 응답은 이랬다. ‘요즘 많이 힘드신가 봐요. 이야기 나누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다소 뻔하고 형식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대화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ChatGPT가 대량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적절한 답변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AI의 답변은 잠시나마 감정의 동요를 일으켰다. 20204년 10월 테슬라가 선보인 ‘옵티모스봇’은 바텐더로 등장해 음료를 제조하며 사람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 영상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과 함께 살아갈 세상이 더 이상 미래가 아니라 지금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국립극단의 창작 신작 ‘모든’이 SF 연극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이 작품은 소수의 살아남은 인간들이, 오류를 최소화하고 우연을 통제하는 초인공 지능 라이카(AI)의 보호를 받는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실이 더 연극 같아서일까? 연극 속 모든 설정은 낯설지 않고 익숙하다. 그래서 순간순간 섬뜩하다.

폐허간 된 지구에 살아 남은 인간과 초인공지능


무대 위는 초인공 지능(AI) 라이카가 인간의 도시를 돔으로 구획하여 보호하는 세상이다. 이 A 구역은 ‘라이제노카 소속 직원들과 그 가족만 거주할 수 있는 핵심 인류 잔존 구역’이다. 이곳에 사는 랑은 자신을 ‘엄마’ 대신 중립적인 이름으로 부르기를 원하는 랑의 ‘생물학적 엄마’ 미무와 살고 있다.

연극 '모든'공연 사진 ⓒ국립극단

오늘은 랑의 열다섯 번째 생일날이다. 랑은 무척 들떠있다. 열다섯 살이 되었다는 것은 라이카와 연결되는 커넥팅 시술을 받고 ‘두 글자 이름’을 갖는 ‘생산 가능인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랑이 A 구역에 기여하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라이카가 키운 랑 앞에 정체불명의 ‘식별 불가능 개체’ 노인 ‘페’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새롭게 전개된다. 페는 랑이 자신이 찾고 있는 문을 발견해 줄 존재임을 알려준다. 랑은 어느새 폐와 함께 문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라이카는 무슨 존재일까? 라이카는 사용자의 실시간 신체 상태를 모니터링하며, 통증을 제어하여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돕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식사 키트를 제공한다. 오직 자신이 관리하는 인간을 위해, 그 사람의 안온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 라이카가 통제하는 이곳의 바깥 세계는 인간이 살 수 없도록 파괴됐다. 오직 이 돔 안에서만 인간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라이카가 제공하는 모든 정보에 의존한다.

그러던 어느 날 A 구역에서 인간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랑의 엄마 미무는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고 최적의 상황을 제어라는 라이카가 존재하는 이곳에서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선택한 이 사건을 이해하지 못한다. 랑의 생물학적 아빠 ‘가리’는 생각이 다르다. 라이카에게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자살이었을 것이라는 가리의 말은 유토피아처럼 보이는 이곳이 디스토피아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떤 세상을 향해 가고 있는가!


연극 ‘모든’이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세상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진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연극의 경고는 예상한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라이카가 통제 관리하는 세상보다 딱히 나아 보이지 않는 것은 더 슬픈 일이다. 김정 연출은 “이 이야기가 꼭 미래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어쩌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존재하는 모두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고 있다면 그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고민했다"라고 밝혔다.

연극 '모든'공연 사진 ⓒ국립극단

무대 위 A 구역은 최소한의 공간 표시만 존재한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은 폐쇄적이고 불안정해 보인다. 색과 장식이 없는 A 구역과 달리 바깥 세계와 경계선에 있는 푸른 식물들의 장벽은 이 이야기 속 유일한 희망의 시작점이다. 랑은 페의 말처럼 새로운 세상을 향한 문을 찾아낸다. 문의 바깥은 라이카의 말처럼 폐허만 남은 곳일까? 아니면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 있는 곳일까?

‘랑’ 역에 배우 강민지, 정체불명의 식별 불가능 개체 노인 ‘페’ 역에는 배우 이미숙이 환상의 조화를 보여준다. 랑의 생물학적 엄마 ‘미무’ 역에는 배우 최희진이, 랑의 생물학적 아빠 ‘가리’역에는 안병식 배우가 무대에 오른다. ‘킴코’ 역에 배우 류혜린이 함께하며, 초인공 지능(AI) ‘라이카’ 역에 이상은 배우가 탄탄한 연기를 선보인다. 국립극단 창작 신작 ‘모든’은 10월 27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연극 ‘모든’

공연 날짜 : 2024년 10월 3일(목) ~ 10월 27일(일)
공연 장소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공연 시간 : 평일 19시 30분/토, 일 15시/월요일 공연 없음
러닝 타임 : 110분(인터미션 없음)
관람 연령 : 12세 이상 관람가(2012년 12월 31일 출생자까지)
창작진 : 작 신효진/연출 김 정/무대 디자인 남경식/조명 디자인 신동선/의상 디자인 김우성/분장 디자인 백지영/소품 디자인 김혜지/음악감독 채석진/음향 디자인 김정호/안무 감독 이재영/조연출 박정호
출연진 : 이상은, 강민지, 이미숙, 최희진, 안병식, 류혜린
공연 예매 : 국립극단, 인터파크
공연 문의 :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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