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장에 나온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두산 지배구조 추가 개편 방안과 관련해 “잘 살펴보겠다”고 짧게 말했다. 단 한마디 추가 언급이 없었다.
불과 일주일 전, “시장 요구에 맞고 주주가치 환원 정신에 맞는 방향으로 합병방안을 수정할 것으로 기대 내지 예상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온도 차다.
며칠 전, 두산이 내놓은 추가 개편안이 주주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터라 이 원장의 반응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개편안은 이 원장의 “기대 내지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시장 요구에 맞지 않았고, 주주가치 환원 정신과 거리가 멀었다.
새 방안은 기존 개편안에서 합병 비율만 살짝 바꾼 것에 불과하다. 저평가된 두산밥캣 가치를 소폭 올려, 소액주주 손해를 완화한 것이 골자다. ‘보다 공정한 평가 방법을 찾아보라’는 이 원장의 주문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정도면 특유의 호통이 나와야 하는것 아닌가.
이 원장은 이쯤에서 받아들이려는 심산인지 모르겠으나, 주주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날 두산에너빌리티 주주연대는 ‘존경하는 이복현 원장님, 주주를 원숭이로 아는 조삼모사 두산 정정신고서(추가 개편안) 한 번 더 반려해주세요’라고 적힌 대형 트럭을 이용해 국감장인 국회 인근에서 시위를 벌였다.
문제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멀쩡히 돈 잘 버는 계열사를 왜 잘라내야 하고 게다가, 잘라낸 회사를 하필 적자 투성이 회사에 붙여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시장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두산은 합당한 근거를 내놓기보다 돈 몇 푼 더 쥐여주며 ‘이제 그만하라’고 말한 꼴이 됐다. 두산을 비롯한 재벌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주주 반발을 낳는 이유는 총수 일가의 이익을 앞세워 주주들을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지배구조하에서 어떤 회사를 떼어내 다른 곳에 붙인다고 해서 시너지 효과가 나올 리 없다는 것이다.
‘한국증시 밸류업’에는 지름길이 없다. 가치 제고 계획을 내놓으라 압박하고, 저평가 기업을 모아 ETF를 만들고, 투자자 세제지원을 확대하는 따위의 꼼수로는 요원하다.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투자자를 보호하도록 상법 원칙을 바로세우는 것이 밸류업의 첫걸음이자 정도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검사 출신이다. 칼춤을 춰도 자신의 주특기인 재벌 꼼수 판에서 춰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