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사람들에게 신데렐라 스토리는 친숙하고 익숙하고 뻔하다. 가난한 신데렐라가 왕자님을 만나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가 골자다. 이 골자는 한국에서도 예외가 없긴 했다. 과거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재벌2세와 연애를 하고 결혼하는 스토리는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단골 소재였다. 물론 이런 뻔한 레퍼토리를 파괴하거나 전복한 작품들도 자주 등장했다. 영화 '아노라'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아노라'는 특별하다.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아노라'는 올해 제77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제72회 칸 국제영화제/2019년)이 받았던 바로 그 상이다. 션 베이커 감독은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데, '아노라'라는 작품으로 이력의 정점을 찍게 됐다.
'아노라'의 줄거리를 처음 봤을 때 드는 생각이 있었다. 재벌2세와 결혼한 뉴욕의 스트리퍼가 자신의 혼인 무효소송을 막기 위해 벌이는 난장극이라는데, 이 스토리를 과연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관객 입장에서 신데렐라 스토리를 따라갈 것이냐, 아니면 따라가지 않을 것이냐에만 골몰했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의 핵심은 '유머'에 있었다. 특히 철부지 아들의 결혼을 무효화하라는 명을 받은 하수인들이 결혼 무효화를 시도하고, 아노라는 이를 막으려는 지점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정말 하수인들과 아노라는 북치고, 박치고, 욕하고, 소리지르고, 때리고, 난리를 친다. 현실의 눈으로 보면 끔찍한 협박과 피의 난투극일텐데, 션 베이커 감독은 영민한 연출력으로 블랙코미디를 만들어 버린다. 그는 '아노라'의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았다.
영화 '아노라' ⓒ영화 '아노라' 스틸컷 이미지
'아노라'의 수입과 배급을 맡은 유니버설 픽쳐스는 칸영화제 인터뷰 당시 션 베이커 감독의 일부 대답을 공개했는데, 그에 따르면 션 베이커 감독은 "유머는 우리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람의 이야기를 할 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머가 없는 이야기는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일까. 재벌2세를 사로잡은 아노라의 매력과 결혼식이 끝난 상황에서 영화는 다소 김이 빠질 법도 한데, 이 영화는 '유머'를 지지대 삼아 매끄럽고 유쾌하게 자신의 속도를 계속 끌고 나간다. 사실 시간 가는지 모르고 지켜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칸과 관객들을 사로잡은 이유는 아노라의 상황과 사랑 때문이다. 이혼을 막으려 했던 아노라의 사랑 여정을 쫓다 보면, 누구나 그녀의 사랑을 한 번쯤 곱씹게 된다. 한 줄의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랑의 입체성이 스크린을 강타한다. 그리고 영화 중후반엔 재벌과 아노라의 신경전을 비집고 들어오는 '한 방'들이 있는데, 그 잔잔한 한 방들이 쌓여서 영화의 결말을 만들어 간다. 그 결말은 아름답고 또 처절하고 씁쓸하다.
영화 '아노라'는 코미디도 씁쓸함도 모두 정점을 찍는 영화다. '아노라'는 11월 6일 국내에서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