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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이스라엘의 국경은 어디인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4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 정부 공보실에서 지도를 앞에 두고 기자회견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인질 석방을 원한다면 필라델피 회랑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며 "필라델피 회랑 통해 가자지구가 재무장되면 가자엔 미래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2024.09.05. ⓒ뉴시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알아크사 폭풍(Al Aqsa Storm)’이라고 명명된 작전을 벌여 이스라엘인 1200명을 죽이고 250명 넘는 인질을 납치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의 공격을 ‘이스라엘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규정했고, 사상자 중에는 레임 키부츠 근교에서 열리고 있던 레임 음악축제를 즐기던 관광객도 있었고 아동도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 주민은 모두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것이 억지이듯이, 하마스에게 살상된 이스라엘인이 순전한 민간이었다는 주장 또한 전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최일붕은 국내외 필자 10명이 한 편 이상씩의 글을 보탠 『이스라엘의 인종 청소 실패와 팔레스타인 해방의 전망』(책갈피,2024)에 실은 글에서, 이스라엘의 선전전이 어떻게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대한 지지를 망설이게 만드는지를 잘 보여준다. “국제적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일각에서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팔레스타인 투쟁을 지지해야 할지 몰라 처음에 크게 망설였다. 특히 민간인 납치와 인질 억류가 그들에게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인질 삼기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반식민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식민지 정착자나 그 유관자 또는 그런 혐의자를 억류하고 조사하며 인질로 잡아두는 것은 전쟁 포로(POW) 사로잡기에 해당하는 것이다.”(205쪽)

이스라엘은 UN의 결정으로 태어난 최초의 독립국이다. 1947년 11월 26일, UN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 지역을 분할하여 아랍국가와 유대인국가를 따로 세우고 예루살렘은 국제 신탁통치 지역으로 한다는 제181호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분할하면서 현지 인구의 종족 구성을 무시했다. 일란 파페는 『팔레스타인 비극사』(열린책들,2017)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유엔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영역과 그들의 미래 국가의 크기를 일치시키기로 결정했다면, 전체 면적의 10퍼센트만을 유대인의 영토로 주었을 것이다.”(78쪽)

유엔은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3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비옥한 땅 54퍼센트를 주었다(어떤 책은 56퍼센트). 이번에는 개리 버지의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새물결플러스,2019)에서 한 대목을 보자. “땅을 분할 할 때 양측의 인구수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아랍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다윗의 별을 그린 새 국기를 게양했다. 11분 만에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이스라엘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아랍 측은 즉시 전쟁을 선포했다.”(100쪽)

그러나 이스라엘측이 독립전쟁이라고 부르는 제1차 중동전쟁은 현지인인 팔레스타인 아랍인들보다 유대 이주민들에게 더 많은 땅이 분할된 것에 대한 아랍국가들의 반발이 원인의 다는 아니다. 아랍 거주민의 의사가 전적으로 무시되었다는 것도 이유가 되었지만, 이스라엘 민병대가 1948년 초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아랍인을 체계적으로 살상하고 추방한 것은 이미 개전을 뜻한다.

문제의 핵심은 시오니스트가 팔레스타인을 유대민족의 고유한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인데, 팔레스타인이 유대민족의 고토(古土)라는 시오니스트의 근거는 오로지 성서다. 서구의 많은 고고학자들은 성서를 신학이나 유대 민족의 일방적인 기록이 아닌 신빙할 만한 역사서, 그리고 고고학으로 입증 가능한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일한 역사로 간주한다. 키스 W. 휘틀럼은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이산,2003)에서 고대 팔레스타인 역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연구 분야인데도 “성서의 세례를 받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학과 고고학이 지배해 온 성서연구의 (사소한) 하나의 소품”(11쪽)으로 치부되었다고 말한다. “작금의 현실 속에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땅’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역사만이 유일하게 정통성 있는 연구주제가 되고 있다. 그 밖의 모든 것들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배경을 제공하고 또 그것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포섭되고 있는 것이다.”(93쪽)

29일(현지시각)이스라엘 북부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탱크와 APC에서 작업하고 있다. ⓒ뉴시스

성서는 토지대장도 아니고 등기부 등본도 아니다
성서대로 하더라도 가자는 유대인과 무관했던 땅이다
유대인 정착민은 비군사적인 민간인도 아니다


성서는 토지대장도 아니고 등기부 등본도 아니다. 또 성서대로 하더라도 현재 가자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가자는 유대인과 무관했던 땅이다. 가자는 구약성서의 가나안 지역으로, 이 땅의 주민은 유대인과 같은 셈족이 아닌 함족으로 구성되었다. 가자는 이집트에서 탈출한 유대인이 정복한 남의 땅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이 성서적이고자 한다면, 개리 버지가 한 말대로가 아니면 안 된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대해 성경적 주장을 내세우려면 이스라엘은 반드시 성경적 삶, 곧 하나님의 땅에 울려 퍼져야 할 하나님의 선함을 비추는 삶을 살아야 한다.”(237쪽) 야훼는 “이스라엘에게 정의라는 언약의 기준을 요구”(226쪽)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제1차 중동전쟁을 포함한 총 다섯 차례의 중동전쟁을 치렀고, 그때마다 영토를 넓혔다. 뉴욕타임스는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난 3일 뒤인 1973년 10월 9일, “이번 새로운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1967년 전쟁 때 점령한 곳 이상으로 아랍영토에 진출하려고 했다면 그들은 커다란 과오를 범한 것이다”라는 논평을 냈다. 『창작과 비평』 1974년 봄호에 「아랍과 이스라엘」이라는 논문을 기고한 임재경은 “왜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에게 1948년 전쟁 전 상태로 돌아가란 말을 하지 않았는가.”라면서,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이스라엘을 나무라고 있는 것 같으면서 실상은 그들의 편에 서 있다.“(임재경,『상황과 비평정신』,창작과비평사,1983, 이상 184쪽)라고 비판했다.

전쟁으로 영토를 넓힌 이스라엘은 거기에 이스라엘 국적의 유대인 정착민을 투입하는데, 이 정착민은 비군사적인 민간인이 아니다. 이스라엘과 같은 식민 정착자 국가 또는 정착자 식민주의 국가는 식민지를 자신들의 본국으로 전환시킬 의도를 가진 외부인들이 식민지에 정착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수반한다. 유엔이 불법이라고 규정한 이스라엘의 정착촌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전초기지이며, 그곳의 정착자들은 시오니스트 가운데서도 가장 호전적인 무장 집단이다. 하마스가 그들을 군인이거나 포로로 간주하는 이유도, 또 하마스가 벌인 작전이 테러가 아닌 전쟁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정착자 식민주의 국가라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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