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수 결손 대응 방안을 내놨다. 지난해와 같이 기금을 헐어 결손분을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기금 고유의 목적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방교부세를 삭감하는 방안도 담겼다. 정부가 2년 연속 교부세를 깎아, 지방정부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획재정부는 28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2024년 세수 재추계에 따른 재정 대응 방안’을 보고했다.
앞서 기재부는 지난 9월 세수 결손을 공식화했다. 세수 재추계 결과, 올해 국세수입은 337조 7천억원으로, 당초 예산 367조 3천억보다 29조 6천억원(8.1%)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에는 56조 4천억원의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정부는 올해 각종 기금에서 돈을 끌어와 세수 결손을 메우는 데 쓸 계획이다. 지방정부와 시도 교육청에 내려보내는 지방교부세와 교육교부금을 깎는다. 당초 잡은 예산을 일부 불용 처리해 세수 결손을 충당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외평기금·주택기금 헐어 결손 충당금 마련…기금 고유 목적 훼손 지적
기금에서는 14조~16조원을 끌어다 쓴다.
외국환평형기금이 4조~6조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외평기금은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조성하는 기금이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팔아 원화를 사들이고, 환율이 내리면 원화를 팔아 달러를 사들인다.
정부는 지난해도 대규모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외평기금 20조원을 투입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9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세수 결손 대응 방안으로 외평기금 활용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으나, 한 달 만에 뒤집었다.
정부는 외환시장 대응 여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외평기금을 축소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말 결산 기준 외평기금 자산 규모는 272조원이다.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외평기금을 헐어 쓰면 외환 시장 대응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현동 배재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많이 올랐다”며 “미국 대선도 있고 한국 경제 지표도 안 좋기 때문에 오히려 외평기금을 여유 있게 확보해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할 여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은 만큼 그간 상대적으로 많은 외평기금을 확보해 위험 대비하고 있었다”며 “갑자기 외평기금이 너무 크다며 헐겠다는 건 정부 재정 운영 실패를 가리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외평기금 유동자산 규모는 2022년 111조원에서 지난해 94조 7천억원으로 급감했다. 세수 결손 대응을 위해 외평기금을 헐어 쓴 영향이다. 올해도 외평기금을 축소하면, 유동자산 규모는 64조원으로 쪼그라들 것으로 추산된다.
연구소는 “외평기금 자금 출입은 외환 정책 차원에서 수행돼야 할 것”이라며 “시장 참여자가 외환 정책과 상관없이 세수 결손을 메우고자 외평기금 자산이 감소한다는 시그널을 준다면 이는 외환 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외평기금뿐 아니라 주택도시기금에서도 2조~3조원을 끌어올 계획이다. 주택기금은 국민주택채권과 청약저축, 대출이자 수입 등으로 자금을 조성해, 임대·분양주택 건설과 주택 구입·전세 지원에 활용한다.
주택기금 축소로, 서민 주거권 보장을 위한 주택 건설·금융 지원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기재위의 종합감사에서 최 부총리를 향해 “올해 2조~3조원의 주택도시기금을 (세수 결손 대응에) 활용하겠다는 건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축소하겠다는 의도로밖에 읽히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 부총리는 “절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전문가들도 주택기금 활용 방안에 비판적이다.
우 교수는 “시기에 따라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여건이 좋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그럴 때는 자금을 잘 운용해서 차후에 임대주택을 공급할 때 이상이 없도록 적립해 놓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금에 돈이 남는다고 세수 결손 충당하는 데 쓸 거면 기금을 운용하지 않고 예산 사업만 해야 한다”며 “후진적인 정책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반복되는 지방정부 책임 전가에 지자체 재정 위축 우려
세수 결손을 지방정부에 전가하는 행태가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방교부세와 교육교부금을 각각 2조 2천억원, 4조 3천억원, 총 6조 5천억원을 삭감할 계획이다. 당초 교부세와 교부금 예산은 총 9조 7천억원이었다.
교부세와 교부금은 국세수입을 재원으로 한다. 정부는 세수가 줄었으니, 교부세와 교부금도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임의적인 교부세 삭감은 위헌 논란의 대상이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교부세를 약 7조 2천억원 삭감했는데, 이에 반발해 일부 지방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들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지방정부 자치권·재정권과 국회 예산심의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교부세를 삭감하려면 추가경정예산을 제출해 국회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2년 연속 교부세 삭감으로 지방정부 재정 여력은 더욱 위축될 우려가 크다.
김현동 교수는 “지자체는 정부가 주기로 한 교부세를 고려해 예산을 짜는데, 갑자기 정부가 예정된 금액을 보내지 않으면 사업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규모 교부세 삭감을 강행하면 지자체로서는 대응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세수 결손을 해소할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세수 결손의 원인이 된 감세 정책을 손봐야 하는데, 정부는 편법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통상적인 오차 범위 내에서의 변동이라면 기금을 활용해도 큰 무리가 없겠지만, 지난해와 올해처럼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한 상황에서 기금을 끌어 쓰는 건 적절치 않다”며 “비정상적인 규모의 세수 결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감세 정책을 되돌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역대급 세수 결손이 났을 때 전문가들이 증세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으나, 정부는 이를 무시하면서 올해 다시 예측가능한 세수 결손을 야기했다”며 “증세라는 정공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기금 돌려막기 등 편법으로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