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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나는 한강이 부럽다

10일 오후 경기 고양 덕양구 화정동의 한 서점에 한강 작가의 책이 전시돼 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 2000년 평화상을 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작가 한강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2024.10.10. ⓒ뉴스1

소설가 한강이 부럽다. 노벨문학상을 받고 책을 많이 팔고 유명해져서 부러운 게 아니다. 대중음악의견가로서 부러운 거다. 많은 사람들이 한강의 작품을 읽고 충격을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부러운 거다.

한강의 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면 알 거다. 결코 쉬운 작품이 아니다. 술술 읽히는 작품이 아니다. ‘채식주의자’는 충격적이고, ‘소년이 온다’는 고통스럽다. 그의 다른 소설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진지하고 치밀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100만 권이나 팔렸다는 건 100만 명의 독자들이 새롭게 생겼다는 의미다.

물론 그 100만 명 모두가 책을 끝까지 읽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읽다 내팽개치기도 하고, 중고서점이나 당근에 내놓을 가능성도 크다. 엉뚱한 시비를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는다면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문학과 다른 문학, 자신이 알고 있는 인간과 다른 인간,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와 다른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경험이 부러운 것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숏츠에 빠져있고, 넷플릭스의 자극적인 드라마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 아닌가. 진지함과 거리가 먼 영화들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시대에 한강의 책을 읽는다는 것, 아니 책을 읽는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취향대로만 소비하고 향유하는 시대에 한강은 노벨문학상의 후광을 등에 업고 다른 취향과 정체성을 가진 독자를 만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들의 감각과 지성과 안목을 뒤흔들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게 부러운 거다.

소설가 한강(자료사진) ⓒ뉴시스

세상에는 좋은 예술작품이 무수하게 많다. 소설만 해도 한강 외에도 수백명의 훌륭한 소설가들이 즐비하다. 김금희, 조해진, 천선란, 최진영, 황정은을 비롯한 이름을 얼마든지 댈 수 있다. 시에서도 그렇고, 영화에서도 그렇다. 연극이나 음악, 미술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모든 작품이 다 인기를 얻지는 못한다. 작품의 완성도만큼 알려지지는 못한다. 사람
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일을 하고 먹고 자고 생활하는 시간을 빼면 문화예술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고, 쉽게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보면 좋을지 알려주는 징검다리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뭘 보면 좋을지 모를 뿐 아니라, 봐야겠다는 생각부터 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한 번이라도 경험하지 못한 장르나 예술언어에 다가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대에 따라 젠더에 따라 계급에 따라 친근하고 선호하는 예술이 선명하게 갈라지는 이유다.

그런데 한강은 그 장벽을 순식간에 뛰어넘을 동력을 얻게 되었으니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음악의견가로서 대중음악에서도 한강처럼 뛰어난 작품을 내놓는 음악가를 얼마든지 댈 수 있다. 실리카겔, 여유와설빈, 이랑, 정밀아 같은 이름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노벨문학상을 받을 가능성이 낮고,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아도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한다. 이 정도만 되어도 팬이 꽤 있는 셈이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돌 음악이나 트로트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사람들, TV에 나오지 않는 음악은 없는 줄 아는 사람들, 김광석/서태지/조용필에서 멈춰버린 사람들에게 아직 이들의 음악은 닿지 못했다. 다른 어법으로 말하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음악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이들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다.

물론 세상 모든 사람이 대중음악 팬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여유와설빈, 이랑, 이주영, 정밀아, 천용성 같은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이나, 지금 평론가들이 호평하는 음악을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들의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는 시대여도 알지 못해 만나지 못해 듣지 못하고 빠져들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다. 그게 마음이 쓰이는 거다. 사실 낯선 어법과 표현과 정서와 메시지를 만나는 일이, 그래서 어색해지고 불편해지고 당황스러워지고 난감해지는 일이 예술을 만나는 이유 아닌가. 그런데도 시간이 없어서, 기회가 없어서, 방법을 몰라서 한정되고 친숙한 체험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강은 드물게 독자와 작가 사이의 높고 단단한 벽을 부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들에게 낯설고 새롭고 인상적인 문학의 세계를 안겨줄 기회다. 독자 개개인이 자신의 삶으로 한강의 작품을 읽으며 제각각 다른 해석과 평가를 할 수 있는 기회다. 한강으로부터 시작해 다른 작가들의 책으로 넘어갈 수 있는 단단한 징검다리가 생겼다. 대중음악가들이 이런 기회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여전히 그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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