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일상화된 폭력과 피해자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 연극 ‘킬롤로지 KILLOLOGY’

연극 '킬롤로지' 공연 사진, 데이비 역 배우 안동구 ⓒ (주)연극열전

연극 ‘킬롤로지 KILLOLOGY’는 2018년 초연과 2019년 재연에 이어 2024년 세 번째 공연되는 작품이다. ‘연극열전’의 20주년 기념 시즌(연극열전 10) 세 번째 작품이며, 영국 극작가 게리 오웬(Gary Owen)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강렬한 현실 묘사와 사회적 메시지를 주로 다루는 작가 게리 오웬은 ‘킬롤로지’를 통해 인간의 폭력성과 사회적 책임이란 주제를 직설적으로 다루고 있다.

무대 위 이야기는 너무 아팠다. 120분 중 단 1분의 예외도 없이 아팠다. 하지만 공연장을 오기 위해 거쳐온 세상은 너무나 평온하고 조용했다. 지하철에서 사놓고도 읽지 못했던 작가 한강의 2017년 출판본 ‘소년이 온다’를 읽던 중이었다. 책 속 문장 하나하나는 국가 폭력의 현장을 날 것 그대로 그려내고 있었다. 옆에 앉은 청년의 분주한 손놀림을 느낀 것은 책장을 넘기기 힘들어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청년의 휴대폰 속에는 폭탄이 연속으로 터지고 있었고 청년의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연극 '킬롤로지' 공연 사진, 데이비 역 배우 최석진 ⓒ (주)연극열전

지하철의 풍경도, 이런 게임을 훔쳐보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세상은 이미 가장 큰 폭력인 전쟁이 진행 중이다.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살인, 학교 폭력으로 자살한 학생들, 사이버 폭력이 뉴스를 도배한다. 민간인이 사는 지역에 폭탄이 투하되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고, 이태원 좁은 골목에 엉켜 살려달라고 외치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사건을 보면 세상은 지옥과 다를 바가 없지만, 세상은 놀랍지도 않게 평화로웠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날 것 그대로의 폭력


연극 ‘킬롤로지’는 ‘폭력’을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이다. 가장 창의적인 방법으로 살인할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는 온라인 게임 ‘킬롤로지(Killology)’는 그대로 연극 제목이 됐다. 게임 ‘킬롤로지’와 동일한 방법으로 살해된 소년 ‘데이비’, 아들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복수를 결심한 ‘알란’, 살인을 위한 게임 ‘킬롤로지’를 개발한 게임 개발자 ‘폴’, 이 세 명의 등장인물이 극을 이끌어 간다. 이들의 비극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무대 위로 돌아가 보자.

세 명의 등장인물들은 등퇴장 없이 한 무대에 있다. 조명이 한 사람을 비추면 그 사람의 서사는 숨 막히는 독백으로 채워진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알란,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어린 데이비, 아버지보다 더 성공한 게임 개발자 폴의 이야기는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시작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세 사람의 이야기는 긴밀하게 얽혀 들어간다.

연극 '킬롤로지' 공연 사진, 알란 역 배우 최영준 ⓒ (주)연극열전

학교 폭력을 겪으며 성장한 데이브는 다른 아이의 자전거를 훔쳐 달아나다 폭력배들에게 잡히게 된다. 이들은 게임 ‘킬롤로지’를 모방해 데이비를 살해한다. 아들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을 알게 된 알란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막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게임 ‘킬롤로지’ 개발자인 폴을 찾아간다.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사람들이 어디 있겠냐고 주장하는 폴은 알란의 공격에도 당당하다.

폭력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관객들은 조각조각 파편화된 이야기를 연결하고 사건을 맞춰간다. 그리고 그 끝에는 개인의 폭력이 사회적 폭력과 무책임으로 확장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아들을 잃은 알란의 고통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게임을 한다고 모두가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니 게임회사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것일까? 학교 폭력에 방치된 데이비를 보호할 학교와 사회는 제 역할을 다한 것일까? 이 질문은 답을 얻을 수 있을까?

경계선 없이 세 곳으로 나누어진 무대에서 배우들은 순간순간 위치를 바꾼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대단한 무대 장치가 없음에도 음악과 음향, 소리만으로 관객들은 끔찍한 폭력을 상상할 수 있다. 엄청난 양의 독백을 쏟아내는 배우들의 감정이 극에 달하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연극 속 폭력은 현실적이며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니 더 이상 같은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 피해자는 우리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극 '킬롤로지' 공연 사진, 폴 역 배우 임주환 ⓒ (주)연극열전

살해당한 아들의 복수를 결심한 ‘알란’ 역에 배우 김수현, 이상홍과 최영준이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살인을 위한 게임 ‘킬롤로지’ 개발자 ‘폴’ 역에는 배우 임주환과 이동하, 김경남이 무대에 오른다. 온라인 게임 ‘킬롤로지’와 동일한 방법으로 살해당한 ‘데이비’ 역에는 배우 최석진, 안지환, 안동구가 놀라운 연기를 펼친다.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연극 <킬롤로지>는 2024년 12월 1일까지 대학로 TOM(티오엠) 2관에서 공연된다.

[연극열전 10] 연극 ‘킬롤로지 KILLOLOGY’

공연 날짜 : 2024년 9월 27일(금) ~ 2024년 12월 1일(일)
공연 장소 : 대학로 TOM 2관
공연 시간 : 화, 목, 금 20시/수 16시, 20시/토, 일, 공휴일 15시, 18시 30분/매주 월요일 공연 없음
러닝 타임 : 120분 (인터미션 없음)
작 : 게리 오웬(Gary Owen)
번역 : 유은주
윤색 : 황나영
연출 : 박선희
창작진 : 무대 디자인 정승호/조명 디자인 최보윤/음악 이승호/음향 디자인 송선혁/의상 디자인 오현희/소품 디자인 박영주/분장 디자인 엄혜지/무대감독 스페이스프로젝트
출연진 : 김수현, 이상홍, 최영준, 임주환, 이동하, 김경남, 최석진, 안지환, 안동구
공연 예매 : 인터파크 티켓, YES24 티켓, 연극열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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