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30일 국회 사랑재에서 노사 5개 단체 대표들과 오찬 간담회를 했다. ⓒ국회의장실
노사정이 함께 모여 노동사회 현안을 논의, 협의해 온 사회적 대화는 30년 가까운 세월을 흐르며 파행을 거듭해 왔다. 현재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참여 중인 한국노총은 공식적으로 11번 탈퇴 또는 불참을 선언한 뒤 복귀했고, 민주노총은 2번째 탈퇴 후 지금까지 사회적 대화 기구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경영계 역시 한 번 탈퇴한 뒤, 다시 복귀했다.
사회적 대화가 반복적으로 중단되는 배경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태도를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정부가 정책 추진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회적 대화를 활용하면서 참여 주체들의 반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 국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다. 이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취임 후부터 적극 추진해 온 의제기도 하다.
경사노위는 왜 매번 파행하나, “정부, 정책 결정을 위한 도구로 활용 국회판 사회적 대화로 보완해야”
30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회는 사회적 대화를 어떻게 주도할 것인가' 공동 세미나. ⓒ민중의소리
30일 국회 도서관에서는 국회 기구와 노사 각 단체가 참여한 ‘국회는 사회적 대화를 어떻게 주도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세미나가 열렸다. 이 세미나는 국회입법조사처와 국회미래연구원, 대한상공회의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산업노동학회 등 사회적 대화의 핵심 주체들이 공동 주최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흥준 교수는 주로 보수 정부에서 사회적 대화가 후퇴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정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사회적 대화는 노동시장 구조 개혁에 초점을 두었는데, 노동유연화와 관련돼 있어 노동 쪽의 동의가 쉽지 않았고 노사정 합의 이후에도 파열이 발생했다”며 “노동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사회적 대화를 수단적으로 접근하는 집권층의 태도가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주로 노조의 권한을 약화시키거나 비정규직의 활용을 확대하는 등을 위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가 수단화된 것”이라며 “이러다 보니 민주노총은 아예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한국노총은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를 하다가도 도저히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하면 사회적 대화를 일시 중단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사회적 대화의 또 다른 한계로 ‘주고받기식 사회적 대화’라고 꼽았다.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 각각의 양보를 통해 더 큰 사회적인 성과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한데, 서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양보도, 사회적 성과도 최소화로 얻는 결론에 그치거나 각자의 주장만 이어가다가 끝나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노조 입장에서는 노조가 수혜를 받았으면 하고, 사용자는 사용자가 수혜를 받았으면 하고, 정부는 국정과제 추진의 결과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현실”이라며 “갑자기 신뢰를 갖기도 어렵고 노사정이 정확한 양으로 주고받기도 쉽지 않으니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는 국회가 조정할 수도 있지 않겠나”라고 제안했다.
정 교수는 국회판 사회적 대화의 장점으로 신속한 입법과 예산 반영 등을 꼽았다. 다만, 정 교수는 “국회의 사회적 대화가 행정부의 사회적 대화(경사노위)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 보완해야 한다”며 ▲경사노위와는 차별화된 의제 ▲국회판 사회적 대화의 제도화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998년부터 시작된 사회적 대화 기구의 활동을 분석한 국회미래연구원 정혜윤 부연구위원은 역대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공익위원과 정부위원이 절반을 넘는 비율을 차지하는 편향성을 지적했다.
정 부연구위원은 “위원 구성을 보면 경사노위가 노사정 동수로 구성될 것으로 생각하나, 노사 모두 합해도 30%에 불과했고, 정부·공익위원이 60%에 육박했다”며 “경사노위가 행정부 주도 정책 결정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며,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특정 방향으로 회의체를 이끌고자 할 때 이해관계자보다 전문가 참여를 늘리는 경향이 존재해 노사 없는 연구회·포럼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 노사정 기구에도 다양한 시민사회 구성원과 전문가가 참여하나 노사보다 전문가와 정부위원 비율이 높은 사례는 찾기 어렵다”며 “한국 노사정 회의체만의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경사노위의 파행이 반복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정부가 특정 방향의 정책으로 밀고 나가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되면 노든 사든 대화가 교착 상태로 빠지고 동의할 수 없다며 항의하거나 이탈하는 문제가 항상 생겼다. 이는 경사노위의 큰 문제점이자 한계”라고 짚었다.
정 부연구위원은 “경사노위는 공공재이고, 독점재라 유지될 수 있었다. 노사 단체의 항의와 이탈에도 독점재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가능했고, 앞으로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나 게으른 독점 상태에 빠지면 퇴보할 가능성도 높다. 국회의 사회적 대화라는 건 게으른 독점을 해소하고 건전한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회의 사회적대화는 경사노위를 자주 교착에 빠트린 ‘행정부 주도성’을 개선할 수 있고 세력 균형과 교섭을 목표로 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이 있다”며 “정당이 위원회에 포함되어 합의안이 바로 입법으로 이어진다면 회의체의 구속력 및 이행점검에 대한 논란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동계-경영계, 국회판 사회적 대화 필요성 공감하지만 일부 우려도 노사 5개 단체, 국회의장 제안한 실무협의체 참여키로
우원식 국회의장이 30일 국회 사랑재에서 노사 5개 단체 대표들과 오찬 간담회를 했다. ⓒ국회의장실
노사 각 단체의 대표로 나온 토론자들은 국회판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최근 첨예한 갈등을 보이는 국회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했다.
가장 주목되는 건 현재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민주노총의 입장이다. 민주노총 이양수 부위원장은 “그간 사회적 대화가 노동자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제도화하기보다 양보와 타협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자가 기울어진 운동장 내에서 더 밀리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 그 과정 속에서 민주노총에서는 사회적 대화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굉장히 무너진 상태”라며 “민주노총은 이 세미나를 시작으로 사회적 대화에 대한 참여 여부부터 어떻게 참여할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지 조직적인 토론을 거쳐 이후 입장을 정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도 사전에 배포한 환영사를 통해 “정부가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국회가 사회적 대화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한 것은 의미 있는 시도”라며 “국회 사회적 대화가 현실에서 고통받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민주노총 또한 한국 사회의 변화를 위해 책임 있게 논의에 참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 정문주 사무처장은 이미 국회의장의 노사 단체 방문과 이번 세미나 등으로 국회판 사회적 대화는 시작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 사무처장은 “국회발 사회적 대화 활성화를 위해 노사정 실무협의기구를 구성하는 게 시급하다. 노사로는 양대노총과 사용자 단체가 참여하고, 국회에서는 직접적인 노동사회 의제를 다루는 상임위원회가 참여해 중요한 의제를 모으고 논의하는 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대화가 의지 있는 국회의장 임기 동안에만 이뤄지는 일회성을 방지하기 위해 관련 법을 2025년 내에 제도화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황용연 노동정책본부장은 “사회적 대화가 입법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면 대화 참여 주체들도 합의에 대한 구속력이 부여되고, 효능감도 제고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서도 “국회에서의 사회적 대화가 지지 세력의 일방적 요구를 관철할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점이 있고, 노사 간 노력이나 정부 정책으로 해결되는 문제를 국회로 가져와 합의를 종용하고 입법을 시도하는 과잉 입법에 대한 우려가 없잖아 있다”고 말했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합의보다는 협의 중심으로 가야 한다. 국회에서 여야도 합의가 실종된 상황인데, 사회적 대화 장소만 국회로 옮기는 건 무의미하다”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의제나 주체, 방식에 대한 논의를 오랫동안 해서 논의의 틀을 정하고 사회적 대화를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경사노위의 아쉬운 점은 합의된 내용이 입법이나 정책에 반영되지 않거나 반영되더라도 합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뤄진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라며 “국회 내 사회적 대화는 노동 의제에 국한된 게 아닌 우리가 겪는 복합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의제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판 사회적 대화를 위한 움직임은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각 단체를 방문하며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온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국회 사랑재에서 노사 5개 단체 대표들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손경식 회장,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김동명 위원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양경수 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박일준 상근부회장, 중소기업중앙회 배조웅 수석부회장이 참석했다.
국회의장실에 따르면, 우 의장은 국회판 사회적 대화를 위한 실무협의체 구성을 제안했고 노사 5개 단체 대표들도 사회적 대화를 위한 실무협의체에 참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