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닿는 햇빛을 에너지로 측정하면 1년에 대략 17만8000테라와트(TW)라고 한다. 반면 인간은 화석연료와 수많은 핵발전소 등을 이용하고도 1년에 약 18테라와트밖에 생산하지 못한다고 한다. 인간은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는 햇빛의 약 0.01%밖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생산한 에너지의 대부분은 수백만 년 전 햇빛을 저장한 식물을 기반으로 한 화석연료다. 이는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것보다 1만 배나 더 큰 햇빛 에너지가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주변에 흘러넘친다는 의미다.
광활한 우주에서 찾아보기 힘든 지구의 특수한 생태계는 이 흘러넘치는 햇빛을 토대로 형성됐다. 식물의 광합성이 가장 핵심적인 고리다. 햇빛을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식물의 광합성 덕분에 지구에 인간을 포함한 생명이 생태계를 이룰 수 있었다. 식물이 빛을 생명의 에너지로 바꾸고,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묶어두면서, 우리가 숨 쉬는데 필요한 산소를 배출한 덕분이다.
인류가 흘러넘치는 햇빛에서 에너지를 얻는 식물의 광합성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광합성을 이해하려는 분위기는 17세기부터 있었지만, 셀 수 없는 나무를 베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마음껏 사용하다가 지구의 회복력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쯤에야, 광합성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흉내 내기 시작했다. 뒤늦게 햇빛발전과 그린수소 등 청정에너지로 지구 생태계에 좀 더 어울리는 발전을 시작했다. (식물의 광합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소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진즉에 이 햇빛을 활용할 방안을 찾고자 애써야 했다. 시간이 별로 없다. 곳곳에서 지구의 회복력이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위험 경고가 나온다. 어쩌면 이미 늦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경쟁하듯 햇빛발전을 포함한 신재생에너지에 사활을 건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독일의 경우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지난해 말 이미 50%를 넘었다. (우리나라는 10% 수준이다)
그런데, 기후위기를 계기로 재생에너지에 집중했다가 새로운 가능성도 보인다. 흘러넘치는 햇빛과 바람이 든든한 발전원이 되자, 기후뿐만 아니라 사회와 삶도 변하고 있다. 한 예로 스프레이크뷰엘(Sprakebuell)이란 독일 북부 마을에서는 마을주민들이 함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설치하고 배당 형식으로 수익을 나누고 있다.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150마리의 젖소를 키우는 한 주민은 우유 가격 변동에도 불구하고 풍력발전 등에서 나오는 수입 덕분에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 비하면 재생에너지 후진국이지만, 우리나라에도 스프레이크뷰엘과 같은 사례가 존재한다. 여주시 구양리의 햇빛발전 사례다. 67개 가구가 마을 공동의 자산과 저금리 대출로 1메가와트(MW) 규모의 햇빛발전소를 설치한 이곳은 그 수익을 마을복지에 사용한다. 대중교통이 잘 다니지 않는 마을에 공용버스를 두고 수시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병원에 간다. 점심이면 다 같이 모여서 밥을 먹을 수 있는 무료식당도 운영한다. 이 같은 모델을 구상한 최재관 전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은 5메가와트 규모로 키울 수만 있다면 각 가구당 월 100만원 상당의 농촌기본소득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구양리 모델은 햇빛의 주인이 마을주민이기에 그 의미가 크다. 외부 사업자나 땅 주인이 부를 축적하기 위해 마을주민이나 농민을 쫓아내고 햇빛발전소를 설치한 게 아니라, 마을주민과 농민이 함께 힘을 합쳐 설치하고 그 수익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지난 9월 10일 만난 구양리 주민 전주영 새마을지도자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볕은, 가장 힘없는 주민들이 가질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몇몇 사람의 점유물이 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전 지도자의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이 스쳤다. 지구 생태계에 조금 더 어울리는 발전으로 에너지전환을 꾀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영역도 민주화할 수 있지 않을까. 전력산업에 종사하는 일부와 국가가 독점하던 구조를,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구조로 바꿀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햇빛과 바람은 애당초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물론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여러 요인으로 전기료가 상승할 수 있다. 다만, 전기료 상승이 “탈원전 때문”이라는 일부 국내 보수언론과 여권의 주장은 궤변이 분명하다. 오히려 원전 수는 늘고 있고, 가동 원전도 안 줄었는데, 전기료 인상이 “탈원전 때문”이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참고로 “탈원전 때문에 전기료가 올랐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던 단체는 지난 10월 15일 1심에서 패소했다. 탈원전을 완성한 독일에서 전기료가 상승한 이유도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한 게 원인이었다. 독일은 전기료가 폭등한 원인을 탈원전에서 찾지 않았다. 오히려 러시아산 가스·석탄·석유로부터 하루빨리 독립해야 한다고 보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수입할 필요가 없는 햇빛과 바람에 집중한 독일의 사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처지는 독일과 우리나라가 비슷했지만, 대응과 대처는 이렇게 달랐다.
그러고 보면, 가장 안전하고 완벽하며 무한한 핵발전소는 더 짓지 않아도 이미 하늘에 떠 있다. 인류가 어설프게나마 핵분열이란 기술로 위안 삼으며 그렇게 흉내 내고 싶어 하는 핵융합으로 빛을 내며.
※ 참고 - 지구에 닿는 햇빛 에너지 양, 광합성 발견의 역사 등 : 생명을 이어온 빛 (광합성의 신비), 저자 라파엘 조빈, 옮김 이현숙 , 감수 안태석, 출판 북스힐 2024.02.15. - “탈원전 때문에 전기료 올라” 소송 제기한 단체 1심 패소 : 조선비즈 기사, 2024.10.21. - 전기료 폭등을 오히려 에너지전환 동력으로 삼은 독일 : 시사인 기사, 2022.10.18. - 독일 북부 마을 사례 : AP통신 기사, 2024.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