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쿠팡CLS 본사 앞에서 쿠팡의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
“세상이 아무리 지옥일지라도, 우리 아빠는 날 위해 그 지옥을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다 돌아가셨어요.”
쿠팡 로켓배송 택배기사로 일하다 지난 5월 숨진 고 정슬기 씨의 자녀 중 한 명이 아빠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다. 이 글에는 사랑하는 아빠의 죽음에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는 쿠팡의 무책임함을 책망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지난 30일 저녁, 전국택배노동조합 통해 공개된 정 씨 자녀의 편지는 “쿠팡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사과할 줄도 모른다. 정말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가 보다. 나도 알겠는데…”로 시작한다. 이어 “노동자들을 부려 먹는다. 신기하게도 죽을 정도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아빠는 바보다”라고 적었다.
정 씨의 자녀는 “우리 아빠는 죽었다. 일하다 돌아가셨다”며 “우리 아빠는 살고 싶었을 것이다. 나와 함께 있고 싶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정 씨의 자녀는 “대한민국 국민을 쿠팡의 노예로 길들이고 있다. 쿠팡의 빨리빨리,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 아빠를 죽였다”고 쿠팡의 책임을 물었다.
정 씨의 자녀는 “나는 아빠를 많이 사랑한다. 아빠가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 이리도 힘든 건지 몰랐다”라며 “아빠가 보고 싶다. 아빠! 천국에선 아프지 마세요. 일하지도 말고 푹 쉬세요. 사랑해요 아빠. 그리고 미안해요”라고 맺었다.
정 씨는 쿠팡의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에서 로켓배송 택배기사로 일하다 지난 5월 숨졌다. 지난 10일 근로복지공단은 정 씨의 죽음을 ‘산업재해’라고 판단했다. 공단은 정 씨가 사망 전 주 6일 동안 고정 야간근무를 하고, 숨지기 전 일주일 동안 74시간 24분을, 12주 평균으로는 73시간 21분 일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는 고용노동부의 ‘뇌심혈관 질환의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을 훨씬 넘어선 것이다. 원청인 쿠팡CLS 직원으로부터 여러 차례 배송 독촉을 받은 정 씨는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고 정슬기 씨 유가족을 비롯해 쿠팡에서 일하다 숨진 이들의 유가족들은 지난 10일부터 쿠팡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진행 중이다. 이날로 청원 시한이 10일 남은 가운데 현재까지 2만 7천여명이 청원에 동참했다. 청원이 성사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로 회부되려면 2만 3천여명의 동의가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다.
다음은 고 정슬기 씨 자녀가 쓴 편지의 전문이다.
쿠팡 과로사 희생자 故정슬기 님 자녀의 편지
세상이 아무리 지옥일지라도 우리 아빠는 날 위해 그 지옥을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다 돌아가셨어요.
1.쿠팡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사과할 줄도 모른다. 정말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가보다. 나도 알겠는데..
2.노동자들을 부려 먹는다. 신기하게도 죽을 정도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아빠는 바보다.
3.피해자들은 너무 힘든데 그 힘듦이 당연한거라 생각한다. 당해보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경험해 보지 않아서 모르는가보다. 꼭 이 힘듦을 당해봐야 아나? 진짜 쿠팡도 노답이다. 무식하다.
4.죽음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 우리 아빠는 죽었다. 일하다 돌아가셨다. 남들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살고 싶었을 것이다. 나와 함께 있고 싶었을 거다.
5.대한민국 국민을 쿠팡의 노예로 길들이고 있다. 쿠팡의 빨리빨리,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우리 아빠를 죽였다.
나는 아빠를 많이 사랑한다. 아빠가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 이리도 힘든 건지 몰랐다. 아빠가 보고 싶다. 아빠! 천국에선 아프지 마세요. 일하지도 말고 푹 쉬세요. 사랑해요. 아빠 그리고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