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서 파는 책이 국보법 위반?” 한국진보연대 압수수색에 거센 반발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 등 시민사회 “궁지 몰린 정권의 마지막 발악”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 등 시민사회가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무분별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를 규탄했다. ⓒ민중의소리

최근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진보 인사들에 대한 강제 수사를 이어가는 가운데, 시민사회는 31일 “국면 전환용 공안 탄압을 중단하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전날 이뤄진 한국진보연대 한충목 상임공동대표에 대한 압수수색과 관련해선, 수년 전 이뤄진 남북 교류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져 무분별한 경찰의 수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은 한국진보연대와 통일시대연구원, 통일의길과 함께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규탄했다. 한국진보연대와 통일시대연구원, 통일의길은 모두 한 대표가 활동하는 단체로, 경찰은 전날 이들 단체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박석운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행동 공동대표는 “지금 윤석열 정권은 정치적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상황이다.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무리한 작당을 지금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을 뇌물 혐의로 수사한다든지, 그게 잘 안되니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해 온 촛불행동에 대해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이제는 퇴진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진보연대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빙자한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공동대표는 “그런데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 2016~2018년 이뤄진 남북 교류가 활성화됐던 시기 합법적으로 교류를 한 것인데, 7~8년이 지난 이 시점에 와서 갑자기 문제제기를 하고, 합법적으로 출판된 책에 대해서도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압수수색은 굉장히 길게 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한국진보연대를 압수수색했다는 것을 널리 알리려는 정치적 목표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보여주기식 압수수색”이라고 날을 세웠다.

박 공동대표는 “지금 윤석열 정권은 발악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는데, 이 마지막 발안은 새벽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또 다른 징조”라며 “정치적 위기는 그런 식으로 해서 모면되지 않는다. 윤석열 정권은 민중적 심판을 통해 곧 퇴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년 전 남북교류와 책 문제 삼은 경찰
압수수색 당사자 “이렇게 터무니없는 건 처음”


경찰이 30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한국진보연대 외에도 통일시대연구원, 통일의길 사무실에서도 압수수색이 진행 중이다. 경찰은 구체적인 혐의 내용에 대해선 말을 아끼면서도 "장기간에 걸쳐 수사를 진행해 온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진보연대는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민주노동자전국회의,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등 22개 단체와 진보당 등이 연대해 지난 2007년 발족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한국진보연대 사무실 모습. ⓒ뉴스1

경찰청 안보수사단은 전날 언론 공지를 통해 한국진보연대 압수수색 사실을 알리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임을 밝혔다. 다만, 한 대표에 대한 구체적인 혐의점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한 대표에 따르면, 압수수색 영장에는 한 대표가 7~8년 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 활동을 통해 북측 인사를 접촉해 지령을 받은 뒤, 책 <북 바로 알기> 등의 책을 펴냈다는 경찰의 주장이 담겨 있다고 한다.

하지만, 6.15남측위가 중국 등에서 6.15북측위 인사들을 만나고 회의한 내용들은 이미 언론을 통해서도 공개된 사실이고, 당시 통일부는 6.15남측위의 대북접촉신고서를 수리하지 않은 채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이미 끝난 사안이라는 게 한 대표의 설명이다. 경찰이 이적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저서 <북 바로 알기> 역시 지난 2019년 출간돼, 현재까지도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해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전날 경찰은 15년 전 한 대표와 한 단체에서 함께 활동했던 A씨에 대해서도 압수수색했는데, A씨의 압수수색 영장에는 A씨를 한국진보연대 국제부장이라고 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A씨는 한국진보연대에서 활동한 적 없는 인사라고 한다.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맞지 않는 것이다.

한 대표는 “내가 이런 활동을 하다 보니 감옥도 가고 압수수색도 많이 받아봤지만, 이렇게 터무니없이 하는 건 처음 봤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이 정도 근거 없이는 안 했다”고 비판했다.

한 대표는 “7~8년 전 남북위 간의 공동 행사를 위해 저희들이 많은 만남을 했고, 때로는 통일부가 불허함에도 남북의 화해와 협력, 통일을 위해 중국 선양 또는 북경에서 만나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 들어와서 8차례에 걸쳐 남북교류협력법에 의해 과태료 처분을 받기도 했다”며 “저만 그런 게 아니고 종교인, 시민단체 인사 수십명이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그때 공안당국에서 불러서 조사를 다 했고, 그 결과 과태료 처분을 한 것인데 그때 조사는 무엇이고 지금은 무엇을 조사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한 대표는 “어제 자택에서도 경찰 30여명이 13시간여 동안 압수수색해 가져간 게 무엇인지 아시나. 지금도 교보문고에 가서 살 수 있는 사회과학 서적들”이라며 “15년 전에 국가정보원에 의해 압수수색 당하고 구금된 적이 있는데, 그때 국정원이 돌려준 압수 물품을 경찰이 또 가져갔다. 15년 전 국정원은 무엇을 했는데, 지금 경찰이 그걸 가지고 가서 다시 조사한다는 건가”라고 따져 물었다.

한 대표는 “윤석열 정권이 정말로 힘든가 보다. 이제 물러날 때가 된 것 같다”며 “그럴수록 시민사회단체, 종교계가 힘을 합쳐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에 더욱더 힘을 내겠다”고 힘줘 말했다.

경찰이 30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한국진보연대 외에도 통일시대연구원, 통일의길 사무실에서도 압수수색이 진행 중이다. 경찰은 구체적인 혐의 내용에 대해선 말을 아끼면서도 "장기간에 걸쳐 수사를 진행해 온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진보연대는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민주노동자전국회의,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등 22개 단체와 진보당 등이 연대해 지난 2007년 발족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한국진보연대 사무실과 같은 ⓒ뉴스1

한 대표의 법률 대리인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최석군 변호사는 압수수색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압수수색은 어제 낮 12시경부터 다음날 자정 12시 30분까지 12시간 조금 넘게 진행됐다.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7층 전체 공간을 경찰 인력이 가득 메웠고, 자신들이 불온서적이라고 지목한 5종류의 책을 가지고 가고, 공용 PC에서 한 대표의 사용 흔적이 있는 PC의 SSD를 복제 압수해 갔다”며 “이런 압수수색에 이렇게 많은 경찰력이 동원돼 보여주기식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인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특히 영장에서는 지나치게 넓은 범위의 수색을 허용했다. 7개 단체가 함께 사용하는 사무실에서 피압수자의 전속 공간이나 PC가 확인되지 않으면 전체 사무실에 대해 수색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매우 이례적”이라며 “압수수색은 당연히 당사자에 대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당사자가 특정되지 않은 7개 단체의 모든 구성원이 사용하고 있는 하나하나 PC에 대해 경찰이 수색해서 피압수자와 관련이 있는지 파악하겠다고 하는 건 이미 영장 청구 취지에서 매우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정권 주변의 범죄에 대해서는 단 한 번의 압수수색도 하지 못했던 수사기관에서 50여명이 몰려와, 모두에게 공개된 다섯 종류의 서적을 박스로 들고 가려고 했다”며 “이 정부는 공안 정국을 통해 국면 전환을 노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가의 안위는 몇 권의 책으로 무너지지 않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는 시민사회 각계 인사 40여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정권과 경찰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반헌법적 반인권적 국가보안법을 다시 꺼내 든 것이 명확하다. 시민사회단체 전반을 위축되게 만들려는 의도이고 현재의 윤석열 정권 지지율 폭락 국면을 전환하기 위함”이라며 “정권과 공안당국은 마치 국가보안법과 공안몰이가 정권 위기 탈출의 전가의 보도인 양 휘두르고 있지만 궁지에 몰린 윤석열 정권의 발악에 넘어갈 국민은 없다. 윤석열 정권과 경찰은 지금 당장 국면 전환용 공안 탄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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