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녹색전환을 한다고요?] 흑백요리사의 요리가 계속되려면

기후와 먹거리 위기에 적응하기

공개 직후 넷플릭스 비영어권 비영화부문 시청률 1위를 한 ‘흑백요리사’는 맛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요리사들의 진검승부로 큰 인기를 얻었다. 화려한 세트장에서 다양한 재료와 변화무쌍한 조리법으로 무궁무진한 맛의 세계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출연했던 요리사들의 식당은 연말까지 예약이 찼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언제까지 이렇게 진귀한 파인다이닝이 지속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르기도 했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것이 직업인 탓이겠지만, 특별히 올해 먹거리 위기에 관한 소식들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쉐프의 실력이 시작된다는 ‘재료의 방’에서는 언제까지나 신선하고 다양한 재료들이 나올 수 있는 걸까?

만찬 요리 ⓒpixabay

가속화되는 기후위기

올해 인류는 관측 이래, 가장 더운 여름을 겪었다. 2022년 발간된 IPCC6차보고서의 모든 시나리오에서 가까운 미래(2021~2040년)에 지구 평균온도가 1.5℃ 상승한다고 예측했는데, 실제로 2023년 2월부터 1년간 관찰한 지구 평균 온도는 1.52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EU의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연구소).

어디까지나 평균이고, 불행하게도 한국의 상황은 더 나쁜 쪽이다. 2023년 대한민국 기후전망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기온 상승은 약1.6℃이다. 올해 여름은 더욱 기록적이었다. 여름 더위는 4월 14일경 시작되었고, 열대야는 9월 22일이 되어서야 사라졌다. 여름이 5달 동안이나 계속된 것이다.

바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해역의 표층 수온 상승은 1.23℃(세계 평균 0.48℃), 해수면상승2.97mm (세계 평균 상승폭 1.7mm)으로 세계 평균을 2~3배로 상회하고 있다. 해수온도 상승 속도가 전례없이 가파른 것도 관찰되었는데, 국립수산과학원은 한반도 인근의 2023년 연평균 표층 수온이 19.8℃로 20년 동안(2001~2020)의 평균 수온보다 0.6℃나 높았다고 보고했다.

땅과 바다가 빠르게 뜨거워지면서 우리의 먹거리 사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과연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의 식탁은 무탈할 수 있을까? 올해 우리 먹거리에 닥친 위기를 정리해보았다.

2024년 먹거리의 위기

위기는 연초부터 시작되었다. 지난해 말부터 흐리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어 평년보다 일조량이 20~30%가량 감소하면서 사과, 참외, 수박, 딸기, 멜론 복숭아, 살구와 같은 과일과 보리, 밀과 같은 곡류, 그리고 마늘, 양배추, 애호박, 토마토 등의 생장이 지연되었다. 양파 생산량은 전년 대비 20~30% 감소했다.

여름철 35℃를 넘나드는 ‘폭염’도 영향을 미쳤다. 채소가 자라는데 적당한 온도(20℃~25℃)를 넘어서 한계온도(35℃)에 가까운 날이 많아짐에 따라 광합성이 제한되었고, 멜론, 참외, 수박 등 시설작물들의 수정과 열매 맺기가 지연됐다. 보리, 사료 작물 등은 습해, 애호박은 바이러스피해를 받았다. 마늘은 마늘쪽에서 또 마늘이 자라나는 벌마늘 피해가 확산되었다. 파프리카는 꽃이 녹아 떨어지면서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했다. 10월 이후에 수확하는 과채류는 9월 말 쏟아진 폭우 그리고 밤 기온 하락(10℃ 이하)으로 생육이 지연되었다. 열매를 맺지 못한 채 맞이한 늦은 생육기의 밤이 너무 추워져 버린 것이다.

바다에서는 연안 수온이 28℃ 가까이 오르면서 가두리양식으로 키우던 우럭, 쥐치, 멍게, 전복 숭어, 참돔 등이 폐사하기 시작했다. 고수온으로 폐사한 홍합은 10월 18일 기준 2,245줄, 약 8억1879만 마리로 알려졌다. 굴은 7,628줄로 지난해보다 8배가 증가했다. 김은 이미 겨울철에만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지칠 정도로 먹거리에 닥친 위기에 대한 기사들이 매주 넘쳐났다. 농부들은 흐리고 습한 봄, 폭염과 폭우로 점철된 길어진 여름, 늦게 시작되어 빠르게 추워져버리는 가을이라는 당황스러운 기후 상황하에서 고군부투했지만 농민 개개인이 기후위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기후위기와 함께 닥친 먹거리 위기는 고스란히 물가상승과 실질임금 인상률 하락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입은 해결책일까?

9월 중순경 강원 일대의 고랭지배추의 폭염 피해가 알려지고 배추 한 포기가 9천원에 육박하자, 정부는 중국의 신선배추를 1,100톤까지 수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민간기업의 중국 배추 수입을 위한 운송비 지원도 결정했다. 기후위기로 인해 초래된 먹거리 위기에 농산물 수입으로 대처하는 행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6월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돼지고기 5만톤 할당관세 적용, 축산물 무관세 수입 조치 확대, 대파 무관세 수입 허용, 양파, 감자 저율관세 확대 등의 조치가 취해졌고, 바나나, 망고 등 열대과일의 관세를 0%로 인하했다. 2023년에도 양파, 닭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대파, 무, 감자, 양파, 파인애플, 망고 등의 할당관세를 많게는 0%까지 낮추고, 기간을 연장했다. 현 정부 들어 급증한 농수산물 할당관세 품목은 2021년 말 20개에서 2023년 말 43개로 늘었고 수입액도 10조원을 넘어섰다(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기후위기만이 아니라 그로 인한 먹거리 위기도 한 해 두 해로 끝날 일이 아니다. 농산물 수입은 오히려 국내 농산물 가격 하락을 초래하고 장기적으로는 농법의 전환, 농작물 다변화 등의 탄력적 대응을 해나갈 여력이나 동기를 상실하게 한다. 더욱이 낮은 관세로 들어온 수입농산물의 물가상승 저지 효과도 크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22년 할당관세 품목별 물가안정 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할당관세를 1% 내릴 때 소비자가격 인하 효과는 쇠고기는 0.12%, 닭고기는 0.28% 등에 불과했다. 관세가 낮아진만큼 유통가는 낮아지지 않았고 농민도 소비자도 아닌 수입업자들과 대형유통업계에 이익이 돌아갔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먹거리 위기에 대해 농산물 수입이 적절한 대처방안이 아님은 많은 국민들도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농민신문과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이 진행한 ‘농업·농촌 현안 관련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한 밥상 물가를 지킬 최우선 대책으로 응답자 10명 중 6명이 ‘우리 농업의 안정적인 영농환경 구축’을 들었다. ‘수입 농산물 공급 확대’를 택한 응답자는 13.6%에 불과했다.

2024년 9월 생산자물가지수 (2020년 9월 생산물가= 100) ⓒ필자 제공(통계청 자료 재구성)

수입이나 해외 생산기지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후 패턴의 변화와 연동된 먹거리의 위기에 우리는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 부족하면 다른 데서 가져오는 것이 적절한 적응 방식일까? EU의 기후변화적응의 원칙을 참고할 만하다. EU는 기후변화적응 정책이 ‘지속가능’, ‘증거 기반’, ‘장소 기반’, ‘포용적이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모니터링’, ‘평가 및 지속적인 개선’, ‘유연하고 반복적인’ 등의 원칙에 입각할 것을 강조한다. 요약하면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방식은 해당 지역의 사정에 맞춰서 채택되어야 하며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조정의 과정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기후변화 적응 역량이 부족한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고립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특히 ‘지속가능’의 원칙은 적응 조치가 다른 곳의 적응 또는 탄소감축 노력을 손상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먹거리 위기에 대한 대책으로 식량의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물량을 확대하는 것은 장거리 이동에 의존해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온실가스의 고배출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4%가 생산, 운송, 유통, 소비, 폐기 등 식량시스템 전체에서 배출된다. 또 다른 연구는 식품운송이 식품 시스템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19%에 이른다고 평가했다. 즉 식품운송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이 세계 배출량의 6.5%에 달한다는 것이다. 항공여객운송에 따른 탄소 배출량의 세계 배출량의 2%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이런 상황에서 먹거리의 장거리수송을 확대해 기후위기에 적응하겠다는 것은 탄소중립의 목표와 배치된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9% 정도이고 곡물자급률은 20%에 미치지 못한다. OECD 주요국 중 가장 낮다. 국민이 먹고 마시는 농수축산물의 50%이상이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가속화되는 기후위기 상황에 탄력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은 국내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농업 분야의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목표와 병행되어야 한다. 식량안보를 걱정할 때는 식량자급률을 높이겠다고 하고, 기후위기를 얘기할 때는 탄소중립 하겠다고 하면서, 실상은 당장의 물가만 생각하며 농산물 수입을 무분별하게 확대하는 것은 한 치 앞도 보지 않는 모순적인 정책이다.

해외에 곡물 생산기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하게 식량 수급을 보장해줄 땅은 사실상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해외 생산기지로부터 먹거리를 이동시키는 과정에 많은 양의 탄소배출을 피할 수 없다.

최근 정부는 자연재해와 가격 하락으로 피해를 입는 농민들의 소득보장을 위해 갑작스럽게 수입안정보험 확대를 결정했다. 자연재해보험과 마찬가지로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저감시킨다는 취지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먹거리의 안전을 지켜내야 할 국가의 역할이라면, 사보험을 끌어들여 농민의 파산을 막거나, 부족한 농산물 수입을 촉진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변화하는 기후상황에 맞게 다양한 대체작물과 저탄소 농법이 농민들 사이에 신속하게 뿌리내리도록 지원하고, 탄력적 농산물수급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저탄소 농법을 위해서라도 농촌의 에너지전환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국민의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농민들의 삶의 질을 지켜주는 보편적인 소득보장과 지역복지정책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글을 마치는 질문 Is the fine-dining really fine?

다시 흑백요리사를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의 기쁨에는 죄가 없다. 맛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요리사들의 노력은 아름답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새로운 식문화를 요구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장거리 운송으로 수급해온 식재료들로 맛을 낸 파인다이닝은 언제까지나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다. 미식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는 것도 어김없이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킨다. 이제는 일상이 된 기후위기에 유연하게 적응해 해마다 달라질 로컬 식재료들로도 창의적인 요리를 만들어 낼 기후탄력적 쉐프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참고문헌

Global food-miles account for nearly 20% of total food-systems emissions Mengyu Li, Nanfei Jia, Manfred Lenzen, Arunima Malik, Liyuan Wei, Yutong Jin & David Raubenheimer. Nature Food volume 3, pp 445–453 (2022)

https://climate-adapt.eea.europa.eu/en/mission/knowledge-and-data/regional-adaptation-support-tool/getting-started/adaptation-principles

[2024년 국감] 임미애 의원, 소고기 관세 지원액 88% 수입·유통업자 독식(2024.10.08. 팜인사이트) https://www.farminsight.net/news/articleView.html?idxno=13514

농림축산식품부 보도자료. ‘배추 수급안정을 위해 가용 수단 총동원, 근본적인 원예농산물 수급 안정 대책도 마련’ (2024.09.26.)

https://www.fao.org/faostat/en/#data/EM/visualize

국민 62% “밥상물가 대책은 영농환경 안정화” (2024-10-06, 농민신문)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