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기구 ‘테러조직’ 규정하고, 평화유지군 공격하는 이스라엘

10월 31일(현지시각) 서안지구 툴카렘 누르샴스 난민촌에 있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사무소 일부가 이스라엘군의 작전으로 파손돼 있다.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의 생명줄로 불렸던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의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유엔 회원국이 유엔 산하 기관을 ‘테러 조직’으로 규정해 금지한 초유의 사례다. 앞서 이스라엘은 UNRWA 직원 1500여명이 하마스와 연계돼 있다고 주장하며 UNRWA에 대한 재정 지원을 차단한 바 있다. 이후 미국 정보기관조차 이스라엘이 사실을 왜곡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재정 지원을 재개했지만 유엔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알자지라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Israel’s ‘war’ against the UN

이스라엘 의회가 지난 21일 밤 두 가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UNRWA)가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생명을 구하는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차단된다. 이는 이스라엘이 국제 사회와 국제 규범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최근 사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민을 위한 주요 유엔 구호기구와 대립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레바논에 주둔 중인 유엔 평화유지군(UNIFIL)도 공격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백린탄을 사용했다는 의혹도 있다.

가자지구의 190만 난민에게 그들을 도울 유일한 존재였던 UNRWA이 없어지는 것은 심각한 타격이다. 특히 UNRWA 난민 캠프에 수많은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루이즈 워터리지 UNRWA 가자지구 긴급 구호 책임자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UNRWA에 추가적인 제약이 가해지면 고통받는 건 결국 가자지구 주민이다. 빵 한 조각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서로 밟고 서 있는 사진도 받았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절실한 필요는 여전히 같다. 사람들은 음식, 물, 약, 그리고 거처가 필요하다. 이러한 기본적인 물자에 대한 접근이 추가로 막힌다면 이스라엘이 만든 재앙적인 인도적 위기는 더 악화될 것이다".

폭력의 역사

이스라엘이 국제 규범을 따르지 않은 건 고립된 사건이 아니다. 그건 이스라엘이 유엔과 여러 차례 충돌한 것 중 최신 사례일 뿐이다. 화요일 이스라엘 총리실은 히브리어 엑스 계정에서 유엔이 이스라엘 건국에 기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며 이스라엘이 ‘독립 전쟁’의 승리로 건국됐다고 주장했다. 1948년 팔레스타인 국민을 고향에서 강제 이주시킨 사건을 거론하며 말이다.

‘총리실: 프랑스 대통령에게 상기시킨다. 이스라엘 국가는 유엔 결의가 아닌, 독립 전쟁에서 영웅적인 전사들의 피로 이룬 승리로 세워졌다. 이들 중 다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였으며 그중에는 프랑스 비시 정권 출신도 포함되어 있다’. 영어 계정에는 이런 게시물이 없었다.

한편 이스라엘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이란의 이스라엘 미사일 공격을 ‘완전히 규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입국을 금지하기도 했다.

유엔에 대한 신뢰를 깎으려는 이스라엘

‘유엔은 이스라엘 국민에게 중요하다. 유엔 헌장에 의해 [1948년] 세워진 것이 이 나라의 집단 기억의 일부다’. 정치 평론가 님로드 플라셴버그가 텔아비브에서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유엔을 반이스라엘적 혹은 반유대주의적 감정의 본거지로 묘사하면서 점점 유엔의 정당성을 훼손하려고 노력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엔을 비판하는 주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1984년부터 1988년까지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를 지낸 네타냐후다. 그의 우파 리쿠드당은 2009년부터 집권 중인데 최근에는 극우파와 초정통파 세력과 연대하면서 유엔과 더 심하게 부딪히고 있다.

플라셴버그도 유엔이 비판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할 때가 많다며 이에 동조하고 있다. 그는 (포르투갈 사회당 사무총장을 지낸 구테흐스가 많은 이들에게 문제라며 좌파와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이스라엘 우파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플라셴버그는 ‘유엔 인권 이사회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시간이 할애되다 보니 이스라엘의 유엔 비판자들이 이를 반유대주의라고 부르기 쉽게 만든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알자지라의 연락을 받은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 대변인은 이에 반박했다. 그는 ‘고등판무관는 적용할 수 있는 국제법과 기준에 따라 보편적이고 구체적으로 회원국들과 함께 인권 존중과 보호를 증진하는 것이 임무다. 볼커 튀르크 고등판무관은 국제 인권법 위반이 누구에 의해, 언제, 어디에서 저질러졌든 간에 공정하게 임무를 수행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사무국의 모든 행동은 철저한 모니터링과 보고 방법론을 통해 얻은 사실에 기반하며 관련 국제법에 따라 평가된다’고 덧붙였다.

올해 초 나온 국제사회 보고서 '학살의 해부'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자행한 여러 인권 침해 사례를 문서화했지만, 이스라엘과 그 군사적‧외교적 지원국인 미국은 그것마저도 편향되고 반유대주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국민에 대해 국제 인권법을 위반했다고 여러 번 규탄한 유엔 무기한 조사위원회(COI)을 비난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AFP 통신이 ‘이스라엘과 강한 연계를 가진 로비 단체’라고 묘사한 비정부기구인 유엔 워치는 유엔 총회(UNGA)가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15건의 결의안을 채택한 반면, 나머지 세계에 대해서는 7건을 채택했다고 주장했다.

2023년에는 유엔 결의안 중 두 건이 이스라엘의 가자 대학살과 관련 있었다. 당시에도 2만 명 이상이 사망한 터였다. 다른 결의안들은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이나, 여러 권리 단체가 아파르트헤이트 조치라고 비난한 보안 장벽 건설 등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결의안들은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한 팔레스타인 영토와 레바논에서 초래한 환경 피해에 관한 것이었다.

내재된 갈등

‘이스라엘은 유엔이 창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부터 많은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중동연구소의 폴 세일럼은 말했다. ‘태생부터 내재된 갈등이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유엔 결의로 창설된 직후 나크바를 저질렀다. 팔레스타인 국민 70만 명 이상을 고향에서 강제 추방한 것이다.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난민으로서 귀환이 금지돼 주로 서안이나 이웃 국가의 난민 캠프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1967년 이후 유지하고 있는 서안, 가자 지구, 동예루살렘의 점령지도 제네바 제4협약을 위반하는 것으로 전 세계적으로 신성불가한 것으로 여겨지는 유엔 명령과 국제법을 무시하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과 유엔 사이의 일부 갈등은 최근 일이다. 팔레스타인에서 UNRWA를 금지하는 법안, 유엔 결의안을 집행하는 유엔군을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것 등이 그 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이 가자 북부로 전쟁을 확장하면서 레바논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유엔군과 충돌하고 있다.

세일럼은 평화유지군을 보호하는 외교적, 법적 조치를 지적하며 ‘이스라엘은 그들의 길을 막는 평화유지군을 제거하길 원하지만, 이는 정당하거나 합법적인 방식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유엔에서 철수하고 외교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주장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외교는 답답할 수 있다. 나도 이해한다. 항상 성공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유엔이 존재하는 것이다. 문제가 군사력으로 해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변하는 이스라엘, 변하는 유엔

이스라엘 건국 이후 유엔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이스라엘을 탄생시킨 51개의 유엔 회원국은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국가가 늘어나 193개의 유엔 총회(UNGA)로 성장했다. 유엔 총회에서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최근 이스라엘은 유엔 총회의 다른 회원국과 더욱 극명하게 맞서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리처드 캐플란은 ‘자유민주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라고 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생존 모드로 국제 인도주의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채 즉각적인 위협에 대응하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가장 도덕적인 군대'를 운영하고 있다는 주장이 무색하다고 했다.

캐플란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스라엘 경제가 강세를 보이고 이스라엘과 일부 아랍 국가 간 관계가 개선되는 등 비교적 낙관적인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에 대한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지 않았고 유엔과의 균열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캐플란은 ‘오히려 이스라엘이 잔혹한 식민화를 계속 추진하고 팔레스타인 국가의 출현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이스라엘 국민도 대부분 팔레스타인의 불법 점령을 용인하거나 지지하고 있다. 점령을 끝내겠다는 공약으로 선출된 크네세트 의원은 없다. 유일한 희망은 이스라엘 동맹국들이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고 그들의 영향력을 사용해 이스라엘이 행동을 바꾸도록 압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지 않으면 나는 미래에 더 많은 인종 청소와 더 많은 폭력이 있을까 두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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