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태경의 토지와 자유] 지금은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에 나설 때가 아니다

섣부른 기준금리 인하는 실효성 없이 환율만 자극해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올해 경제성장률이 기존 전망치 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한 이 총재는 하향된 경제성장률을 감안하더라도 선진국들과 비교해 나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재정을 통한 전면적 경기부양책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 이 총재의 판단은 적확하다. 어설픈 기준금리 인하는 시장금리 인하를 견인하기도 어렵고 가뜩이나 불안한 환율만 자극하기 때문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등 국정감사에서 대화하고 있다. 2024.10.29. ⓒ뉴시스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 이창용 한은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9일 "재정을 통한 전면적 경기 부양책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 '재정 정책을 제때 사용하지 않아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에 "(현재 우리나라) 경기가 침체에 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분기 수치를 고려하더라도 잠재 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전면적 경기 부양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다만 자영업자나 건설업 등 어려운 부분에 대해 부분적 부양은 필요하다"면서도 "금리 등으로 적극적 부양에 나서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 금리가 오르는 현상에 대해서는 "가계부채, 부동산 가격에 대한 경고가 떴기 때문에 은행들과 협조 아래 대출을 줄이고 있다"며 "(대출금리 상승은) 그런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고, 가계대출 등이 안정화하면 다시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가 시장금리 하락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연속적인 인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가 상승했다는 지적에 "과거 경험상 금리를 한 번 낮추면 금리 인하 기대로 내려갔던 시장금리가 오히려 올라간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라고 답했다. 그는 "금리를 1회 낮추면 효과가 작고 연속적으로 몇 번 낮추면 그다음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 총재는 한은 성장률 전망치 조정 여부를 묻는 질문에 "올해 성장률이 2.4%(한은 기존 전망치)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2.2∼2.3% 정도로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총재는 다음 달 28일 기준금리 결정 방향에 대해서는 "금리 결정할 때 하나의 변수만 보지 않고 종합적으로 보는데, 우선 미국 대선과 미국 중앙은행(Fed) 금리 결정으로 경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보겠다"며 "아울러 이후 달러(가치)가 어떻게 될지, 수출 등 내년 경제 전망과 거시안전성 정책이 부동산·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 등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어설픈 기준 금리 인하는 시장금리를 낮추지도 못하고 환율만 급등시켜

이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한 건 다행한 일이다. 섣부른 기준금리 인하는 시장금리를 인하하기 힘들 뿐 아니라 위태롭기 그지없는 환율만 자극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당장 무서운 속도로 치솟고 있는 환율만 하더라도 한은의 섣부른 기준금리 인하를 크게 제약하는 요인이다.

지난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일보다 1.5원 상승한 1386.5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1370원대로 살짝 내려갔던 환율이 반등한 것이다. 근래 원달러 환율은 1400원 돌파를 지속적으로 시도 중이다.

주지하다시피 원화 약세는 한국 경제체력 및 향후 전망에 대한 시장의 비관적인 전망이, 달러 강세는 세계에서 가장 견조한 미국 경제와 강달러를 초래할 트럼프 당선 가능성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단기간에 해소하기 매우 어렵다. 이런 마당에 한은이 내수를 부양한답시고 기준금리를 경솔하게 내리면 환율이 급등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또한 이 총재도 말했듯 기준금리 인하는 한 번 가지고는 효과가 없고 연속해서 여러 번을 해야 효과가 나타나는 법이다. 만약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연속적으로 단행하면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가 지금의 1.75%p에서 더 벌어지게 된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한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하할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가 지속적으로 이격된다는 건 환율 급등의 원인으로 기능할 것이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더 있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시장금리가 오히려 고개를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국채수익률 곡선 ⓒ인베스팅닷컴

위의 그래프가 잘 보여주듯 미국 국채수익률은 단기물과 장기물을 가리지 않고 한 달 전에 비해 모두 크게 상승했다. 인플레이션의 재발 가능성, 확실시되는 국채의 대량공급 가능성,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 확률 약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미국 시장금리의 토대인 미 국채수익률을 밀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미 국채수익률이 경향적으로 상승하면 시장금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설사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시장금리는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정리하자!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국채를 발행하건, 부자감세를 철회해 재정을 마련하건 지금은 정부의 재정정책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한국은행이 나설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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