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윤석열 정부의 저열한 공수처 무력화 작업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4일 박석일 전 부장검사의 사직으로 결석이 된 수사3부장에 이대환 수사4부장을, 수사4부장에 차정현 수사기획관(부장검사)으로 각각 전보 발령했고, 일부 평검사들의 부서도 교체했다. 지난 5월 오동운 공수처장 취임 이후 단행된 공수처의 첫 전보 인사인데, 이번 인사가 이뤄진 내막을 들여다보면 안쓰러울 지경이다. 현재 공수처에 남은 수사 책임자 격인 부장검사급(정원 7명)은 이대환·송창진 부장과 차정현 수사기획관이 전부다. 송창진 수사2부장은 얼마 전 사직서를 내고 수리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수사1부의 경우 부장은 물론 평검사 자리까지 모두 비어있다. 부장급 검사를 포함한 공수처 검사 정원은 25명인데, 이 중 현재 남아 있는 검사는 15명에 불과하다. 공수처가 탄생할 때부터 검사 정원이 부족하다고 지적받았다는 점에 비춰보면 지금의 결원 규모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현재 공수처에 넘겨진 주요 사건은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및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김 여사 사건 무혐의 처분 검찰 수사팀·지휘부 고발 사건 등 권력 최상층부를 겨냥한 굵직한 사안들에 관한 것들이다. 통상 검찰이 중대 사건을 수사할 때 수십 명 규모의 특별수사단 등 비직제 수사팀을 꾸렸다는 점이나 그동안 출범했던 특검 규모 등을 감안하면, 지금 대규모 결원 상태의 공수처가 위와 같은 사건들을 제대로 수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공수처 스스로도 이번 인사와 관련해 “수사 인력 결원 상황을 감안해 조직 안정화를 꾀하고,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들의 차질 없는 수사를 위해 제한된 인력 여건에서 효율적으로 인력을 재배치했다”고 했다. 이는 실질적으로 수사를 진척시키기보다는 형식상 수사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점을 시인한 것으로 읽힌다.

이런 사태가 초래된 이유는 윤석열 정부의 노골적인 공수처 무력화 작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검찰 수사권 회복 및 공수처 권한 축소 공약을 내걸었던 윤석열 대통령은 사법 개혁 관련 국정과제를 통해 이를 공식화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 여소야대 국면으로 인해 법 개정을 통한 공수처 권한 축소가 어려워지자, 공수처 검사 임명권을 악용해 기관 운영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공수처 무력화 작업을 해나갔다. 윤 대통령은 초대 김진욱 처장 임기가 끝난 후 3개월이나 지나서야 후임 처장을 지명하는가 하면, 공수처 검사들에 대한 연임 재가를 시한 만료 직전에 하는 식으로 공수처 조직을 불안하게 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공수처가 지난 9월 신규채용을 결정한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2명 임명안도 아직 재가하지 않고 있다. 공수처는 하반기 채용 인력을 늘리기로 하고 부장검사 3명과 평검사 5명에 대한 신규채용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나, 그동안의 윤 대통령 행태에 비춰봤을 때 이들의 채용이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수사 인력으로 투입되기까지는 까마득해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윤석열 정부는 공수처 예산을 지속적으로 줄였다. 정부는 2025년도 예산안에서 공수처의 수사 관련 예산을 올해보다 16.8% 삭감했다. 특히 포렌식 관련 예산은 40%나 삭감했다. 공수처 수사와 관련된 여비와 특수업무경비도 대폭 깎였다. 반면 수사권 조정으로 기능과 역할이 축소된 검찰의 수사 관련 예산은 올해보다 3.6% 늘어났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공수처 조직의 불안정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검사 신분 보장의 취약성이 가중돼 실력 있는 수사 인력들의 공수처 지원을 주저하게 하고, 기존 수사 인력들의 업무 효능감도 떨어뜨린다. 이는 곧 공수처 활동 전반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분명한 현실은 공수처에 맡겨진 사건은 하나같이 윤 대통령과 주변부를 관통하는 사건들이며, 이들 사건에 대한 공수처 수사가 미진할수록 특검 및 탄핵 여론이 거세진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단순히 공수처를 마비시키는 것으로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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