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했다. 트럼프는 언론 및 조사기관의 예측보다 큰 격차로 현직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를 눌렀다. 함께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도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당이 될 것이 확실하다. 막말과 기행 이미지에도 유권자들이 다시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미국우선주의 주장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의 취약성과 노동자와 중산층의 불만이 분출된 이번 대선 결과는 세계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행정부는 강력한 고립적 경제정책을 추구할 것이고, 미중 대결도 어느 때보다 심화할 것이다. 트럼프 집권 1기를 거치면서 민주·공화 양당의 대중 정책이 상당히 유사해졌으나 트럼프 2기의 자국우선주의와 무역장벽은 더 거세고 높아질 것이다. 아울러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가 넘실대는 트럼프 시대에 ‘동맹’은 퇴색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이미 한국과 대만, 유럽을 겨냥해 ‘방위비를 더 내놓아야 한다’고 거칠게 요구했다.
트럼프 당선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협상과 종전 국면으로 넘어가게 됐다. 서방의 지원 없이는 전쟁 수행이 불가능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북한 파병론을 고리로 한국의 군사적 지원을 유도하려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즉각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희생이 늘어가는 전쟁을 마감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반면, 중동 분쟁 사태는 해결 전망이 밝지 못하다. 민주당 이상으로 트럼프가 이란에 적대적이며, 친이스라엘 노선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된 상황에서 미일 양국을 추종하는 윤석열식 외교와 이른바 ‘힘에 의한 평화’ 노선은 설 자리를 잃었다. 트럼프는 1기 집권 시에도 주한미군 감축까지 거론하며 방위비 증액을 압박을 했고, 이득이 된다면 북한과도 거래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여당인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6일 “누가 당선돼도 한미동맹은 강화될 것”이라고 했는데, 트럼프도 그렇게 생각할지 의문이다. 우리 정부가 최근 북한 파병론을 과장하며 우크라이나 군사지원과 파병 의향을 드러낸 것 역시 전혀 전략적이지 못한 행태다. 경제, 안보 양 측면에서 거친 공세가 예상되는데 다 지난 짝사랑을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된다.
트럼프 2기를 맞아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국익을 지키려면 외교안보·경제 정책을 전면적으로 교정해야 한다. 특히 미중 대결이 불붙는데 ‘묻지마 한미일’을 외치며 달려들면 진영 대결의 돌격대로 내몰릴 수 있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순탄할 듯 보였던 한반도 정세가 ‘하노이 노딜’로 문재인 정부 내내 답보한 경험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익 위주의 자주적 외교노선과 경제전략을 정립하고, 남북관계도 대화를 통한 평화 실현과 공동이익 추구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트럼프 2기를 맞아 외교안보 철학과 역량이 절실한데, 대통령과 정부의 상태를 보니 기가 막히다. 정치권과 국민이 지혜를 모아 정부 역량의 부족을 타개할 비상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