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한인임의 일터안녕] SK를 위해 24시간, 365일(!) 일하는 ‘노예노동자’가 있다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전국에서 이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통신시장의 50%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기업이다. 그런데 통신업에서 가장 중요한 망을 유지보수하는 노동자들은 SK텔레콤이나 브로드밴드 소속이 아니다. 그리고 SK 자회사 소속도 아니다. 유엔에이엔지니어링(SK계열사)과 펜텍씨앤아이엔지니어링(팬텍계열사) 두 기업에게 SK텔레콤·SK브로드밴드는 망 유지보수 업무를 위탁했다. 그런데 이들 중간 업체들은 또다시 수십 개의 지역사업주에게 다시 망 유지보수 업무를 위탁했다. 이들 기업들과는 1~2년 단위로 도급 계약을 하고 있다. 그래서 다단계 하도급의 마지막 기업인 지역의 영세한 소기업들은 1차 도급사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언제든지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그런 사업주들 밑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오늘 소개하려는 사람들이다.

너무 복잡해 건설업 같다는 느낌이다. 고용구조가 복잡해도 일만 잘하고 법 딱딱 지키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라면 문제 될 게 없다. 그런데 이렇듯 복잡한 고용구조,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유지하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SK는 건설업에서처럼 일종의 발주처 자격을 획득했다. 따라서 안전보건의 책임이나 노무관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건설업에서 발주처보다 더 먹잇감이 많다. 건설업 발주처는 비용 절감을 위해 임의로 공사기간 등을 단축할 수 없다. 또한 건설노동자들은 짧은 공사기간이 끝나면 또 다른 일터를 찾아 떠나야 하지만 SK 다단계 하도급 노동자들은 항상 SK를 위해 일해야 한다. 임의로 공사기간도 단축할 수 있고 SK만을 위해 일하는 숙련 노동자도 확보할 수 있고 안전보건 책임으로부터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꿩 먹고 알 먹는 위치’인 셈이다.

노동조합에서 SK브로드밴드 외주업체의 노조탄압과 다단계 하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홈페이지

그런데 결국 이런 책임 떠넘기기를 위한 복잡한 하도급 구조가 사달을 냈다. 노동자들의 무려 40%가 넘는 비율에서 ‘365일, 24시간’ 근무체계를 갖고 있었다. 정상적인 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해서도 어느 통신망에서 장애가 날지 몰라 대기하는 것이다. 술자리를 갖는 건 불가능하다. 출동할 때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밤에 자다가도 전화가 오면 출동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밤에 전화가 울리면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그동안 ‘노예처럼 살았다’, ‘삶이 없었다’고도 진술했다. 이러한 대기에 대한 수당도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도 초대형 통신기업을 위해서. 이 초대형 통신기업은 망 관리 노동자들의 삶을 갉아먹으면서 매년 수조 원의 순이익을 발생시켜 왔다.

뿐만 아니라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엄청난 교통사고 발생률이었다. 한 해에 SK 도급노동자 집단에서 교통사고 경험률이 20%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운수노동자들의 1년 교통사고 경험률 22%와 맞먹는 수준이다. 운전 노출 시간으로 비교해 보면 오히려 SK 도급노동자 집단이 두 배 높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시간 압박, 운전 중 통화나 문자 확인 등과 관련돼 있다.

한편 지붕 위에서 수행하는 작업, 맨홀 등 밀폐공간에서 진행하는 작업, 전봇대에서 수행하는 작업이 대부분인데 이 작업들은 사고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절연, 감시자, 감독자 등이 요구되는 작업이지만 잘 지켜지고 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젊은 노동자들은 왔다가 말도 없이 안 나온다고 했다. 인력은 없는데 낮은 임금, 장시간 노동, 위험한 노동 때문에 취업하려는 노동자가 없어 남아 있는 노동자들은 더 어려운 곤경에 처해 있다.

SK텔레콤·SK브로드밴드는 수치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을 위해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정부는 근로감독을 통해 법을 집행할 능력이 없는 소사업장 사업주들에게는 영업정지 등의 강력한 행정적 규제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1차 도급업체, 즉 원청에게는 원청으로서의 안전보건 책임을 명확히 물어야 한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