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플랫폼과 입점업체가 중개수수료 부담 완화를 위해 100여 일간 11차례 상생협의체 회의를 거쳤지만, 양측의 입장을 좁히지 못해 사실상 상생안 도출에는 실패했다.
상생협의체 공익위원들은 업계 점유율 1, 2위인 배달의민족(배민)과 쿠팡이츠에 11일까지 보완된 상생안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지만, 양사는 물론 입점업체와의 입장차도 커 타결 가능성은 작다.
합의가 최종 결렬될 경우, 입법을 통한 배달수수료 상한제 도입이 거론된다. 다만 그동안 플랫폼 규제를 자율에 맡겼던 정부 기조와는 반대되는 방향인 만큼 정부 측에서는 난감하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배민과 쿠팡이츠 등은 이날까지 보완된 상생안을 상생협의체에 제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미 각사가 제시한 상생안에서 내용이 크게 바뀌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입점업체 측 일부에서는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중재원칙도 부족하다는 입장이라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배달 플랫폼은 주문금액 일부를 중개수수료로 받는 정률제를 시행한다. 수수료율은 배민, 쿠팡이츠가 9.8%, 요기요가 9.7%다. 부가세, 결제 수수료 등이 더해지면 입점업체 점주가 부담하는 비용은 10%가 넘어간다. 이와 별도로 점주들은 1,900~2,900원의 배달비도 추가로 부담한다. 이 같은 비용을 모두 고려하면 통상 음식값의 30%가 배달플랫폼에 내고 있다고 입점업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에 상생협의체 공익위원들은 중개 수수료율을 입점업체의 매출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방식으로 수수료율 수준을 낮추는 방안을 중제원칙으로 제시했다. 최고 수수료율은 현 수준인 9.8%에서 낮추고, 전체 평균은 6.8% 이내로 하도록 했다. 또 매출 하위 20%의 영세 업체에는 공공 플랫폼과 같은 2.0%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배민이 생상협의체에서 제안한 차등수수료안이 중재원칙에 가장 가깝다. 배민은 플랫폼 내 거래액을 기준으로 상위 30% 내 업체에는 7.8%의 중개수수료를 적용하고, 중간그룹인 상위 30~80% 업체는 6.8%, 하위 20%에는 수수료율 2.0%를 적용하는 안을 제시했다. 다만 배민은 경쟁사인 쿠팡이츠가 중재원칙에 부합하는 상생안을 제시할 경우 자신들도 이 같은 상생안을 시행할 수 있다고 조건을 걸었다.
쿠팡이츠도 거래액에 따라 6개 구간으로 나눠 9.5%에서 2.0%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차등수수료 방식의 상생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거래액 기준 상위 65%에는 7.8~9.5%의 수수료율이 적용돼 '평균 수수료율 6.8%'라는 중재원칙에는 미치지 못했다. 최고 수수료율도 현 9.8%에서 9.5%로 소폭 인하하는 데 그쳤다.
상생협의체는 차등수수료라는 큰 틀에선 공감대를 이뤘지만, 세부 내용에서 양사 간 입장이 다르다. 특히 최고수수료율에서 차이가 크다. 배민과 쿠팡이츠의 최고수수료율은 각각 7.8%, 9.5%다.
양사 모두 중개수수료율을 낮추는 대신 배달비 부담을 늘린 것도 문제다. 배민은 기존보다 건당 최대 500원까지 배달비 부담이 늘린다는 내용을 포함했으며, 쿠팡은 배달비를 상단인 2,900원으로 단일화하고, 상위 50% 업체에는 거리와 날씨에 따른 할증비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수수료 인하 효과가 상쇄돼, 의미 없는 상생안이 되는 셈이다. 공익위원들도 양사가 제시한 상생안에 대해 "배달비·광고비 등에서 풍선효과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양사가 이날 제출할 수정안은 기존 제안한 상생안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쿠팡이츠의 상생안은 기존 구조에서 수치를 약간 조정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되면 '쿠팡이츠와 비슷한 수준'을 조건으로 내건 배민도 기존에 제출한 상생안을 그대로 시행할지는 미지수다.
배민, 쿠팡이츠가 공익위원들의 중재원칙에 근접한 수정안을 제출한다고 해도 입점업체들이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입점업체들은 매출액을 기준으로 최고 5.0%에서 최저 2.0%의 수수료율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단일안으로 요구한 바 있다. 이는 중재원칙인 평균 수수료율 6.8%보다 수수료율을 더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입점업체 측 관계자는 "(배달플랫폼 수정안이) 중재원칙에 근접해도 수용하기 힘들다"면서 "배민의 경우에는 중개 수수료가 인상되기 전에 6.8%였는데 그때랑 별반다르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두 배달플랫폼보다 비교적 점유율이 낮은 요기요는 이날 수정안을 제출해 상생협의체와 협의를 완료했다. 요기요의 상생안을 보면 중개수수료 중 대형 입점업체에 적용하는 최상단 구간 수수료율은 기존 수준인 9.7%로 적용하도록 했다. 대신 매출액·주문 건수에 따라 영세 입점업체에 한해 수수료율을 최저 4.8%까지 낮출 예정이다.
입점업체 "정부·국회가 수수료 문제 해결해야"...공정위 "위법성 조사 집중"
상생협의체가 사실상 결렬될 상황에 처하자 입점업체들은 배달수수료 상한제 입법을 기대하고 있다. 수수료 상한선을 법으로 정해 규제하자는 것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상생협의체 합의 불발에 유감을 표하면서 "만일 끝끝내 상생협의가 무위로 끝난다면, 소상공인연합회는 전국 소상공인의 분노를 모아 정부와 국회를 향해 배달앱 수수료 문제 해결을 적극적으로 촉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입법을 통한 수수료 문제 해결을 추진하겠다는 것을 읽힌다.
이미 국회에는 수수료 상한제를 담은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8일 대표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에 '온라인 플랫폼 중개사업자는 중개수수료를 정할 때 대통령령으로 정한 상한의 범위 안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한 바 있다.
공정위도 상생협의체에서 상생안을 도출하지 못할 경우 입법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1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상생협의체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입법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동안 정부는 플랫폼에 대해 자율 규제 기조를 유지한 만큼 수수료 상한을 법으로 규제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난감하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수수료 상한제' 입법화와 관련해 "법 집행이나 제도 개선은 당사자들이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고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린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다만 배달플랫폼의 수수료 인상 문제의 위법 여부에 따라 규제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조 부위원장은 "공정거래법에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착취 남용 행위가 있고, 그중의 하나로 가격 남용 행위가 분명히 있다"면서 "전통적인 산업과 플랫폼은 다르고, 가격 남용 부분은 충분히 신고도 들어왔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다만 입법 과정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입법이 완료되기까지는 높은 중개 수수료를 입점업체들이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입점업체 관계자는 "법으로 하는 것도 좋지만 입법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면서 "일단 지금 당장 수수료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어려운 영세 자영업자의 목소리 담긴 상생안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