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안검사 안창호가 무너뜨린 국가인권위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자가지난 9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4.09.03. ⓒ뉴스1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그 전복을 꾀하는 행동은 우리의 존립과 생존의 기반을 파괴하는 소위 대역(大逆)행위로서 이에 대해서는 불사(不赦)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와 본질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의심하게 했던
안창호 헌법재판관의 발언
대역(大逆)행위로서 이에 대해서는
불사(不赦)의 결단


지난 2013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최종 선고 현장에 있던 본 기자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창호·조용호 헌법재판관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판결문에 덧붙인 보충의견에서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을 저지르거나. 왕권을 범하거나 임금이나 부모를 죽이는 일’을 뜻하는 ‘대역(大逆)’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뜻의 ‘불사(不赦)라는 단어를 동원해 통합진보당 해산을 촉구했기 때문이다. 두 재판관의 주장을 들으며 조선시대 왕이 반역자들을 추국하던 현장이 떠올랐다. 마치 금방이라도 누군가의 목이 날아갈 것만 같은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이 마무리된 지 11년이 지나 ‘대역’을 운운하던 두 재판관 가운데 한 명을 다시 언론을 통해 마주했다. 바로 2024년 9월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한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이다. 21세기 헌법재판 현장에서 왕조시대에나 쓰이던 단어를 사용해 정당의 해산을 주장하던 그를 국가인권위원장으로 만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는 검사 시절 대검찰청 공안 기획관 등을 역임하며 수많은 시국사건을 담당한바 있는 공안검사 출신의 법조인이다.

지난 2013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심판 선고기열린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안창호 헌법재판관이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9월 열린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인사청문회는 이런 그의 공안검사 경력을 잘 보여준 자리였다. 당시 그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씀을 저서에서 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가”라는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의 질문에 “그런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김성회 민주당 의원이 또다시 질문하자 “네오 마르크시스트 중에는 동성애가 사회주의·공산주의 혁명의 핵심적 수단이라는 주장이 있다”며 “여러 가지 상황을 비춰 볼 때 가능성이 제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차별을 없애기 위한 법적인 장치인 ‘차별금지법’을 난데없이 “동성애가 사회주의·공산주의 혁명의 핵심적 수단”이라고 비판하는 그의 주장은 통합진보당을 향해 “대역행위”라 호통치던 과거의 목소리와 닮았다. 그리고, 그의 이런 목소리는 20대 후반 검사가 된 이후 40년 가까이 한결같다. 안 위원장은 검사 시절이던 지난 1991년 7월 서울지법 남부지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여의도 민자당 중앙당사를 점거해 구속된 대학생 19명에게 징역 2~3년을 구형했다. 그해 5월 명지대생 강경대 씨의 타살에 항의하며 벌어진 대학생들의 집단행동이었지만, 공안검사인 그의 생각은 달랐다.

1991년 대학생들을 향한
공안검사 안창호의 발언
“점거농성은 북괴의
인민민주주의 혁명 전략전술에 의해
원격조종된 행위”


당시 그는 공소장에서 “이 사건은 북괴의 인민민주주의와 같은 주장을 하는 학원내 급진 좌경단체인 전대협 기획국의 지시와 배후조종에 의한 것”이라며 “따라서 이 점거농성은 북괴의 인민민주주의 혁명 전략전술에 의해 원격조종된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들의 행위는 남침을 노리는 북한에 기회를 제공하는 이외에 어떤 이익도 없다”며 “대한민국을 경제파탄과 국가존립 위기에서 구해나가기 위해 이러한 반문명적 린치가 다시는 발생할 수 없도록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태우 정권에 항의하는 대학생들의 행위를 아무런 증거 없이 ‘북괴의 조종에 의한 것’이고, ‘국가존립의 위기’를 가져오는 ‘반문명적 린치’라고 주장하는 건 전형적인 ‘공안검사’의 시각이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우리나라의 안보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정권에 반대되는 주장을 북한과 연계된 것으로 몰아 탄압했다. 이런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인권을 침해당했다. 이렇게 공안검사들이 권력이 중심이 돼 국민의 권리와 사상을 제약했던 질서를 극복해온 것이 우리 사회 인권 발전의 역사이고, 곧 민주화의 역사다. 그리고, 그런 인권 발전과 민주화의 역사가 일궈낸 소중한 결과물이 지난 2001년 설립된 국가인권위원회다.

공안검사 출신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취임한 지 2개월이 지났다. ‘공안검사’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아온 그의 등장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안 위원장이 취임하며 이미 예상됐던 일이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난 10월 28일 인권활동가 출신인 박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이 취임 2년 9개월 만에 사퇴했다. 박 사무총장은 지난 10월 18일 페이스북에 “부끄러움을 감당할 수 없는 나는 퇴장한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우리 사회 인권의 보루인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대로 쓰러지는 것일까? 국가인권위원회의 표어가 쓸쓸하게 마음을 울린다.

“혐오와 차별을 넘어 누구나 존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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