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1차 퇴진총궐기’ 집회에서 벌어진 경찰과의 충돌로 노동자 시민 11명이 연행됐고, 100여명이 부상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찰은 집회 종료 후 기다렸다는 듯 “엄정 수사” 방침을 밝힌 가운데, 집회 주최 측 중 한 곳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평화로운 집회를 폭력으로 얼룩지게 한 건 오히려 경찰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1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은 참가 예상인원 대비 협소한 공간을 허가했고, 민주노총은 경찰 측에 여러 차례 집회 장소 협조를 요청했으나 경찰은 충분한 공간을 불허했다”며 “민주노총은 집회 참가자의 안전에 만전을 기했지만, 경찰은 집회 장소로 이동하거나 집회 장소에 앉아 있던 조합원을 강제로 밀어붙이면서 충돌을 유발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10만명 모이는 집회인데, 비좁은 장소로 제한한 경찰 “경찰 의도된 탄압 아니냐” 거센 반발
이번 집회는 민주노총과 전국민중행동, 진보대학생넷 등이 참여한 ‘윤석열퇴진운동본부’ 주최로 노동자 시민 10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본대회 전 민주노총 16개 산업별연맹은 숭례문 인근에서 각각 사전대회를 열고 본대회 장소로 합류하려 했는데, 이때부터 경찰은 ‘통행’을 이유로 과도한 통제를 남발했다는 게 민주노총의 설명이다. 이로 인해, 집회가 시작된 이후에도 서비스연맹과 전국공무원노조, 민주일반연맹 조합원들은 본대회 장소에 들어오지 못했으며, 건설산업연맹의 경우 경찰이 제시한 경로로 행진했음에도 본대회 진입이 가로막혔다고 한다.
건설산업연맹 플랜트건설노조 이주안 위원장은 “사전 결의대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경찰은 집회 장소에 계속 난입했다. 허가된 집회 공간을 내주지 않으려고 했고, 집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을 반토막 내려고 했다”며 “사전 결의대회를 30분 정도 늦게 시작했고, 사전 결의대회를 마치고 경찰의 유도에 따라 평화롭게 행진을 해서 본대오 장소로 이동했지만, 숭례문에 거의 도착할 무렵 경찰은 차벽을 설치하고 대오의 진입을 막았다”고 지적했다.
본대회가 시작될 즈음 사전집회를 마친 조합원들과 시민들이 대거 본대회장으로 이동하면서 집회 장소가 비좁아졌지만, 경찰은 무리하게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려 하면서 위험천만한 상황도 이어졌다. 당초 민주노총은 10만명이라는 대규모 인파를 고려해 세종로터리부터 숭례문로터리 구간까지 2개 차로를 제외하고 양방향 전 차로와 인도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교통 불편’을 내세우며 대한문부터 숭례문로터리 편도 차도 및 인도에서 열어야 한다고 제한했다. 참석 인원에 비해 지나치게 협소한 집회 장소를 통보한 것이다.
본대회 초반부터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려는 경찰과 집회 장소를 확보하려는 참석자들 사이 충돌이 이어졌고, 연행자와 부상자도 속출했다. 경찰은 순조롭게 집회가 진행되고 있던 도중에도 집회 장소 내부로 밀고 들어왔으며 참석자들이 이에 항의하면서 여러 차례 집회가 중단되기도 했다. 경찰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노동자를 내동댕이치고, 격화된 상황을 중재하려던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의 목덜미를 잡아채 바닥에 쓰러트리는 모습은 영상으로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부상을 입고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던 조합원 1명도 경찰이 연행했다.
민주일반연맹 이영훈 비대위원장은 이러한 경찰의 진압에 대해 “의도된 탄압”이라고 꼬집었다. 이 비대위원장은 “최근 있었던 촛불집회를 비롯해 집회 중에서 가장 많은 대오가 모였다. 시청에서 남대문 사리의 거리에 전체 참가자가 참여해도 공간이 굉장히 협소했다”며 “전체 대오가 대회 시작 전까지 들어오지도 못했고, 경찰의 일방적인 바리케이드에 의해 대회 장소로 들어올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비대위원장은 “대회는 너무나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남대문경찰서가 경고 방송을 한 다음 기동대가 무리하게 진압을 하기 시작했다”며 “경찰은 무리하게 마찰을 일으키고 결국에 우리 여러 조합원들을 구타하고 폭행하고 연행했다. 대회가 끝나고 수분 지나지 않아 서울경찰청이 오늘 사태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는 일련의 과정도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야당·시민사회서도 경찰 ‘강경 진압’ 질타 쏟아져 민주노총 조합원 4명에 구속영장 청구, 양경수 위원장 등 집행부 7명에 대한 내사 착수
실제 서울경찰청은 집회가 끝나고 3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언론 공지를 내고 강경 대응 입장을 밝혔다. 연행된 이들에게 구속영장 신청을 예고하고, 민주노총 위원장 등 지도부에 대한 사법처리까지 운운했다. 경찰의 입장 발표 후, 거리에서 쏟아진 정권 퇴진 요구 대신 ‘민주노총의 폭력집회’라는 프레임을 덧씌운 보수 언론의 기사들이 줄지어 나왔다.
이날 경찰은 연행한 11명의 노동자 시민 중, 범죄 혐의가 중한 6명에 대해 공무집행방해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6명 중 2명의 구속영장은 검찰에서 기각됐다. 나머지 4명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오는 12일 오후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경찰은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등 집행부 7명에 대해서도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같은 날 조지호 경찰청장은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강경 진압 비판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도 야당 의원들의 질타와 사과 요구가 잇따랐지만, 조 청장은 경찰의 집회 대응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경찰이 행진 경로를 막아서기 전까지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들의 행진은 평화롭게 진행됐다. 경찰이 앞쪽과 뒤쪽에서 토끼몰이하듯 집회 대오를 침탈해 오기 전까지 집회는 아주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었다”며 “경찰이 집회 대오의 집회장 진입도, 시민들 통행도 가로막고 혼란과 폭력을 유발했다. 그 결과, 많은 시민과 노동자들이 수없이 부상을 당했다”고 반박했다.
양 위원장은 “대체 경찰은 무엇을 목적으로 평상시와 달리 완전무장하고 헬멧과 방패를 착용한 채 집회관리에 나섰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정권 지지율이 하락하고,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무위로 끝나자 이제 폭력으로 입막음하겠다, 공권력으로 광장을 틀어막겠다는 의도”라고 날을 세웠다.
양 위원장은 “‘퇴진하라’ 요구하는 윤석열 정권이 시민들을 억압한 것”이라며 “우리는 더 크고 더 강력한 윤석열 정권의 퇴진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