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이다. 한반도는 여전히 미국, 중국,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들 세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이 중국, 러시아,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나가느냐에 따라 동맹국인 한국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거래주의’로 표현되는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민주당 정부는 물론 전통적인 공화당 정부와도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민중의소리’는 13일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와 삼청동 연구실에서 만나, 예상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과 한반도 정세 및 우리 외교·안보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트럼프 당선 이후 가장 많이 나오는 관측은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다. 김 교수는 “당장 북미 대화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단언했다. 그는 “트럼프 2기 정부는 1기 때보다 예측 가능성이 높아졌다. 네오콘들이 등용될 가능성이 좀 더 낮아졌다”며 “한반도 문제는 우선순위가 뒤로 밀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북한 내부 역시 미국과 제재 문제와 핵무력 이슈를 놓고 거래를 할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김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미국 의존도가 절대적인 현재의 한국 정부에 비해 북한은 경제·안보적으로 전략적 자율성이 매우 높아져 있으며, 격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 모두 북한을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는 상태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매개로 미국과 거래를 할 가능성도 낮다고 봤다.
김 교수는 한반도 정세의 가장 큰 변수는 “당장 내년에 있을 북한의 9차 당대회”라며 “9차 당대회를 성공적으로 끝낼 때까지는 미국이 무슨 카드를 내더라도 북한이 움직일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나아가 “중국의 대북 정책이 중요하고, 미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우선순위가 높은 대선 공약들을 정리해야 한다”며 “그 타이밍이 맞아떨어져야 북미 간에 어떤 접근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 당선으로 외교·안보적 측면에서 한국 정부에 위기와 기회 요인이 동시에 찾아왔고,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당선을 원했다고 말했다. 다만 윤석열 정부에는 그 기회를 살릴 만한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 정부는 뭔가를 할 수 있는 전략적 자율성을 다 포기해버렸고,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도 그냥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상태”라며 “방위비 인상 이슈를 포함해 거래주의적 측면에서의 온갖 이슈들이 터져 나올 것이고, 우리가 전략적으로 이익을 취할 수 있을 만한 게 무엇인지를 끄집어내야 되는데,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나 정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 트럼프 당선을 예상했었나? = 현지 언론이나 여론조사에서 막판에 해리스 손을 많이 들어주긴 했는데, 트럼프 당선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고, 내가 원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 트럼프가 당선되는 상황을 원한 이유가 무엇인가? = 해리스는 바이든 대리인 역할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특히 외교적으로도 기존 바이든 정부의 연속선상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가 정권이 바뀌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트럼프가 되면 우리한테는 위기와 기회가 다 오는 거다. 위험 인자도 있지만, 판갈이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게 된다. 그래서 트럼프를 원했고, 그 기회는 일단 왔다. 다만 지금 정부가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 트럼프 1기 행정부 대외정책은 불확실성이 매우 컸다. = 1기 때는 예측 불가능성이 높았는데, 지금은 예측 가능성이 조금 높아졌다고 본다. 트럼프는 거래주의적 입장, 경제적 관점에서 국가를 보는 경향이 있는데, 1기 행정부에서는 거기에다가 자기 의견을 강하게 푸쉬했던 미국 우월주의, 볼턴과 같은 네오콘 세력들이 합쳐지면서 대단히 예측 불가능하게 됐던 측면이 있다. 그래서 대외정책이 널뛰기를 했고, 하노이 노딜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 트럼프 장남은 트위터에 ‘네오콘, 매파들이 등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글도 썼더라. = 소위 네오콘들이 이번 정부에서 등용될 가능성이 좀 더 낮아지고 있다고 본다. 미국 우선주의를 거래나 협상적 측면에서 끌고 나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 북한 문제는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게 되는 건가? = 네오콘 강경파들이 등용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한반도 문제는 우선순위가 뒤로 확 밀려버릴 것이다.
- 트럼프 당선으로 몇몇 전문가들이나 언론에는 2019년 하노이에서 실패한 북미 간의 핵 협상이 재개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 북미 간의 군축 협상 가능성을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핵을 수천 개 가진 나라가 핵군축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거다. 그렇게 북핵을 인정해버리면 미국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중요한 질서 중 하나인 NPT(핵확산금지조약)로 대표되는 핵 질서가 깨져버린다. 미국이 북한 하나 자기편으로 만들고 달래보려고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우리 입장에서야 북한 문제가 중요하겠지만, 그런 관측은 말 그대로 북한 중심의 이른바 ‘천동설’과 같은 이야기다.
- 북한으로선 트럼프 정부와 대화할 생각을 안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면 되나? = 그렇다고 본다. 북한은 학습 효과가 있다. 리비아 경험도 그렇다. 일단 꼬셔서 집에다 넣어놓고 조여버린 것 아닌가. 김정은 위원장이 그런 미끼를 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미국을 믿고 협상에 들어갔다가 4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또 북한이 미국과 뭘 해보려고 한다면 러시아 입장에서도 괘씸하게 여길 것이다. 당장 북미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한다.
-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 실재하는 북핵 이슈를 아예 무시하고 갈 순 있을까. 북미가 실효적인 만남을 할 만한 조건은 뭐가 있을까? = 변수는 트럼프가 북한을 상대로 뭘 하느냐, 북미 정상회담을 하느냐 이런 게 아니라, 내년에 할 가능성이 높은 북한 노동당 9차 당대회다. 일단 북한이 9차 당대회를 성공적으로 끝낼 때까지는 미국이 무슨 카드를 내더라도 움직일 가능성이 없다. 그리고 중국의 대북 정책이 중요하다. 미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우선순위가 높은 대선 공약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 타이밍이 맞아떨어져야 북미 간에 어떤 접근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 북한의 9차 당대회는 왜 중요한가? = 김정일이 죽고 난 뒤에 김정은이 4년 가까이 당대회를 못하고 있다가 2016년에 7차 당대회를 한다. 그러면서 김정은 시기가 시작됐다는 걸 알렸는데, 사실 첫 번째 시기는 2019년 하노이 노딜도 그렇고 완전히 말아먹은 시기였다. 2021년 8차 당대회 이후 김정은이 인민들에게 ‘사회주의 강국’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해가 2035년이다. 지금 그 단계로 가고 있는 거고, 그 중간 단계인 9차 당대회에서 뭔가 성과를 내세워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통치력이 확 떨어진다. 안보와 경제 성과가 중요한데, 이미 안보 성과는 이번에 화성-19형을 쏘면서 ‘최종적’이라고 얘기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인민들 피부에 와닿는 경제 문제다. 과거처럼 경제적으로 부족한 성과를 안보적으로 메꾸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올리려면 아무래도 외자가 들어와야 하는데, 러시아로부터의 유입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이다. 내년이 당 창건 80주년인 만큼, 남은 1년 동안 최대한 안보·경제 성과를 극대화시키는 노력들을 쭉 해나갈 것이다.
- 트럼프 정부와 러시아·중국과의 관계가 북한의 대외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생길 여지는 있는가? = 흔히 나오는 얘기들이 미-러, 미-중 ‘빅딜’ 같은 거다. 미-러, 미-중이 북한 가지고 거래를 하는 건데, 그건 북한이 전략적 자율성이 없을 때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북한은 강대국들이 자기를 팽 시키는 것에 당하지 않으려고 전략적 자율성을 높여왔다. 우스갯소리로 북한이 가진 핵은 단순히 미국을 향한 것이 아니라 미-중, 미-러 구도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높이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엔 북한을 버리는 대신 미국한테 뭔가를 얻는 선택을 한다고 했을 때 단기적으로 좋을 순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버퍼존(완충지대)을 잃어버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체스판에서 북한이라는 중요한 말을 러시아 쪽으로 더 쏠리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그랜드 유로피언 파트너십이라는 새로운 시큐리티 플랫폼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 가장 서쪽이 벨라루스고, 남쪽이 베트남, 동쪽이 북한이 된다. 설사 트럼프가 역할을 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된다 하더라도 미국과는 제로섬 게임에 가까운 구도가 이어진다.
- 우리는 어떤 대외적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나? = 오히려 우리한테 영향을 미치는 건 오바마 정부와 바이든 정부 시절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이뤄진 한미일 안보협력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연결되는 이런 구도의 것들이 큰 틀에서 휘청한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미국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 올인한 케이스인데, 그렇게 올인한 판이 깨져버리는 거다. 우리가 스스로 해결해야 될 문제들이 훨씬 더 심각해지는 것이다.
-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북한과 대립하는 건 어떤 실효성이 있나? = 북한은 지금 전쟁을 할 수가 없다. 전쟁을 안 하면 못 견디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로서는 계속 북한을 자극해서 도발을 해주기를 바라는 건 국내 정치적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 건데, 북한은 어떻게 보면 얄미울 정도로 윤석열 정부가 던지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확실히 군사적인 행동으로 미끼를 물어줘야 되는데 멀리서 GPS 교란하고, 확성기 틀고 그런 식으로 오히려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골탕을 먹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건도 마찬가지다.
- 윤석열 정부의 대외 상황 인식은 어떻다고 평가하나? = 윤석열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중국·러시아 관계에서의 변수에 대비하거나 북한의 현실을 고려한 전략이 부재하다. 이미 이번 정부는 뭔가를 할 수 있는 전략적 자율성을 다 포기해버렸고,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도 그냥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상태다. 방위비 인상 이슈를 포함해 거래주의적 측면에서의 온갖 이슈들이 터져 나올 것이고, 우리가 전략적으로 이익을 취할 수 있을 만한 게 무엇인지를 끄집어내야 되는데,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나 정책이 없다. 무슨 골프장에서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나 하는 사람들한테 기대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