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구든 죄를 지었으면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헌법에 규정된 ‘법 앞의 평등’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소해야 판결을 받을 것 아닌가?’라는 점이다. 특정 집단, 특정 인물, 특정 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수사도 안 하고 기소도 안 한다면, 법원이 판결을 내릴 기회조차도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일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검찰 집단 내부에서 조직적으로 벌어진 범죄행위,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과 그 배우자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도 안 되고, 기소도 안 되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사법부 정의의 핵심이다.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자기 범죄를 수사·기소하지 않으면?
이런 사법부 정의가 발생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검찰이 기소권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아무리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어도 처벌받지 않는다. 기소권의 남용만큼 심각한 것이 불기소(不起訴)권의 남용인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검찰은 자기 조직 내부에서 벌어진 조직적인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불기소를 하고 있다. 바로 검찰 특수활동비 자료 불법폐기 문제이다.
필자가 3년 5개월간의 행정소송 끝에 특수활동비 자료를 받아 보니 대검찰청의 경우 2017년 4월까지의 특수활동비 집행 관련 자료가 폐기되고 없었고,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2017년 5월까지의 자료가 폐기되고 없었다. ‘뉴스타파’의 추가 취재 결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을 포함한 전국 59개 검찰청에서 특수활동비 자료가 불법폐기된 것으로 드러났다.
필자도 이런 사실을 2023년 6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자료를 수령하면서 알게 되었다. 당시에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담당자도 ‘밀봉되어 있는 자료를 열어보니, 일부 자료가 폐기되고 없었다’고 진술했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자료인데 폐기되고 없었다는 것을 담당자들도 자인한 것이다. 심지어 2017년 5월에 크게 논란이 되었던 ‘검찰 돈봉투 만찬’ 사건 당시의 기록도 폐기되고 없었다.
‘검찰 돈봉투 만찬 사건’은 2017년 4월 21일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부하 검사들을 대동하고 회식을 하면서 서로 상대방 부하검사들에게 70만 원에서 100만 원씩 들어있는 돈봉투를 돌린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2017년 5월 15일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것이었다. 그 직후인 5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법무부 감찰관실과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합동 감찰에 착수했다. 그리고 5월 19일 윤석열 당시 대전고검 검사가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윤석열 지검장이 취임한 시점이 2017년 5월 19일이므로, 특수활동비 자료의 폐기 시점은 윤석열 지검장 취임 이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영렬 전 지검장은 2017년 5월 15일 돈봉투 만찬 사건이 보도되자마자 감찰을 받게 되었으므로, 이영렬 전 지검장이 폐기했을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법폐기는 어떤 범죄에 해당할까?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기록물을 폐기할 때에는 기록관리전문요원의 심사와 기록물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야 한다. 또한, 자료 불법폐기는 형법상 공용서류 무효죄에도 해당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확인 결과, 검찰 특수활동비 자료들은 기록물 폐기를 위한 심사와 심의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단폐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니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이런 사실이 문제가 되자,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무단폐기를 비호하고 나섰다.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달에 한 번 폐기하는 관행이 있었고, 그런 내용이 교육자료에 나와 있다고 국회에서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범죄가 관행이었다고 해서 면책될 수 없다. 횡령이나 절도가 관행이었다고 변명한다고 해서 무죄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게다가 불법폐기를 하라는 교육자료까지 있었다면 더 심각한 문제이다. 조직적인 범죄를 저지르도록 교육까지 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불법폐기는 세금오·남용 등 또 다른 불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세금을 적법하게 썼다면 이렇게 자료를 불법폐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돈봉투 만찬 당시에 존재했던 장부까지 불법폐기
한편 돈 봉투 만찬 당시에 서울중앙지검이 특수활동비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었는지는 이영렬 전 지검장이 제기했던 행정소송(면직처분 취소소송) 1심 판결문에 나와 있다. 당시에 서울중앙지검장은 특수활동비 중 일부를 검사장실 운영비로 매월 170만 원, 1·2·3 차장실에 각 100만 원, 사무국장실에 80만 원, 법정과에 100만 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수사비가 아니라 ‘운영비’로 지급했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 특수활동비의 용도에 벗어난 지출이다.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필요한 수사나 정보수집 활동에만 쓸 수 있는데, ‘운영비’로 쓰는 것은 위법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돈을 써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특수활동비 금전출납부’라는 장부가 존재했던 것으로 판결문에 나온다. 그런데 이 장부가 불법폐기된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문(2017구합78919) 중에서
검찰 특활비 자료 불법폐기에 대해 공소시효 특례가 필요
이런 불법행위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특별검사 도입을 국회에 촉구해 왔다. 5만 명의 국민서명을 받아 국회에 국민동의 청원도 했다. 그러나 21대 국회는 특별검사 도입을 위한 논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공소시효(7년) 만료 시점이 다가왔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은 2024년 1월 16일 서울중앙지검에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과 형법상 공용서류 무효죄로 고발장을 접수했다. 그러나 검찰은 4월 18일 불기소(각하) 결정을 내렸다. 불기소 이유를 보면, 자료 폐기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그런 ‘실무관행’을 이유로 각하 결정을 한 것이다.
그러나 ‘범죄가 관행’이라면, 그것은 범죄의 조직적ㆍ집단적 성격을 뒷받침하는 것이므로, 더욱 엄중하게 수사해야 마땅한 것이다. 뇌물수수나 절도가 관행이라고 해서 처벌받지 않아도 된다고 할 것인가? 이에 시민단체들은 5월 16일 항고장을 접수했으나, 검찰은 항고도 기각했다. 그래서 대검찰청에 재항고를 해 놓은 상황이다.
문제는 이렇게 공소시효가 만료되면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법 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 조직 내부에서 벌어진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기소도 되지 않고 처벌도 되지 않는다면 ‘법앞의 평등’은 설 자리가 없다.
따라서 검찰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각종 불법 의혹에 대해 특별검사를 도입하고, 특별검사법에 '공소시효에 관한 특례' 조항을 둬서라도 반드시 불법적인 자료폐기행위를 처벌해야 한다.
검찰 조직의 핵심부에서 벌어진 범죄를 검찰이 수사·기소하지 않는 상태는 국가의 공소권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럴 경우에는 공소시효에 대한 특례조항을 만들어서라도 처벌해야 할 충분한 명분이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검찰 내부에서 벌어진 특수활동비 자료 불법폐기는 '국기문란' 행위이다. 이런 행위를 처벌하지 않고서는 법치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