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을만세] 움직이지 마 – 마을로 나올 수 없는 사람들

이주민이 지탱하는 마을

얼마 전 한 기초단체의 마을공동체 활성화 정책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도시와 농촌 복합지역이었고 비수도권의 전형적인 중소도시였다. 원도심은 재개발을 논의하다 여러 차례 다양한 형태의 갈등이 반복되었다. 결과적으로 원도심은 흉물스러운 폐건물을 중심에 두고 원도심 상권은 완전히 쇠퇴했다. 한시절을 풍미한 증거는 거대한 레저·위락시설이다. 상권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건물엔 커다란 볼링핀이 누렇게 퇴색된 채 버티고 있었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도로는 폭이 균일하지 않고 바닥재도 각기 달라 어수선했다. 양방향 통행과 일방통행 도로가 이어져 있기도 해서 초행길에 많이 헤맸다. 두 집 건너 한 집은 폐업이라 황량하기까지 한 거리지만, 영업을 하는 가게 앞에는 곱게 가꾼 화단이 있었다. 화단을 구경하고 있자 한 사람이 지나가며 ‘여기 상인들이 다 신경 써서 가꾸는 것’이라고 했다. 상권의 아랫자락은 그나마 유동인구가 있었는데 대부분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가게들이었다. 베트남 음식점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러시아, 아시아마트도 있었다. 어느 지역에나 있는 문 닫은 청년몰도 보였다. 결국 무너진 상권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이주민들로 보였다.

몇 달 전, 한 공무원과 이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가 말했다.

“어휴, 외국어 간판만 올라오면 민원 들어온다니까요.”
“민원이 들어오다뇨?”
“왜 외국어로 간판 달게 두냐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외국어 간판이 보이면 외국인이 모여들고, 외국인이 모여들면 동네가 엉망이 된다며, 외국인들에게 영업허가를 내주지 말라는 민원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논리였다. 공무원들은 그런 민원을 상당히 많이 받는다고 했다.

다른 어떤 회의에서는 ‘다문화’라는 단어를 빼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앞서 민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른 대체어를 생각한 게 있냐고 물었는데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행여 자신이 외국인 혐오자처럼 보일까봐 고심하는 눈치였다. ‘괜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어서’라며 난처해했다.

이미 한 번 들은 이야기라서 민원을 받아내야 하는 공무원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는 다문화라는 단어를 빼고 글로벌과 세계시민을 넣었다.

다문화이해에 대한 다양한 교재들이 있다. ⓒ필자 제공

어느 마을엔 베트남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들은 아시아마트도 열고, 베트남 쌀국수를 팔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갓 입국한 사람들은 통신사를 찾는다. 베트남 사람이 운영하거나 일을 하고 있는 휴대폰 대리점에도 베트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한국의 건강식품을 베트남으로 수출하기도 한다. 마을 축제를 열었을 때 십수 명의 베트남 사람들이 모여 한 가게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었다.

그들은 역할을 분담해서 음식을 소분하고 포장하고 판매대에 올렸다.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이 한국 손님들을 상대했다. 미얀마에서 온 손님을 소개했더니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인도차이나반도에 속해 있어도 엄연히 다른 나라인데 진심으로 챙겨주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듯해졌다. 베트남 사람들이 모여서 척척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보니 그들의 자부심과 단결력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한국에 온 지 20년이 된 중국인 사장은 커뮤니티의 중심에 있었다. 단단하고 강인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친절하고 상냥한데다가 그의 가게는 그 골목에서 가장 깨끗했다. 예전에 알던 한 중국 사람도 그랬다. 윤이 날 정도로 쓸고 닦고 유난스럽게 청소를 하던 양꼬치집 사장이었다. 청소를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중국 사람들 더럽다고 하니까 내가 일부러 더 열심히 하는 게지. 나는 정말 더러운 거 싫어하거든.” 자신을 둘러싼 편견에 맞서 삶으로 싸우는 사람이었다.

베트남 식자재를 파는 상점 ⓒ필자 제공

다양성을 발휘할 수 없는 제도

중부권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에 들렀을 때였다. 거리에는 온통 외국인들이었다. 걸어 다니는 모든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그 사이사이에도 반미, 쌀국수 간판이나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된 간판도 눈에 띄었다. 농촌지역과 공장지대가 어울려있던 그 마을은 걸어 다니는 건 이주민이고 가게 사장들은 한국인인 건가 싶을 정도로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이 마을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마을축제를 준비하며 이주민 공연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평일인 경우 더욱 어렵다며 들은 대답은 이러했다. 이주민들은 대부분 취업비자로 들어오기 때문에 평일에는 월차를 쓰지 않는 이상 나올 수가 없고, 그 취업비자 때문에 취업 외 별도의 경제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돈을 받는 공연 활동은 더욱 엄격하다고 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일하려면 각 비자에 맞춘 활동만 할 수 있는데 분류가 상당히 촘촘하다. 단기취업(C-4), 교수(E-1), 회화지도(E-2), 연구(E-3), 기술지도(E-4), 전문직업(E-5), 예술흥행(E-6), 특정활동(E-7), 계절근로(E-8), 비전문취업(E-9), 선원취업(E-10), 관광취업(H-1) 또는 방문취업(H-2)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니, 목적과 목표가 명확해야 한국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고, 일을 하다가 업종을 변경하고 싶으면 비자를 다시 받아야 한다. 해당 비자에 준하지 않는 경우 고용인과 피고용인 모두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일을 하다 보면 더 좋은 자리로 옮겨갈 수도 있고, 다른 형태의 직업에도 도전해 볼 수 있는데, 외국인들이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딱, 허가받은 노동 외의 그 어떤 활동도 불가능한 것이다.

2021년경에 경기도에서도 이주민공동체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이 있었으나 더 이상 지속되지 않고 있다. 1)경기연구원에서는 경기도의 외국인주민 정책에 관련된 연구를 실행했는데 경기도 체류외국인 593,367명의 체류자격별 구성을 보면, 거소신고자 제외 시 비전문취업(E-9) 101,758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방문취업(H-2) 92,390명, 영주자(F-5), 방문동거자(F-1), 결혼이민자(F-6), 유학생(D-2), 기타, 동포거소신고자 등이었다. 비전문취업은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 어업, 입원, 광업, 서비스업에 한하는데 숙련노동자가 아니어도 되지만, 한국어 능력시험을 통과하고, 국가간의 협약에 따르는 등 복잡한 절차가 있다. E-9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국가도 제한적이며 체류기간이나 재고용 여부도 한계가 있다. 경기도의 외국인주민 정책 기본계획에는 ‘문화개방에 다른 이민정책의 세계적 추세 변화에 따라 지역의 문화다양성과 민주시민의 참여, 소통을 통한 지역사회 통합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활동범위는 법으로 꽁꽁 묶어둔 채로, 어떤 문화다양성과 민주시민의 참여소통이 가능한지, 지역사회 통합을 위해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혐오를 내뿜는 내국인이 존재하는 마당에, 주어진 노동시장 외 다른 곳에 자유롭게 이직할 수도 이동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과연 각 지역의 공동체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다양한 국적의 상인들이 모여있는 A시의 골목 ⓒ필자 제공

중부권에 있던 농산업복합도시에서는 이주민들은 노동을 하고 한국인들은 그에게 밥을 팔며 유지가 되고 있었다. 쇠락한 원도심의 상권을 유지하는 것은 이주민 식당이었다. 편견과 차별이 당당하게 큰 목소리를 내는 사이 이주민들은 도시와 마을을 떠받치면서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말 자체도 그들을 대상화하기 때문에 차별적이다. 세계시민이라는 단어는 괜찮고, 다문화라는 단어는 배제한다는 것은 이 나라의 다문화 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는 뜻이다.

경기도 모처에서 만난 마을활동가는 ‘외국인들 때문에 아주 골치’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오래 한 원로였다. 건설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들이 주변에 늘어나면서 쓰레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쓰레기 배출이 정말 까다로운 나라다. 외국에서 살다 온 한국인들도 쓰레기 배출이 너무 까다롭다고 호소한다. 그러니 언어와 관습이 모두 서투른 외국인들은 쓰레기 배출기준을 잘 지키지 못하곤 한다. 그는 내가 진행하는 여섯 번의 워크숍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마지막 날 고민하던 쓰레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냐고 물었다. 그는 각 국가별로 반장을 뽑아 세워야겠다고 대답했다. 베트남 주민반장, 스리랑카 주민반장.... 각 국가별로 대표를 세우면 자존심이 있어서라도 생활규칙을 잘 지키고 서로 계도하지 않겠냐는 답을 내놨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서 그 순간 나는 그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그는 ‘소통할 방법’을 찾아내 이주민들을 자치의 주인공으로 세우겠다고 결단했기 때문이다.

소멸하는 도시, 사라지는 마을을 말할 때마다 이주민 정책이 거론된다. 이미 곳곳의 마을에 이주민들이 뿌리내렸고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으나 한국사회는 아직도 그들을 다문화라는 테두리에 묶어 배제한다. 마을에 살면서 광장에 설 수 없는 그들의 손발을 누가 묶었는가.

함께 활동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비자규정의 테두리가 뾰족한 쇠사슬처럼 잔혹하게 느껴졌다. 법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사람을 옥죄고 기계화할 수도 있으니. ‘움직이지 마.’ 이주민을 향한 법의 명령이다.

혐오와 차별이 마을마다 더 단단히 퍼져나가기 전에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마을은 과연 이주민과 ‘소통할 방법’을 한 번이라도 고민해봤을까. 우리는 언제 선주민과 이주민이 마을에서 어울려 놀 수 있을까.

필자주

1)2021년 경기도 외국인주민 정책 기본계획수립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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