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다시 10만의 촛불이 켜졌다. 대규모 집회가 매주 이어지고 있다. 광화문 앞 광장은 나라의 진짜 주인, 시민들로 가득 찼다. 경복궁 동측 끝, 동십자각에서 시작된 대열은 500여m 뒤인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을 지나, 경희궁 방향으로 이어졌다. 23일 진행된 촛불집회 정식 명칭은 ‘김건희·채상병 특검 추진, 국정농단 규명, 윤석열을 거부한다 2차 시민행진’이었다. 주최측은 이날 집회 참가자가 10만명이라고 밝혔다.
가장 큰 분노는 채상병 사망사건의 책임자를 처벌하려다 항명죄를 뒤집어쓴 박정훈 대령의 유죄 구형에 쏟아졌다. 앞서 군검찰은 박 대령 사건 결심 공판에서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을 구형한 바 있다.
무대에 오른 김형남 군인권센터 활동가는 “입틀막 구형”이라고 했다. ‘사단장을 빼라’거나 ‘경찰로 이첩하지 말라’고 알려진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것은 항명이 아니라 양심이라고 김 활동가는 강조했다. 그는 “항명죄는 정당한 명령을 따르지 않는 군인을 처벌하는 법”이라며 “항명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행동한 박 대령에 죄를 물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항명이 무죄라면 명령이 위법 부당하다는 얘기기도 하다”며 “‘그런 일로 사단장을 벌주면 누가 대한민국에서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격노한 주인공. 위법 부당한 명령을 내린 주인공이 바로 범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정훈 대령의 항명죄 무죄 선고는 대통령 윤석열의 직무상 위법 행위를 입증할 증거 1호가 될 것이며 거부할 수 없는 특검 도입의 명분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부인과 함께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 김진철씨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김씨는 “절망에 빠져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어떻게든 되살아나겠지’라고 기대했지만 내수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그는 토로했다.
김씨는 어떤 정책이든 일단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화폐 예산을 늘리든, 긴급 민생 회복 지원금을 지급하든 실행이 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김씨는 “이러한 정책들을 누가 제안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런 정책들을 시행한다면 자영업자들이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였을 테고, 이 공은 모두 현 정부 공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이어 “하지만 이 정부는 해명도 없이 정치적 이유로 외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경제 위기를 극복할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 공영방송, KBS(Korea Broadcasting System)는 이제 ‘김건희 브로드캐스팅 시스템’이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과 대담을 진행하며 김 여사가 받은 수백만원짜리 명품백을 ‘조그만 파우치’라고 표현했던 박장범 앵커가 KBS 사장이 됐다. 김봄빛나래 민주언론시민연합 활동가는 “박장범은 무자격자”라고 지적했다.
KBS 사장선임 절차도 ‘국정농단’이라는 것이 김 활동가의 설명이다. 그는 “KBS 사장 후보 3명에 대한 이사회 최종 면접을 앞둔 바로 전날, ‘박민 사장이 용산으로부터 교체를 통보받았다’는 구체적인 증언이 인사청문회에서 나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게 사실이라면 용산 대통령실이 직접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 개입한 것이고, 이는 방송법을 위반한 분명한 불법이고 국정농단”이라고 강조했다.
김봄빛나래 활동가는 “지금 이 현실이 너무나도 참담하다. 언론 농단을 넘어 공영방송 장악을 통한 국정농단을 획책한 중대 의혹을 명명백백하게 제대로 진상 규명해야만 한다”며 국회 국정조사 실시를 촉구했다.
전라남도 구례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정영희씨는 “윤석열은 농업, 농촌을 내팽개쳤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이 거부한 양곡관리법은 ‘남는 쌀 수매법’이 아니라 국민 식량 주권을 지키는 법, 그나마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설명했다. 국회는 지난 21일 양곡관리법을 세 번째로 통과시켰다. 정씨는 “여당은 벌써 거부권을 요청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벌써 세 번째다. 이번에도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성난 농민들의 민심이 무엇인지 똑똑하게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었다. 올해 농사가 가장 잘됐다’는 말을 한다. 소름 돋는 말이다. 평생 가장 무덥고 뜨거웠던 날씨 때문에 모든 농사를 망쳤는데, 기후 재앙으로 인한 피해는 앞으로 더 극심해질 것이라 한다”며 “지금 겪고 있는 배춧값, 사과값 문제가 아닌, 근본적인 국민 먹거리가 가장 무서운 무기가 되어 우리들의 목을 조여올 것이라는 걸 농민들은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윤석열을 끌어내리고 우리가 꿈꾸는 세상, 사회 대전환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내내,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현재까지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만 2천명에 육박한다. 지난 7일 시국선언을 발표한 충남대 정세은 교수는 “윤석열 정부하에서 대한민국이 내·외에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4대 개혁을 두고 “민생을 고통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주 69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노동개혁을 시도하고 있으며, 은퇴 후 수령할 급여액을 대폭 깎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또 “비리 사학은 그대로 둔 채 멀쩡한 대학을 먼저 구조조정시켜 버릴 수도 있는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며 무리한 의사 증원 정책을 추진해서 국민들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더해 정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은 재벌 감세, 초부자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며 “법인세 감세와 기업 상속공제 확대, 부동산 양도세와 종부세 감세는 대규모의 세수 결손, 재정 허리띠 졸라매기, 이로 인한 내수 위축과 민생의 고통 가중 등 경제 파탄과 민생 파탄만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도한 정치 집단에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머리 나쁘고 인성도 안 좋은 윤석열, 이제는 퇴학시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날 2차 시민행진 직전 같은 무대에선 더불어민주당의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4차 국민행동의 날’ 집회가 진행됐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무대에 오른 박찬대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권 2년 만에 국가의 시스템이 완전히 고장 났다. 민주주의, 민생경제, 외교·안보, 어느 것 하나 성한 데가 없다”며 “나라가 갈 길을 잃고 국민의 삶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원내대표는 “누구든지 잘못했으면 처벌받아야 한다. 김건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며 “이것이 우리의 요구이고 국민의 명령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다. 떳떳하다면 특검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면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특검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은 상황을 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을 우습게 여기지 말아야 하고 들불처럼 번지는 시국 선언의 엄중함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광장에 모이는 시민들의 분노를 두려워해야 한다”면서 “또다시 김건희 특검을 거부하면 들불은 횃불로 타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