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대일 저자세 외교, 사도광산 추도식 ‘모욕’으로 돌아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확대회담에 앞서 악수하며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4.09.06. ⓒ뉴시스

한국 정부가 일본과 일제의 한반도 불법점유 시기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인 사도광산 추도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국 모욕적인 상황을 마주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 측 참석자로 차관급 이상 고위급을 요구하자, 일본 정부는 불과 2년 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력이 있는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을 참석시키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이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한 한국 정부는 23일 추도식 불참을 결정했고, 24일 추도식은 일본 측 인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쿠이나 정무관은 추도사에서 조선인 강제동원의 합법성을 부각했다.

이러한 상황엔 강제동원과 관련한 윤석열 정부의 대일본 저자세 외교가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윤 정부는 취임 후 일제 전범기업들이 내야 할 강제동원 배상금을 제3자 변제로 해결해주기로 합의한 데 이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일본의 태도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전쟁범죄의 직접적인 피해국이 앞장서서 가해국에 면죄부를 주는 기이한 광경이 이어진 것이다.

특히 사도광산은 일본이 광산 노동을 기피하던 자국인들 대신 조선인을 강제동원해 수많은 희생자를 낸 곳이다. 조선인 희생자만 1천200~1천500명에 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일본은 이러한 사실에 관한 국제적인 비판을 회피하고자 작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할 때 대상 기간을 에도시대 중심의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했다. 한국 정부가 반대하는 한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불법적인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이 포함된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여 등재 결정을 보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외교부는 돌연 올해 7월 “전체 역사를 사도광산 현장에 반영하라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권고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일본이 성실히 이행할 것과, 이를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할 것을 전제로 등재 결정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결국 사도광산은 강제동원의 역사가 삭제된 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당시 외교부가 밝힌 일본 정부의 선제적 조치는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2층 한구역에 마련된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이름의 전시 공간을 마련한 것이었는데, 여기엔 ‘강제동원’이라는 표현이 전혀 없었다. 특히 이와 관련해 가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모든 노동자의 가혹한 노동환경을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전시물을 전시했다”고 말했다. ‘모든 노동자’라는 표현으로 가혹한 대우를 받았던 강제노동 조선인 문제를 희석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던 한국 정부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하면서 일본 측으로부터 약속받은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추도식’에서마저 강제동원의 역사가 삭제되는 굴욕적인 상황을 마주했다.

니가타현 사도에 있는 사도광산의 상징적 채굴터인 아이카와쓰루시긴긴잔의 '도유노와리토(道遊の割戸)' 모습 ⓒAP

일본 정부 대표 인사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는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이 참석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한국 정부는 물론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까지 참석하기로 한 상황에서 일본 측의 매우 모욕적인 처사라고 할 수 있었다. 일본 정부는 자국 인사 추도사에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어떤 메시지가 담길지에 대해서도 함구했다.

결국 행사 전날까지 일본 정부는 참석 인사 및 추도사와 관련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한국 정부는 항의나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은 채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양국이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불참 사유만 밝혔다.

애초에 숙소·항공편 등 소요 예산을 전부 한국 정부가 부담하기로 했다는 점과 추도식의 정식 명칭이 추도의 대상이 불분명한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정해졌다는 점도 우리가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우리 정부는 시작부터 일방적으로 끌려가다가 결국 추도식에 불참하는 결정을 하기에 이른 셈이다.

일본 정부는 추도식 당일까지도 모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일본 외무성은 24일 주한일본대사관을 통해 한국측 불참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였다. 문제의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은 추도사에서 “광산 노동자 중에는 1940년대 우리나라(일본)가 전쟁 중에 노동자에 관한 정책에 기초에 한반도에서 온 많은 분이 포함돼 있었다”고 했다.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모자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합법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 외교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이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일본의 뻔뻔한 도발 앞에 윤석열 정부의 굴종 외교 민낯이 또 한 번 여실히 드러났다”며 “퍼주기 외교, 사도광산 협상이 ‘성과’라고 강변하더니, 결국 일본이 채워온 나머지 ‘반 컵’에는 조롱과 능멸만이 가득했다”고 비판했다.

진보당 홍성규 수석대변인도 “아무런 사과 없이 과거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에 우리 국민 모두가 반대를 표명할 때 정부는 매년 추도식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며 부득부득 일본 정부의 입장만을 대변하지 않았냐”며 “그러나 결국 일본은 추도식이 아니라 축하파티를 기획했으며, 뻔뻔스럽게 일본 정부 대표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전력이 있는 극우 인사를 내세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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