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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추경 논란, 덮고 갈 때가 아니라 적극적인 논의 시작할 때다

지난 22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추경을 포함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한 말이 전해지면서 정부의 재정 정책 기조 변화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임기 후반기에는 소득·교육 불균형 등 양극화 타개를 위해 전향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양극화 타개라는 방향을 이야기 한 뒤 대통령실에서 추경을 포함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옹호하고 나선 것은 의미심장해 보였다. 대통령실이 추경 편성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2일 보도설명자료로 “현재 2025년 예산안은 국회 심사 중이며, 내년 추경예산 편성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예산안이 확정돼도 경기 상황이 추경 편성 요건인 국가재정법에 부합하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통령실을 통해 언급됐던 추경 가능성을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가 나서서 일축한 모양새다.

며칠 사이에 정부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의 메시지가 나오는 것부터 불안감을 부추기는 일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한국 경제가 극심한 내수 침체를 겪고 있는 중이며, 정부의 정책 행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미국의 트럼프 당선 이후 한국 경제에 대한 내외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 자체로 악영향을 피할 수 없다.

기왕 추경 가능성이 불거져 나온 것을 어설프게 덮어 버리고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은 혼선은 혼선대로 조장하고 기회는 또 한 번 놓치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는 ‘건전 재정’이라는 명분을 앞세우며 불경기 국면에서 정부 재정의 역할을 방기한 결과 한국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내몰았다.

내수 침체가 만성이 된 가운데 수출마저 한계에 봉착하면서 내년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는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2.0%로 내렸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2%에서 2.0%로 낮췄다. 내수 경기를 최악의 침체로 방치한 채 수출회복에 기대를 걸었지만 그마저도 기대만큼 되지 않고 불확실성만 확대되는 상황이다.

건전 재정을 외치면서 지출을 줄여 봐야 경제가 망가지면 세수도 줄어들고 역설적으로 재정도 악화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이 악순환이 이미 시작되었다. 기재부에 따르면 통합재정수지는 52조9000억원 적자이고,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 흑자 수지를 빼고 실질적인 재정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91조5000억원 적자다. 윤석열 정부 식 재정 정책은 이미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기재부는 내년 초 추경에 선을 그으면서 연초 추경 추진은 대규모 재해나 전쟁 같은 비상시국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연초 추경을 편성한 해는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과 코로나19가 창궐한 2020~2022년이 전부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보다 지금의 위기가 덜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안일하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연초가 연말보다 시간을 덜 버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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