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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이토록 간절한 미역수염의 기도

미역수염 두 번째 정규음반 '2' ⓒ미역수염 인스타그램

이제 현대인들의 마음과 가장 가까운 음악은 헤비메탈이나 하드코어 음악이 아닐까. 요즘 사람들은 날마다 스트레스 받고 지치고 분노하기를 반복하지 않나. 그러다 공황장애가 오고 우울증에 사로잡히지 않나. 그 순간 느끼는 마음의 격랑을 발라드나 포크 같은 음악으로 표현하기는 턱없이 부족하지 않을까. 헤비메탈 아니면 하드코어, 슈게이징 음악 정도는 되어야 현대인들의 멘탈리티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미역수염의 두 번째 정규음반을 들어본다.

2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정규음반 [2]의 수록곡은 8곡. 4분쯤의 짧은 곡과 8분 30초에 이르는 긴 곡이 한 음반에 담겨 있다. 정규 1집에 비해 길어진 노랫말은 대부분 영어다. 1집에서는 한국어 가사와 영어 가사를 함께 쓰고 선명한 기승전결의 서사를 구축하는 편이 아니었으며 상황을 모호하게 표현하거나 독백처럼 적은 경우가 더 많았다. 이번 음반의 노랫말은 더욱 추상적이다. “The slow, the shape, the sun, the soul, the song, the sound, the sorrow”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타이틀곡 ‘HEX’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DAL’의 노랫말 “친절하게 너를 죽일 거야 / 오늘 밤 달이 떠오르면 / 이 도시는 불타오를 거야”에 이르면 미역수염의 정념이 더욱 불타오르고 드라마틱해졌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다. 추락을 노래하는 ‘FALL’, 잿빛 역으로 초대하는 ‘CTF’, 18년의 의미를 묻게 하는 ‘18 years’, 노인과 소년과 형제와 누이가 등장하는 ‘SWEETHOME’을 더하면 미역수염의 서사가 훨씬 다채롭고 복잡해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의 눈물을 닦을 거라 말하는 ‘SWEETHOME’, “조각난 기억”과 “시간에 찢긴 나”를 등장시켜 너를 찾는 ‘GHANG’에서 느껴지는 간절함은 이 음반이 고난과 절망과 열망과 그리움의 복합체임을 일러준다. “우리 여기 숨겨둔 말들을 불태워볼까? / 바람결에 춤추던 나를 날려보낼까?”라는 독백으로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곡 ‘GOODBYE’는 이 모든 상념을 정리하며 음반의 드라마를 완성한다.

미역수염의 2집 [2]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악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역수염이 구사하는 장르는 헤비메탈에 국한하지 않는다. 슈게이징, 포스트록, 헤비메탈 등이 뒤섞인 음악은 자주 장엄하고 묵직하다. 대신 속주로 밀어붙이는 속도감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노래할 때는 스크리모의 방식으로 노래하기도 하지만 담백한 보컬과 독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음반 내내 흐르는 사운드는 지글지글 끓어오르고 사운드 스케이프는 거대하다. 이러한 사운드는 헤비니스 계열의 음악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사운드이지만 미역수염의 곡에는 서정적인 선율이 자주 등장한다. 음악의 속도가 느리거나 빠르거나, 사운드의 밀도가 성글거나 빽빽하거나 모든 곡에서 보컬과 일렉트릭 기타 등으로 표현하는 멜로디가 또렷하다. 그 멜로디는 당연히 듣는 이의 감정을 격동하게 만든다.

미역수염 (Seaweed Mustache) - HEX (Official Video)

첫 번째 곡 ‘FALL’에서는 예의 멜로디로 멜랑콜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두 번째 곡 ‘HEX’에서는 저주에 빠진 내 손을 잡으며 사랑에 다가서게 하는 드라마를 속도감 넘치고 극적인 연주로 펼쳐 보인다. 세 번째 곡 ‘DAL’와 네 번째 곡 ‘CTF’에서도 곡의 처음부터 흐르는 멜로디는 격렬한 연주 사이에서 감정을 책임진다. 저주의 이야기이건 상상 속 시공간의 창조이건, 노래이건 독백이건 미역수염은 인상적인 테마로 음악이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곡의 구조와 전개는 밴드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 중 하나다. 사운드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음악의 밀도 높은 흐름과 유려한 변화는 밴드의 연출력과 창작력, 그 증거다. 속도를 확 바꿔버리는 ‘18YEARS’를 들어보라. ‘SWEETHOME’은 더 감정을 밀어붙이고 흔드는 순간들을 준비해두었다. ‘GOODBYE’는 음반의 종지부를 찍겠다고 작심한 듯 길고 강력한 노이즈를 쏟아내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고집과 개성의 산물이다.

이 얼마나 묵직하면서 명쾌하고 거칠면서 아름다운 음악인가. 친절해졌다고 해도 좋을 음악이고, 수려해졌다고도 할 수 있는 음악이다. 음반에서 어떤 곡이 제일 좋으냐고 물어보면 쉽게 한 곡을 고르기 어려울 정도다. 절망의 노이즈와 희망의 멜로디가 만드는 미학은 최소한 44분 16초 동안은 삶의 필연적인 슬픔을 마주하고 이겨낼 힘을 준다. 감정을 발산하고 토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서로의 눈물을 닦을 거라고 이야기 하는 음악은 오늘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음악가의 고백이자 기도 아닌가. 그 기도가 들리는가. 그 기도를 듣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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