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신세계가 다시 돌아왔다. 전세 사기를 당한 슈퍼맨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성과 정치가 부재한 대한민국 현실을 통렬하게 풍자하더니, 이번에는 여행단을 만들어 베트남으로 향한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베트남 여행을 시켜줄 요량일까? 바로 2024년 11월 23일부터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 극단 신세계의 연극 ‘하미’에 대한 이야기다.
무대에는 그냥 보아도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여느 단체여행처럼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여행사의 깃발 아래 모인 것이다.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 연극을 만들기 위해 사전 조사를 나온 예술가들, 딸과 여행을 온 엄마, 퇴직한 선생님, 한국에 시집을 온 베트남 여성 등이 이번 여행에 함께 한다. 그런데 이 여행, 심상치가 않다. 효도관광도 아니고, 동창 모임 여행도 아니다. 무려 ‘프리미엄 베트남 평화여행’이다.
기상천외한 베트남 평화여행기
연극 ‘하미’는 ‘프리미엄 베트남 평화여행’을 떠나게 된 여행단의 기상천외한 베트남 여행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세계 평화를 꿈꾸는 이 한국 여행단은 어떤 여행을 보여줄까? 물론 단순히 베트남 여행을 보여주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사히 이번 여행을 마칠 수 있을지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평화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유명한 베트남 관광지를 다니며 평화로운 여행을 즐기고 있다. 의견이 맞지 않아 삐걱대고 여행 가이드는 무시하고 제멋대로 다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평범해 보이는 여행이다. 계획에 없던 하미 마을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미 마을은 ‘베트남 전쟁 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 일어났던 곳이다. 게다가 이날은 베트남 전쟁에서 학살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부모의 품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자의 증언이 이어지고 민간인 학살 가해자인 한국 관광객의 등장에 분노하는 마을 사람도 등장한다. 베트남 전쟁이 그저 한국군이 참전했던 전쟁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는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전쟁을 생중계하고, 지구 한쪽은 전쟁으로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또 다른 곳에서는 평화로운 일상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전쟁의 피해자가 세월이 흘러 전쟁의 가해자가 되는 아이러니가 판을 치는 세상의 축소판이 무대 위에 그려진다. 한 남자가 자신이 베트남 참전 용사였음을 고백하며 민간인 학살 사건을 눈물로 사죄한다. 생존자를 향해 측은지심과 연민을 쏟아내는 또 다른 여성의 말속에는 베트남에 대한 우월의식이 숨어 있다.
추모행사장에서는 베트남 전쟁 학살의 흔적과 증언 앞에 사과를 하겠다는 여행단의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프리미엄 베트남 평화여행’은 ‘평화’롭지 못한 현실 속으로 돌아온다.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공연장이지만 관객을 가상의 등장인물로 극 속에 끌어들이는 시도를 통해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문다. 등장인물들이 동시에 군무를 보여주는 듯한 움직임이나, 탁자와 의자를 활용해 공간을 변형시키는 역동적인 구성도 극단 신세계 특유의 무대를 만들어 낸다.
극단 신세계의 작품은 보는 재미와 작품의 의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 속도감 있고 발랄한 구성과 달리 연극 ‘하미’는 꽤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연극 ‘하미’는 베트남 전쟁의 전쟁 특수를 기반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어 낸 우리의 위선을 이야기한다. 또한, 전쟁의 피해자였던 세계 유일 분단국가 대한민국이 또 다른 전쟁의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연극은 2024년 지금 이 순간도 진행 중인 전쟁이 과연 우리와 무관한지를 되묻는다.
배우 고민지, 고용선, 김보경, 김언이, 박미르, 이강호, 이명열, 이시래, 장우영, 하민욱, 하재성, 한지혜, 황예원이 무대 위 한바탕 소동극을 통해 울림있는 연기를 펼친다. 자막해설, 음성소개, 사전 대본열람, 이동지원, 휠체어석 운영, 실시간 문자통역 등 접근성 제공사항을 전 회차 진행한다. 연극 ‘하미’는 12월 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연극 ‘하미’
공연 날짜 : 2024.11.23(토) - 2024.12.1(일) 공연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공연 시간 : 평일 15시/토, 일 19시 30분/월요일 공연 없음 *관객과의 대화 : 11.28.(목) 7시 30분 / 11.30.(토) 3시 공연 종료 후 (실시간 문자통역 진행) 러닝 타임 : 130분 관람 연령 : 만 13세(중학생) 이상 창작진 : 작·연출 김수정/드라마터그 박성원/무대감독 전웅/무대디자인 Shine-Od/조명디자인 김성구 /의상, 소품디자인 김우유/그래픽디자인 김낙수장/음악감독 이율구/음향감독 전민배/영상감독 박영민/사진 IRO COMPANY 출연진 : 고민지, 고용선, 김보경, 김언이, 박미르, 이강호, 이명열, 이시래, 장우영, 하민욱, 하재성, 한지혜, 황예원 공연 예매 : 인터파크 티켓,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공연 문의 : 070-8118-7237/접근성 문의 050-6738-2031 (문자, 전화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