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8일 김제의 특장차 생산업체 HR E&I(에이치알이앤아이)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32살의 청년노동자 고 강태완(실명 호준 또는 호이준) 씨가 끼임사고로 사망했다. 개발 중인 특수 자율주행차량을 테스트하기 위해 공장에서 차량을 옮기던 중이었다. 10t짜리 무인 차량의 리모컨이 작동이 되지 않는지 그는 리모컨을 던졌고 움직이던 특장차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CCTV에는 그가 끼이는 것까지만 찍혀있고 끊겼다. 회사가 어떤 구조 조치를 했는지 알 수 없고, 리모컨의 결함도 확인되지 않았다. 유족들과 대책위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유다.
그의 죽음 이후 이주인권활동가들의 울음이 넘쳐났다. 미등록 이주아동 때부터 그를 보아온 많은 사람들은 한국 사회가 이주민에게 쳐놓은 수 많은 차별의 굴레가 목숨까지 빼앗는지를 직접 목도했다. 고인은 26년을 한국에서 살았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채 국적 취득을 위한 길로 들어섰다가 죽었다. 만 다섯 살이던 1998년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군포에서 초중고를 졸업하며 살았지만 어머니가 미등록노동자라 그도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살았다. 고인이 고향이나 다름없는 군포에서 김제로 내려와 취직을 했던 이유도 영주권을 신청할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서였다. 인구소멸 지역인 지방자치단체들은 5년간 일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지역특화형 비자(F2R)를 발급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목표는 “영주권을 받고 귀화까지” 하는 것이었다.
또 가슴 아팠던 것은 고인의 어머니는 사고 당시 미등록 상태라 119구급대원과 회사의 전화를 받고도 경찰이 출입국에 통보해 잡혀 갈까봐 바로 병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 하고 병원 밖을 맴돌아야 했던 일이다. 다행히 몽골대사관이 와서 출입국관리법의 통보의무 면제(출입국관리법 84조,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제92조의2)에 해당되는 거 아니냐고 경찰에게 얘기해서 경찰도 동의해 병원에 들어가게 됐다. 공무원은 범죄의 피해자 구조, 인권침해 구제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외국인의 피해구제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통보의무를 면제된다. 현재 고인의 어머니는 산재 사망자의 유족으로 출입국에 체류자격 신청을 한 상태고,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다.
산재로 죽어가는 이주노동자들
강태완 씨의 죽음 이전에도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산재로 죽었다. 이주노동자의 업무상 사망 만인율(1만명당 사망 인원)이 1.39로 전체 취업자 만인율(0.77)에 비교해 두 배 이상 높다. 이미 6월 6월24일 화성 아리셀 리튬전지 공장 화재 사고로 23명이 숨졌고, 이 중 18명이 이주노동자다. 회사는 발열전지로 인한 화재 가능성이 높았음에도 트레이 6개(전지 약 400개)에 보관한 발열전지를 정상전지와 구분하지 않고 함께 보관했다. 심지어 이번 참사 이전에 화재 사고가 이틀 전에 있었으나 후속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위험성평가 우수기업’이라며 산재보험료를 감면해 주었다.
더구나 국방부에 납품하는 리튬전지 납품 품질검사 과정에서 시료 바꿔치기와 데이터 조작 등을 적발했으나 재검사를 실시하지 않고 국방부는 계약을 유지했다. 이로 인한 생산지연은 ‘하루 5천 개’ 물량 생산이라는 작업량 확대로 이어졌음에도 제대로 안전교육도 하지 않고 일을 시켰다. 만약 국방기술품질원이 재검사와 계약 재검토를 했다면, 적어도 대규모 산재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아리셀 노동자들은 폭발 위험이 있으니 대피해야 한다는 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비상구 중 하나는 막혀있었다. 화재가 나면 일반 소화기가 아니라 리튬용 소화기로 꺼야한다. 그러나 리튬용 소화기는 없었고 이에 대한 교육도 받지 못했다.
현재 박순관 아리셀 대표는 구속되어 있으나 제대로 된 사과도, 보상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에스코넥은 96%의 지분을 갖고 있은 원청기업으로 갤럭시 핸드폰 금속부품, 리튬 1, 2차 전지 생산을 한다. 주로 삼성SDI에 2차 전지에 필요한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 박순관은 구속 직전까지 에스코넥의 대표기도 했다. 원청인 에스코넥이 이번 산재사고의 민형사 상의 책임을 져야 하기에 사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아리셀 참사 유족들은 10월 10일부터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에스코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농성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지만, 에스코넥과 아리셀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명시된 징벌적 손해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체류자격으로 쪼개놓은 이주노동자의 권리들
아리셀 산재로 희생된 이주노동자 18명 중 재외동포비자(F4)인 사람이 11명, 방문취업동포비자(H2) 4명, 결혼이민비자(F6) 2명, 영주권비자(F5)가 1명이었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와 달리 재외동포비자로 취업한 경우, 기초 안전보건교육 의무가 없다. 노동안전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고용보험 가입여부도 모든 사업장의 의무가 아니라 체류자격별로 다르다.
재외동포 비자(F4)의 경우 단순노무직을 금하고, 방문취업(H2) 비자는 제조업, 농축어업, 서비스업 등 출입국관리법령에서 정한 업종으로 제한하고 사업장 규모도 제한(특례고용가능업체는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 사업장 또는 자본금 80억 원 이하 규모)하고 있어, 이주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일용직 노동자를 원하는 회사들의 욕망과도 배치된다. 이런 현실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은 인력소개소에서 제대로 된 설명도 못 들은 채 취업을 한다. 일자리(업종, 규모)를 체류자격으로 제한하지 않았다면, 즉 체류자격에 따른 노동통제가 없었다면, 이주노동자들은 기업의 불법파견 굴레에 낚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 초기에 아리셀 사측은 유족들에게 “(희생자들이)불법취업 한 것”이라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 비자에 따라 일할 수 있는 업종이나 체류기간 등에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재외동포(F-4) 비자의 경우, 단순노무직 취업은 금지되는데 제조공장에 왔으니 단순작업이란 불법을 했다는 것이다. 불법파견과 안전의무를 다하지 않아 산재사망으로 저지르고도 유족들을 협박하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산재보상도 처음에는 길림성 기준으로 하겠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다가 비판 여론이 일자 11월 초 국내 임금 수준을 적용하겠다며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비자에 따라 보상을 달리 하겠다고 했다. 한국인과 영주권자(F5)에게는 2024년 일용직 ‘건설업 보통 인부’ 임금(1일 16만 5,545원)을 적용하고, 다른 비자의 희생자에게는 ‘수동 물품 포장원’ 임금(1일 8만 6,768원) 기준으로 보상금을 제시한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죽어서도 체류자격에 따라 차별받고 있다.
사실 체류자격(비자)에 따른 통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과 삶 전반에 놓여 있다. 아리셀 희생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태완 씨도 2022년에 단기방문(C-3)으로 들어와 이주아동구제대책을 통해 유학 비자(D2)로 바꿀 수 있었다. 2024년 2월 대학 졸업 후 구직 D-10 비자로 바꾸었다.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지역특화형 비자(F2R)를 받으려고 김제까지 가서 취업했다. 지역특화형 비자(F2R)는 그가 살던 곳에는 없었다. 김제에 취업한 후 지역특화형 비자를 신청해서 2024년 6월에 거주(F2)비자를 얻었다. 만약 26년간 한국에서 살아온 그에게 체류자격에 따른 거주의 불안정성이 없었다면, 김제에서 취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잇따른 이주노동자의 산재를 접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주노동자의 삶과 노동의 권리를 체류자격별로 쪼개놓은 정책 폐기일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일하는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안전을 제대로 감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