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감액 부분만 반영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야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것이고, 여당인 국민의 힘 의원들은 이에 반발해서 퇴장했다고 한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통과된 예산안은 673조 3천억 원 규모로, 정부안보다 4조 1천억원 삭감된 것이다.
증액이 부르는 ‘야합’에서 벗어나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야당이 잘한 일이다. 윤석열 정권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한 번은 했어야 하는 일이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고, 예산을 심의해서 통과시키는 것은 국회의 역할이다. 그리고 국회가 예산심의 과정에서 해야 할 핵심적인 역할은 정부가 잘못 편성한 예산, 그동안 잘못 집행해 온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에는 그것이 되지를 않았다. 그 이유는 ‘증액’ 때문이었다. 국회의원들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지역구 예산을 끼워 넣거나 증액하려고 한다. 그런데 법적으로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서 ‘증액’을 하려면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 헌법 제57조가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예산심의 막판에는 여당과 야당, 정부가 밀실에서 협상을 하고 계수조정을 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왔다. 증액하려면 서로 간에 ‘합의’가 되어야 하니, 일종의 ‘야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잘못 쓰이고 낭비되는 예산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살아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작년에 검찰 특수활동비 같은 예산이 살아남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야당이 ‘증액’을 하려고 하면 ‘야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쯤은 원칙대로 ‘감액’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적폐 예산’, ‘쌈짓돈 예산’, ‘낭비되는 예산’을 없앨 수 있다.
지금이 지역구 예산 챙길 때인가?
그런데 야당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삭감예산안을 통과시켰지만, 본회의까지 감액 예산을 유지하고 통과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정치권 주변에서 회의적인 얘기도 나오는 것같다. 야당 지역구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 예산을 반영시키려고 하면 결국 ‘증액’을 해야 하고, 윤석열 정권 및 여당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지금이 자기 지역구 예산 끼워 넣으려고 윤석열 정권과 ‘야합’을 할 때인가? ‘검찰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말하는 야당이, ‘검찰 특수활동비’ 예산을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정권과 야합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만약 이번에 야당이 정권 및 여당과 야합해서 검찰 특수활동비 같은 예산을 살려준다면, 야당으로서의 존재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법률안에 대해서는 막무가내식 ‘거부권’ 행사를 반복하는 상황에서, 야당이 개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예산심의권’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 야당이 단독으로 삭감한 목록을 보면, 마땅히 삭감해야 할 예산들이다.
‘쌈짓돈’처럼 마음대로 사용하고 어떻게 썼는지를 국회에도 보고하지 않는 특수활동비는 삭감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검찰같은 경우에는 기밀이 요구되는 수사 활동에 쓰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 상황이다. 명절떡값, 격려성 돈봉투로 쓰는 것이 무슨 ‘기밀 활동’인가? 이런 예산은 전액 삭감하는 것이 납세자인 국민들에 대한 예의이다.
정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예비비를 대폭 삭감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동해 석유시추, 용산공원 관련 예산들도 삭감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약간의 유연성을 둘 수는 있다. 원칙대로 감액예산을 통과시키되, 마지막에 정부부처들이 소명자료를 제대로 낸다면 일부는 살려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검찰이 특정업무경비(현금으로 쓰는 특수활동비와는 달리 카드로 쓰는 것이 원칙인 예산이 특정업무경비이다)에 대해 추가로 국회에 자료를 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부분만 일부 살려주면 될 것이다.
이번에 감액예산을 통과시키더라도, 정부가 정말 필요하다면 자료와 근거를 충실하게 마련해서 내년에 추가경정예산으로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 문제는 국회를 설득할 수도 없고, 국민들도 설득할 수 없는 예산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려는 윤석열 정권의 태도이다. 이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본래 개혁은 ‘처음’하는 일
일부에서는 야당이 삭감예산안을 단독으로 처리하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래 개혁이란 ‘처음’ 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나라에 세금도둑이 들끓고 국민 세금이 ‘쌈짓돈’처럼 쓰이게 된 것은 그동안 ‘관례’대로 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처음’하는 일을 해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야당이 이번에 정권과 ‘야합’하고 검찰과 타협한다면, 야당은 국민들에게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자’는 얘기나 ‘검찰개혁을 하자’는 얘기를 할 자격이 없다. 야당은 길게 끌 것도 없이 다음 주에 열릴 국회 본회의에서 삭감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