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했다. 성장이 둔화되고 경기가 침체되는 것에 대한 대응 성격이라고 한은은 주장하지만 한국경제가 기준금리를 조금 내린다고 반등할 상황이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오히려 한은의 연속된 기준금리 인하는 가뜩이나 위태로운 환율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가계부채와 부동산을 들썩이게 할 재료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내수 및 투자 촉진을 위해 금리 내린 한은, 시장은 증시 폭락으로 화답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10월 28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금융시장의 동결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연 3.00%로 0.25%포인트(p) 더 낮췄다. 지난달 금리를 0.25%p 내려 3년 2개월 만에 피벗(통화정책 전환)에 나선 이후 두 차례 연속 인하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2회 연속으로 인하한 것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진이 있을 때 이후 처음이다.
한편 한은은 이날 수출 둔화와 내수 부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정부 출범 리스크(위험) 등을 반영해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각 2.2%, 1.9%로 0.2%p씩 낮춰 잡았다.
금통위는 금리를 낮추고 시중에 돈을 풀어 민간 소비·투자 등 내수라도 살려야 경기 하강 속도를 어느 정도 늦출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회의 의결문에서 "성장 하방 압력이 증대됨에 따라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 경기의 하방 리스크(위험)을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인하 배경을 밝혔다.
환율·물가·가계부채 불안 등 우려되는 인하 부작용에 관해선 "환율 변동성이 확대됐지만, 물가 상승률 안정세와 가계부채 둔화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금통위는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금리 인하가 물가와 성장, 가계부채와 환율 등 금융 안정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 변수간 상충 관계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앞으로 인하 속도 등을 결정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하지만 10월 29일 코스피는 2,455.91포인트를 기록해 48.76포인트(–1.95%)폭락했다. 코스닥은 낙폭이 더욱 커 678.19포인트를 기록해 16.20포인트(–2.33%)하락했다. 통상 금리 인하는 증시에 호재로 인식되는데 거시지표들이 최악이다 보니 금리인하가 완전히 묻히는 모양새다.
환율이 통제불능 상황으로 빠질 수도 있어
한국은행의 전격적 기준금리 인하로 당장 환율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트럼프 당선 이후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 중이다. 아마 외환당국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환율은 1400원 중반까지 치솟았을지도 모른다.
환율이 이렇게 폭등하는 건 이른바 부자감세, 관세전쟁, 반이민 등으로 대표되는 트럼프노믹스가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확률이 높아서다. 관세전쟁은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고(인플레이션이 부활하면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힘들다)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를 줄일 것이다. 부자감세는 국채발행을 늘려 시장금리가 낮아지는 걸 어렵게 만들 것이며, 반이민 정책은 임금을 높여 물가를 끌어올릴 것이다. 미국이 고금리를 유지하고 대미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주는데 환율이 뛰지 않을 리 없다.
이번 기준금리 인하로 미국(4.50∼4.75%)과의 금리 차이는 1.50%p에서 1.75%p로 확대됐다. 환율에 악재인데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더라도 속도가 매우 느릴 것으로 예상돼 자본이탈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환차손 우려까지 더해지면 자본이탈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
참고로 2021년 10월 4,692억 달러를 찍었던 외환보유고는 불과 3년 만에 536억 달러를 감소했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당시 GDP대비 4% 내외를 기록하던 경상수지 흑자가 윤석열 정부 들어 2022년 1.4%, 2023년 1.9%를 기록한 탓이 결정적이다. 이는 환율 불안의 근본원인이기도 하다.
정부가 가계대출 확대로 방향을 틀면 가계부채와 부동산도 위험해져
가계부채와 부동산도 걱정이다. 이미 가계 빚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큰 소리에도 불구하고 가계신용 규모가 지난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연속 역대 최대치를 경신한 바 있다.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와 은행권의 대출 총량 관리 등 금융 당국의 압박에도 두 분기 계속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10월 19일 발표한 '2024년 3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3분기(7~9월)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13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분기 말(1895조 8000억 원)보다 18조 원이 증가해, 두 분기 연속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가계신용에는 전세보증금과 개인사업자대출은 포함되지 않는다. 만약 가계신용에 전세보증금과 개인사업자대출을 합하면 35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이야 윤 정부가 금융권에 가계대출 관리를 지시하며 가산금리를 올려 대출금리를 높이는 방식으로 가계대출 총량이 느는 걸 제어하고 있지만, 만약 윤 정부가 가계대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면 기준금리 인하와 맞물려 가계대출 총량이 빠르게 증가할지도 모른다.
가계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지금은 수그러드는 것처럼 보이는 부동산도 다시 들썩일 수 있다. 대출이 부동산 시장을 밀어올리는 유일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한계기업과 가계만 연명시키는 것은 아닌지
위에서 살핀 것처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얻을 건 없고 잃을 건 많은 참으로 어리석은 결정이다. 한국은행이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중요한 건 결과적으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이자도 감당 못하는 한계기업과 가계를 좀비처럼 연명시키는 산소호흡기 역할을 할 뿐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