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모든 주주’ 위한 상법 개정, 당연하다

정부가 상장법인의 합병·분할에서 이사회의 '주주 이익 보호'를 명시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최근 야당이 이사회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보인다.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껏 재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나머지 주주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에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최근 논란을 빚은 두산이나 고려아연의 경우만 보아도 그렇다.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는 '재벌 총수'들의 손발이 되어 이런 결정을 내리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 왔다. 민주당의 상법 개정 제안처럼 이사회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것은 이런 현실을 바꾸는 출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재계는 상법 개정에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삼성, SK, 현대차, LG 등을 비롯한 16개 그룹 사장단은 지난달 21일 공동성명을 통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많은 기업들은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시달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배주주와 다른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하는 건 경영권 공격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소송 남발 우려 역시 지배주주가 다른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당시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상법 개정 대신 "물적 분할이나 합병 등 소수주주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핀셋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번에 정부가 내놓겠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이 주장과 완전히 일치한다. 사실상 재벌들의 입장을 대리한 셈이다.

정부가 개정을 추진하는 자본시장법의 규율 대상은 2600여개 상장법인에 제한된다. 그러나 재벌 총수들에 의해 벌어지는 일반주주 권리 침해는 비상장법인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며 특히 재벌 2세, 3세로의 지배권 세습을 위해서 비상장기업을 동원하는 경우도 잦았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상법 개정을 대신할 수 없다는 의미다. 더구나 정부안처럼 합병, 분할 등의 제한된 행위에 복잡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건 재벌들이 이를 피하는 수법을 새롭게 개발하는 결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상법 개정이 추진되는 건 그동안 재벌들의 행태가 낳은 인과응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지난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이를 바로잡자는 법 개정 움직임에 딴죽을 거는 재벌들이나, 이를 그대로 인용해 스스로 재벌의 대변자가 되겠다는 정부나 모두 한심할 뿐이다. 이러고도 '기업 밸류업'을 기대한다니 누가 진심이라 생각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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